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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스텔라 May 22. 2024

파란 대문 줄까? 빨간 대문 줄까?

내가 자란 동네

내가 태어난 곳은 서울시 서대문구 북가좌동이다. 충청도가 고향인 아빠는 청년이 되어 더 나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맨몸으로 서울에 올라오셨고, 결혼한 둘째 누나네 집에 얹혀사셨다. 엄마와 만난 후에도 결혼하여 훗날 아이가 생기면 아이를 돌봐줄 누나가 있는 이 동네가 신혼집으로도 좋겠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두 분이 결혼하시고 신혼 생활을 시작한 곳은 고모(아빠의 둘째 누나)네 집에서 도보로 십 여분가량 떨어진 북가좌동 2층 단독주택의 1층집이었다.


고모네는 세 명의 사촌오빠와 한 명의 사촌언니가 있었고, 누구나 그렇듯이 어릴 때는 다 예쁘고 귀엽기 마련이라 나는 고모네 식구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고모네 집은 다섯 살배기의 뒤뚱뒤뚱한 걸음으로도 쉬지 않고 한 번에 갈 수 있을 만한 거리였다. 오전에는 나랑 놀아줄 언니, 오빠들이 다 학교 가서 없기 때문에 집에서 엄마랑 놀거나 마당에서 혼자 놀며 시간을 보냈고, 오후에는 초등학생 사촌언니가 하굣길에 나를 데리고 고모네 집으로 가서 놀아주었다. 그러다보면 중학생, 고등학생이던 오빠들이 차례차례 내가 좋아하는 과자나 사탕을 하나씩 사들고 왔다. 마지막으로 아빠가 퇴근하시면서 고모표 반찬 몇 가지와 함께 나를 데리고 집으로 귀가하는 루틴이었다.



그 날은 아마도 언니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좀 늦었었나보다.

심심하기도 했고, 기다리기도 지루했던 나는 혼자서 고모네 집에 가겠다는 결심을 했다.

“엄마! 나 오늘은 고모네 집에 혼자 가볼래.”

안 그래도 언니는 늦어지고 집안일 할 게 잔뜩 쌓여있던 엄마는 잠시 고민하시더니

“어떻게 가는지 알지? 오늘은 한번 혼자 가 봐!” 하셨다.

집 앞에서 내가 잘 가는지, 한눈은 안 파는지, 뒤 돌아보다 넘어지진 않을지 지켜보시던 엄마는 이내 언덕 너머로 씩씩하게 혼자 걸어가는 날 보고 안심하고 집으로 들어가셨다.


그런데 잠시 후, 나는 눈물 콧물을 흘리며 뛰어와서 엄마에게 소리쳤다.

“엄마! 고모네 집이 없어졌어!”

집안일을 하시던 엄마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잘 갔던 애가 갑자기 울면서 와서 엉뚱한 말을 하니까 황당해하셨다. 그래도 내가 하도 우니까 정말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앞치마를 벗을 새도 없이 동생을 급하게 들쳐 업고 내 손을 잡고 서둘러 고모네 집으로 향하셨다. 고모네 집 앞에 도착한 엄마는 잠시 어리둥절 하셨지만 곧 내가 이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가 고모네 집을 방문한 이래로 단 한 번도 빨간색이 아닌 적 없던 철제 대문이 새로 칠을 해서 파란색이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저기 언덕 넘어서 계속 쭉 가다가 전봇대 옆 두 번째 빨간 대문집이야. 알지? 차 조심하고!”


날 배웅하던 엄마의 말씀처럼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빨간색’ 고모네 집 대문이 있던 자리에 낯선 파란색 대문이 자리 잡고 있자, 어린 마음에 대문이 바뀌었단 생각은 못하고 집이 없어진 줄 알았던 것이었다.

갑자기 애기까지 업고 서둘러 온 엄마와 온통 눈물범벅이 된 나를 보고 놀란 고모는

“빨간 대문이 없어져서 고모네 집도 없어진 줄 알았어.” 하며 울먹이는 나를 꼭 안아주셨다.


알고 보니 동네 페인트가게 아저씨가 그날따라 빨간색 페인트가 부족해서 재고가 넉넉하던 파란색 페인트는 어떠냐고 권하셨고 고모는 별 생각 없이 그러라고 하셨다고 한다. 재고 부족이 불러온 다섯 살의 오열 사태에 고모는 당장 근무 중이시던 고모부께 전화해서 직장 근처 페인트 가게에서라도 빨간색 페인트 구해오라고 하셨고, 아빠와 고모부는 밤새 다시 대문 색을 칠하셨다.  

그 이후로 나는 확실히 고모네 집 위치를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살 터울의 내 동생도 이런 일이 생길까봐 고모는 무조건 대문 색깔로 빨간색을 고수하셨다.



사실 엄청 오래된 에피소드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내가 생생하게 기억할 수밖에 없는 것은 고모가 이사 가기까지 십여 년을 넘게 매번 대문 색깔을 칠할 때마다 이 이야기가 소환되었던 탓이다. (심지어 남의 집 대문을 칠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북가좌동 마당발이던 박여사님(고모) 덕분에 온 동네방네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사촌오빠 친구들까지도 “아, 얘가 그 빨간 대문 애기야?” 하는 바람에 고모가 대문이 없는 아파트로 이사 가게 됐을 때 나는 만세를 부르며 드디어 '대문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때는 ‘나의 흑역사’라고 생각했던 사건이라 웃음과 함께 빨간 대문이 소환될 때마다 짜증을 내곤 했었지만, 이제는 안다. 그 안에는 항상 나를 예뻐해 주셨던 고모의 다정한 마음이 담겨있었단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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