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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샘추위 Mar 12. 2024

저는 알코올중독자의 딸입니다.

49 알코올중독자 가족의 고백

엄마는 남자 잘못 만나 17년을 고생하며 살았지만 나는 엄마가 잘못 만난 남자를 아빠로 둔 죄로 42년째 고통받고 있다.

아빠를 원망해야 할까? 남자를 잘못 고른 엄마를 원망해야 할까?

나는 얼마나 더 고통받아야 하는 걸까?

이혼 후 혼자가 된 엄마가 부러울 지경이다.

자기 몸 하나만 건사하면 되는 현실이.

가장의 무게도, 경제력도, 가족도 모두 술과 맞바꿔버린 아빠로 인해 유년 시절부터 가난했지만 가난을 걱정할 틈도 없이 항상 두려웠다. 술에 취하면 집안을 부수던 아빠가, 칼과 불을 들고 부부 싸움을 하던 아빠가,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해 구르고 넘어지고 다쳐서 혈흔이 낭자하던 그 밤이.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나에게 아빠는 시한폭탄이다.

아빠가 놓아버린 인생을 어디까지 붙잡아줘야 할까?

겨우 붙잡고 있는 그 인생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버거워 내 인생까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아 두렵고 힘들다.

손을 놓아버릴까 수도 없이 고민한다.

난 무엇을 위해 이 고통을 참고 견뎌야만 하는가?

칫솔을 입에 물고 뇌경색으로 꼬꾸라진 아빠가 천운으로 다시 일어나 걷게 됐지만 여전히 술을 놓지 못한지 햇수로 6년째.

아빠가 그날 돌아가셨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아빠가 내 앞에서 한 번 더 쓰러진다면 나는 119에 전화하지 않고 아빠의 죽음을 기다릴 수 있을까?

숨통이 조여들어오는 그 순간, 마지막 숨이 넘어갈 때까지 "아빠, 이제 그만합시다. 우리 이렇게 이별해요" 이렇게 말이다.

정말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내가 그럴 수 있을까?

오늘 알코올중독자 가족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아빠가 너무 그립다는 글을 봤다.

길고 길었던 고통의 시간 끝에 죽음을 맞이한 알코올중독자 가족의 이야기.

아빠가 돌아가시면 당장이라도 이 카페를 탈퇴하려고 했는데 아빠에 대한 그리움에 계속 들락거리게 된다는.

닉네임을 보니 작년 말 채팅으로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누었던 분이다.

추모하는 마음

위로하는 마음

두려운 마음속에

부러운 마음이 고개를 내민다.

나는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야 누릴 수 있을 평안한 삶과 안식을 고대한다.

이것이 알코올중독자 가족의 마음.

이것이 알코올중독자 가족의 고통.

이것이 알코올중독자 가족의 고백.

아이디가 눈에 익어서 글을 읽어봤어요

함께 위로받으며 힘내보자 한 것 같은데 아버님을 먼저 보내셨네요

술 없는 그곳에서 아버님이 부디 평안하시길 빕니다

저에게도 언젠가는 닥칠 일이지만 그 슬픔과 아픔이 어떨지는 감히 짐작할 수 없네요

그동안의 힘듦은 내려놓으시고 몸과 마음 잘 추스르세요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평안하세요.

- 꽃샘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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