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식당의 생태계

그리움

by 청흥

<천원식당>이라는 곳이 있다. 말 그대로 천원에 찬과 밥,국을 식판에 담아 파는 식당이다. 전국에 몇백개의 지부가 있고 저마다의 서브 네임을 가지고 있다. 직원은 대개 자원봉사자이고 운영에 필요한 장소며 식재료는 누군가에게 지원을 받는다. 생소할 수도 있고 자주 들어본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 곳에서 천원을 내고 밥을 먹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봉사를 하러 가기도 하고, 밥을 먹으러 가기도 했다.


천원식당이라고 해서 음식의 퀄리티가 떨어질 일은 없다. 밥솥 가득 한 밥은 하얗고 포실포실하고, 국솥 가득 든 국은 따뜻하고 건더기도 많다. 흔히 저렴한 식사에서 나오는 흐린 똥국과는 완전히 다르다. 제대로 된 재료를 써서 우려낸 국물에 누군가가 넘겨준 팔지는 못하지만 먹는 데는 지장 없는 채소를 다듬어 넣는다. 반찬 역시도 누군가가 냉동고 깊숙한 곳에서 뒤늦게 찾아낸 고기며 생선, 야채를 그날 그날 다듬어 사용한다. 한국인의 밥상이라면 빠질 수 없는 김치는 어떨까. 모든 천원식당이 이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갔던 곳은 가게의 주인격에 해당하는 최고참 봉사자분이 직접 담그셨다. 그렇게 탄생한 한 그릇의 식판은 여느 학교며 공공기관 못지 않은 최상급의 한 끼니이다.


식당 창고에는 소금이며 대용량 세제, 각종 조미료와 건조식품이 즐비했다. 언제 손님이 더 올지 몰라 겹겹이 겹쳐둔 의자와 밥상이 구석에서 얌전히 먼지 닦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창고에는 환한 햇살이 비치는 작은 마당과 이어지는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고참 할머니는 짬만 나면 쌀을 고르고 계셨다. 어떤 물건이라도 받아 음식을 뚝딱 만들어내는, 그렇지 않으면 운영이 불가능한 이 식당은 주인이 먹기를 포기하고 처치가 곤란해 떠맡긴 식재도 많았다. 특히 쌀이 그러했다. 벌레가 가득하거나, 흙이 섞여 있거나... 푸른 비닐 위에 흩뿌려 놓은 쌀 위로 검은 벌레들이 우글우글 기어다니는 장면은 내 인생에서 본 징그러운 것 중 손에 꼽을 정도다. 쌀과 벌레가 거의 반씩 섞여서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모습이 차라리 벌레만 있었다면 이정도로 괴롭지는 않았을 텐데.. 싶었다. 아무튼 그런 쌀을 체에 치고 벌레를 쫓아내고 깨끗이 씻어 밥을 짓는다.(이 레벨에서 생리적으로 무리인 사람들도 있겠다)


천원식당은 오히려 많이 팔 수록 남는 게 없어진다. 밑지는 게 돈 뿐이면 뭐 다행인데, 식재까지 밑져버리면 내일 이 곳에서 끼니를 때워야 하는 사람들은 하루를 꼴딱 굶어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최대 판매량을 미리 정해놓고 파는 시간도 정해놓는다. 식당에 며칠을 연속으로 일하러 가 보면 매번 비슷한 사람들이 어제와 같은 옷을 걸치고 밥을 먹으러 온다. 연령대는 아무래도 어깨는 가볍고 발은 무거운

분들이 많으시다. 자기 손으로는 식판을 들 수 없을 정도이거나 식당이 문을 열기 한시간 전부터 집을 나서서 꼬박 걸어도 겨우겨우 문닫기 조금 전에야 도착할 수 있는 분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모두 천원을 소중하게 손에 쥐고 떳떳하게 밥을 먹고 간다. 식당의 입지는 상당히 외진 곳에 있었다. 햇빛도 들지 않을 뿐더러 바로 옆이 사람 하나 들어갈 수 없이 삭아버린 폐가였는데, 이것은 장소 역시 기부를 받다 보니 사람들이 쉽게 오갈 수 있는 곳은 아무래도 장소 제공자들도 먹고 살아야 하기도 하고, 여하튼 가게 입장에서는 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장 가까운 곳에 있어 재료 조달이며 오고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천원식당의 앞치마를 걸치고 시장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인근 시장 상인들에게 세모진 눈빛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음식을 샀을 때 덤을 주는 건 아니다)


천원을 쥔 손들이 질서 정연하게 밥 앞에 줄을 서고 식판을 받아 밥을 받고 다 먹은 것을 설거지 담당에게 건네주고 물 한 잔을 마신 뒤 가게를 나선다. 이게 손님들의 보편적인 이용방법이다. 천원식당의 손님들은 잔반을 많이 남기지 않았다. 하루 팔아 중간 사이즈 쓰레기봉투를 하나 채우는 수준이다.


잔반을 버리고 애벌 설거지를 마친 식판과 식기가 역시 맘씨 좋은 누군가가 적선해 준 자동 식기세척기 안으로 들어갔다 나와서 차곡차곡 개어지면 설거지가 끝난다. 설거지가 끝나면 다른 봉사자들도 식당 부엌 청소며 식당 청소를 마무리하고 있다.

식당은 문을 열기 전에는 아주 고요했고 문을 연 후에도 고요하다. 떳떳하지만 소란스럽지 않은 식사가 하나 둘 모여 시험 전의 독서실과도 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모든 장사가 끝나고 봉사자들이 수고한다는 말을 나눌 때쯤에나 조금 활기가 도는데, 이때도 금방 헤어지기 때문에 가게는 늘상 조용하다고 할 수가 있다.


모든 식당이 그렇듯이 가게의 맛은 부엌 주인이 결정하는 거나 마찬가지고, 내가 일하고 먹었던 식당은 꽤 맛이 좋았다. 내가 자주 의욕을 잃곤 하는, 식욕이라곤 여름 복날 직전의 닭만큼도 없는 한여름이었음에도 어지간하면 쌀밥 한 그릇정도는 비울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이따금 천원식당의 회칠로 무마하려 노력한 허름한 인테리어와 투박한 식탁과 천원짜리와 동전이 도그륵 도그륵 담기는 금고와 창문이라곤 없이 어슴프레한 가게의 분위기, 벌레먹은 쌀이 널려 있던 쪽마당과 겨울이면 세제가 얼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싶은 벽이 얇은 창고에 대한 애매한 향수를 느끼고 만다. 때때로 그곳의 질서정연한, 지폐 한 장 혹은 동전 2개,6개,10개를 꼭 쥔 완고한 손길들의 꼿꼿한 식사에 대한 그리움을 느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