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교에 입학하기 두달 전 자취방을 보러 올 때서야 핸드폰을 바꿨다. 그동안은 피쳐폰을 사용했는데, 접고 닫는 경첩 부분의 컨디션이 영 좋지 않으면 검은 아교가 묻어나오기도 했다. (정말로 아교가 맞는지는 알 수 없다. 검고 진득한 액체라는 것 밖에 모르므로)
아무튼 핸드폰을 바꿨다. 메이저한 업체의 메이저한 기종으로. 그 당시의 최고 용량은 128기가바이트였고 아무래도 나는 형편상 건방지게 만원 앞에 세자릿수가 붙는 꼴은 용납할 수가 없었기에 반토막인 64기가바이트로 구매했다. 직전까지 문자 200통까지가 보관의 한계인 데다 카메라기능이 없었던 핸드폰을 사용했으니 그것조차 과분했다. 실제로 나는 핸드폰을 굉장히 알뜰하게 사용했다. 구매한 첫 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설치한 게임이 2기가. 그 외에는 꼭 필요한 앱이 아니면 설치하지 않거나 설치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제거했다. 이미 깔린 앱들도 철저한 메모리 검열을 피해갈 순 없었다. 캐시 삭제, 데이터 삭제... 결벽적으로 32기가 언저리를 유지하던 용량은 혈육 하나를 하늘로 보낼 때 쯤부터 앞자릿수를 바꿨다. 장례 과정을 모두 녹화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사람과의 추억을 유지하기 위해. 미학에서 어긋난 사진은 칼같이 지우는 주의였으나 미학과 관계 없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섭섭한 이미지들이 핸드폰 한켠에서 고이 잠들어갔다.
그리고 40대를 아등바등 지키던 핸드폰 용량은 또 한번 앞자리를 바꾸게 됐다. 다른 혈육을 보내게 되었는데, 앞선 사람보다도 더 나에게 가까운 이라 나는 그와 나눴던 대화와 연락의 흔적들, 그가 마지막으로 살아가던 장소의 서늘하고 고독한 공기를 담은 영상과 그의 산소로 가는 길을 촬영한 영상 등 자질구레하고 다시는 웬만해선 보지 않을 영상들이 쌓였기 때문이다.
버릴 수 없는 파일이 늘어갈수록 내 개인적으로 운용할 공간은 작아졌다. 이쯤에서 온라인 저장소에 파일들을 옮기긴 했지만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었다. (사족이지만, 실제로 내가 업로드를 하고 1년이 채 되지 않아 사용이 곧 중단된다는 공지가 떠서 다른 드라이브로 옮겼다)그러다 문득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이 죽은 사람들의 흔적을 다시 볼 일이 없을 거라는 걸. 찾고 싶어하지 않을 거라는 걸. 그러니 언제라도 찾을 수 있게 핸드폰 구석탱이에 계륵처럼 남겨두는 건 도저히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이것은 오히려 무뎌지지 않을 수 있던 양심의 삼각형을 무디게 하는 훈련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또 한번 혈육을 보낼 때 삭막한 심상으로 벽에 기대 빨리 사흘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을 장래희망으로 삼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21세기의 청년들이 모두 핸드폰을 들고 명경을 찍으려 할 때 홀로 아무것도 없이 웃으며 그 경치를 오로지 눈에만 담는 할머니의 사진을 아는가? 디지털이 필요하지 않은, 자신의 감각과 기억을 더 중시할 줄 아는 세대의 사람들.
그런 촌철살인의 순간을 다시 한 번 사진으로 담은 아이러니를 보고 있자니 죽은 뒤에나 그들의 추억 흔적을 버리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쌓아두고 대면조차 못하는 건 내가 살아있을 적 그들에게 성실하게 대하지 않아서인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고야 마는 것이다.
나는 내 사진조차 곧잘 지운다. 잘 나온 사진, 못 나온 사진, 남이 찍어준 것, 내가 찍은 것... 내가 죽고난 뒤에도 누군가가 내 사진을 차마 지우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하면 답답하다. 돌아보지 않을 추억을 내 64기가바이트 속에서 영원히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들을 추모한다는 허울 좋은 말을 할 거라면 그들을 진심으로 대했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나는 숫기 없는 인간이고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이제까지처럼 건조하게 인간을 대할 테니 어쩌면 이 글은 내 염세적이고 차가운 심성에 대한 모호한, 죄책감을 가진 사람인 양 하는 변호가 될 수도 있다.
아무튼간에, 대면조차 못할 추억이라면 차라리 지워버리고 그들의 산소에 술이나 한 잔 뿌려주는 게 차라리 맞는 처사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