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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스텔라 Aug 07. 2024

스텔라의 소설습작

 지역 도서관에서 '소설 쓰기' 수업이 개설되었다. 있었던 사실을 정리해서 쓰는 '에세이'도 글 한편 쓰는데 머리를 쥐어뜯고 몇 번을 고치는데 내 깜냥으로 소설이 다 무어냐 했지만, 그래도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와 소설은 맞지 않았다. 앞으로 나는 충실한 독자의 입장으로서만 소설을 대할 것이다. 

그래도 소설의 세계에 살짝 발을 담갔던 것을 기념하고자, 이곳에라도 나의 습작 2편을 올려보고자 한다.




범퍼카의 평범한 하루


 삐삐삐삐삐삐. 띠리릭. 탁.

 오늘도 피곤했던 하루가 끝나고 나만의 보금자리에 도착했다. 아무렇게나 가방을 던져놓고 신발만 겨우 벗은 후 현관 앞에 그대로 잠시 쓰러져있었다. 조금 기력이 돌아오자 일단 차고 있던 워치부터 충전했다. 충전기에 꽂혀있던 워치는 완충된 걸 확인한 후 책상 위에 올려놨다. 차가운 물에 손을 씻고 오늘따라 유난히 고생 많았던 귀부터 빼냈다.

"아, 고막 또 찢어졌네. 이 부장 자식 때문에 벌써 고막 몇 개째 해 먹은 거야. 고막 리필이 넉넉한지 모르겠네."

 별 것도 아닌 실수에 혼자 흥분하더니 삼십 여분 동안 쉼 없이 잔소리를 쏟아낸 이 부장 때문에 지구에 온 이후로 벌써 세 번째 고막이 찢어졌다. 지구인들은 참 약한 부위도 많지. 미세먼지에 시달려 간질간질한 코도 빼서 전용솔로 쓱쓱 콧구멍을 문질러주었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오늘은 미세먼지 수치가 300까지 올랐었다. 제대로 안 씻어주면 꽤 오래 콧물에 시달려야 하는 건 지난번 걸린 비염을 통해 알았다. 어젯밤 가구를 옮기다 삐끗한 척추도 꺼내서 다리미로 잘 다려줘야 하는데... 너무 귀찮다. 이건 그냥 내일 하자. 삐거덕대는 척추의 항의는 무시하고 하루 종일 컴퓨터 보느라 시달린 눈알을 빼냈다. 워셔액에 담근 뒤, 이쪽저쪽 굴려가며 뽀득뽀득 씻었다. 이건 아무리 귀찮아도 허투루 하면 안 된다. 회식 자리에서 '소맥'이란 획기적인 음료수를 처음 마신 후 한쪽 눈알을 빼먹고 안 씻었다가 그다음 날 회사 내의 모든 모서리를 박고 다녔다. 그 덕분에 '범퍼카'란 별명이 생겼다. 손목이랑 발목은 전용 마사지기에 꽂았다. 멘토였던 23517기 선배가 꼭 필요하다며 강매하다시피 넘긴 제품이었는데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못 이기는 척 목 마사지기도 같이 살걸. 얼굴 뺄 일이 뭐 그리 많겠나 싶어 거절했는데 머리가 제일 무겁다. 가벼워진 본체로 헬멧을 쓰고 본체 전용 워치를 찬 후, IS546 서버에 접속했다. 간단히 오늘의 보고를 쓰고 전송한 후, 쇼핑몰에 들어가 고막 리필을 주문했다. 이 부장 성격에 조만간 또 잔소리 폭격이 떨어지리라. 아직 연수가 3개월이나 남았는데 남아있는 고막 리필은 두 개뿐이었다. 목 마사지도 살까 말까 하는데 마침 오늘만 특가에 무료배송이었다. 깨끗이 쓰고, 나도 후배 기수한테 되팔면 되겠지. 빨리 받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23521기 게시판을 들어가 보니 일본으로 발령받았던 룸메이트 지오가 강제귀환 됐다는 글이 보였다. 단축번호 3번을 눌러 지오를 호출했다. 지오는 시무룩한 목소리로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줬다. 갑자기 발생한 지진에 지구인 껍데기가 파손된 탓이었다. 같이 살 때도 어지르는 통에 싸우기도 많이 싸웠는데 그 버릇이 어디 가겠나. 집에 오자마자 껍데기는 벗어서 여기저기에 던져놓고 본체 상태로 게임 중이었던지라 지진 경보음도 못 듣고, 알아챘을 때는 이미 얼굴이 두 쪽으로 갈라진 후였단다. 접착제로 어떻게든 붙여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됐다고. 게임하다가 그런 건 비밀이니 너만 알라고 속삭였다. 어차피 행적 조회 하면 다 알게 될 것을 굳이 들킬 거짓말을 하는 것도 여전하다. 얼굴은 주문제작 상품인 데다 곧 23522기 출발 준비 기간이라 주문이 많이 밀렸기 때문에 당장 연수 진행이 어렵게 됐다. 지오는 일단 귀환 조치되고 23522기랑 같이 연수를 또 받게 됐다며 투덜거렸다. 지오의 하소연에 대충 대답하면서 나만 아니면 됐지. 그래도 한국 정도면 준수한 연수지라는 생각을 했다. 이 부장만 아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통신 종료 후, 냉장고에 넣어놨던 소주와 맥주를 꺼내 황금비율잔에 타면서 내일은 뭘 할까 생각했다. 이 부장을 들이박을 순 없으니 대신 범퍼카나 한번 타러 가 볼까. 앗! 혹시 이거 타려면 운전면허증 있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드림캐처


나는 너의 악몽이 될 거야. 꿈에서까지 널 놓치지 않을 거라고. 두고 봐.


똑똑.

입도 안 댄 캐모마일 차를 놓고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다가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왔어? 차 많이 막혔지?"

"그러게! 뭐 때문에 이렇게 막히나 몰라. 잘 지냈어? 아니구나. 다크서클이 아주 턱 밑까지 내려왔네. 요즘도 그래?"

"응, 죽겠어. 누가 재워주는 대신 아는 대로 다 대답해! 하면 있지도 않은 남동생의 포경수술 날짜까지도 알려 줄 수 있을 것 같아."

"아유, 정말 심각한가 보네. 혹시나 해서 사봤는데 일단 이거부터 받아!"

"이게 뭐야? 모빌인가?"

"‘드림캐처’라는 거야. 창문이나 침대 근처에 걸어놓으면 악몽을 잡아준다는 물건이래. 이 깃털은 좋은 꿈을 내려주고, 여기 원형 안에 엮인 실은 악몽을 잡아주는 그물 역할을 하는 거미줄이야. 이 밑에 달린 구슬은 붙잡힌 악몽이 아침 햇살을 받고 변한 이슬을 상징한대. 일종의 악몽 잡는 부적 같은 거지."


 모태신앙인 내가 하다 하다 안 되니 이런 정체 모를 민간신앙에까지 의존하게 되는구나. 하지만 한 번이라도 불면증에 시달려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잠을 자기 위해서라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은 내 마음을. 일단 악몽이라도 안 꾸면 잠은 어찌저찌 잘 수 있지 않을까? 이게 마지막 동아줄 이기라도 한 양, 드림캐처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M이 집을 나간 뒤부터 잠을 설치기 시작했으니 벌써 한 달쯤 됐으려나. 본격적인 악몽이 나를 괴롭힌 건 보름쯤 된 것 같다. 그제 밤은 수영을 못하는 내가 계곡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다 깼고, 어젯밤은 괴물에게 쫓기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꾼 뒤 침대가 아닌 방바닥에서 눈을 떴다. 잠을 못 자 몽롱해진 머릿속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다. 눈 밑의 짙은 다크서클과 깨질 듯한 두통만이 희미한 기억을 밀어내고 거기가 제 자리인 듯 똬리를 틀고 있었다. 


넌 왜 내 마음을 몰라? 나는 한순간도 너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 너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지 않다고! 


남자 친구에게 DM으로 상처 난 동물들의 사진을 보낸 계정의 주인이 M이라는 것을 안 순간 나는 진부한 표현처럼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만 같았다. 왜 그랬냐며 절교를 선언하는 내게 M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저렇게 쏘아붙이곤 얼마 되지 않는 짐을 챙겨 집을 나갔다.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로 처음 만난 이후 십 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고, 모든 순간을 함께 했었다.

그날 바로 전까진. 

‘진짜 너니? 내 악몽의 주인이.’


이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도 믿는다고 딱히 손해 볼 일도 없었기에 일단 포장 비닐을 벗겨보았다. M과 같이 살던, 지금은 내가 혼자 사는 복층 오피스텔의 통창은 직사광선이 그대로 내리쬐는 것도 문제지만 딱히 무언가를 달만한 공간이 없다는 것도 흠이다. 그렇다고 통창을 제외한 유일한 창문은 화장실인데 거기에 달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다지 무거운 것 같지는 않으니, 테이프로 창틀에 붙이는 게 제일 나을 것 같았다.  

빙그르르.

햇빛을 잔뜩 품은 드림캐처가 고요하게 제자리를 맴돈다.

머금은 햇빛만큼의 기다란 그림자가 미처 치우지 못한 M의 사진 위로 조용히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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