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에 빠르고 느림이 있겠느냐만 실질적으로 그 이별을 수용하고 소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늦다면 그 이별은 늦은 게 아닐까?
나는 몇달 전 아버지를 잃었다.
사실 아버지라고 하기에는 난감한 구석이 있다. 이 남성은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가족을 두고, 타국으로 도망쳤으나 그 기간이 길어지면서 버리고 간 게 되어버렸고 준 게 없는 만큼 뭔가를 요구할 수도 없어 어쩌다 한 번, 한국에서 만나게 되거나 이제는 본인이 늙어 더이상 몸 둘 곳이 없어도 선뜻 제 자식들에게 손을 내밀 수 없는 인물이었다.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는 돈은 제 처-그러니까, 나의 어머니-에게 일임하고 그는 오랜 기간 우리를 피하고 있었다. 자존심이 너무 강해 잡일은 도저히 못하고 처자식도 부양 못할 정도로 수입이 없어도 사장 소리를 들어야만 했기에.
그런 탓에 나는 그의 죽음이 그리 슬프지 않았다. 응급실에서는 산소 호흡기를 달고 가냘픈 녹색 선을 그리는, 차가운 침대에 누운 차가운 몸이 어색했고 장례식장에서는 이틀이 지난 후 입관할 때서야 보게 된 데다 그나마도 팅팅 부어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건 나에게 낯선 몸이다. 낯선 냄새를 풍기는 데다, 얼굴조차도, 본 지 한참이 된.
따라서 지인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고, 아무 우울도 겪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가기 직전 주문해뒀던 홍합이 냉장고에서 마지막 몸부림이라도 쳤는지 바닷물이 말라 허옇게 소금 알갱이가 번진 방바닥을 닦고, 바로 업무에 돌입하고, 밀린 연락을 답장하고... 오히려 내게 그들의 조심스러움은 유난과 다를 게 없었다. 뭔가 큰 일을 겪은 게 아닌데. 따지자면 나는 오촌 당숙쯤 되는 사람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슬플 게 무엇이 있고 감정을 추스릴 건 또 뭐가 있는 건가. 으레 하는 걱정의 말이라는걸 알면서도 차가운 머리는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다.
유품을 정리하며 본 아버지의 노트에는 내 이름이 단 한번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도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어린 시절의 이야기였고 정작 그 노트에는 자신의 자식도 아닌 사촌들에 대한 말이 대부분이었다. (내 형제들은 이것때문에 상당히 속이 상했던 모양이다) 이것조차 가볍게 그러시겠죠, 하고 넘길 정도로 나는 아버지에 대한 정이라곤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문득 툭, 하고 뱉듯이 새벽 깊은시간에 사람들에게 괜히 위로받을 만한 불행이 없어도 되니 살아서 진작부터 같이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말을 했다.
그 뒤로 며칠을 울었다. 마지막 전화에서 그는 내게 한국으로 돌아와 전국을 떠돌든 도시에 자리를 잡든 이제 자식들 얼굴을 보고 살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
그 얘기에 나는 은연중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조만간 아버지가 사업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고, 그리고 가끔 술을 먹고 전화해서 잔소리를 하고, 어쩌다 한 번 받아보던 용돈도 몇 번이 되어 나도 '아빠가 준 용돈'으로 이번에는 뭐 샀다... 라고 남들처럼 자랑할 수 있는 미래가 올 거라는 생각을.
곁에 아무도, 없이 외롭게 버섯처럼 타국의 단칸방에서 처참하게 상해가던 사람이지만 건강할 거라고. 그래서 언젠가 돌아올 거라고.
그래서 죽었을 때 슬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술을 너무 좋아해서 문제지만 매우 건강하고 무책임한 사람이었으니까. 올해 말쯤 돌아와서 내년부터 <가족> 비슷한 걸로 어떻게든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약간의 기다릴 시간조차 없이 죽은 채로 이 모든게 끝이 나버려서.
아버지 어머니에게 효도해라, 라는 말을 무작정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랐고 지금도 효도하라는 말은 딱히 쓰지 않는다. 다만 적어도 후회할 일은 만들지 말라고 하고 싶다.
나는 후회할 것도 없었고 무디기도 더럽게 무딘 인간이건만 이렇게나 느린 이별에 홍합처럼 몸부림치는 바닷물을 뱉고 있는데 후회까지 하면 어떻겠는가...
최근 내가 겪는 이 몸부림이 끝나고 언젠가 마침내 쏟아낸 바닷물이 모두 마른다고 해도 완벽하게 닦일 일은 없다.
언제까지고 내 안의 잘 닦이지 않는 깊숙한 위치에 결정으로 남아 그 알갱이로 마음이 여려질 때마다 까슬한 질감을 낼 것이다. 내가 다른 누군가의 소금 결정이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