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나의 삶에 대한, 닥쳐올 그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래, 내겐 이것밖에 없어.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굳세게 붙들고 있어.
<이방인>을 읽고
이 소설은 주인공 뫼르소가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소식을 들은 날부터 우발적인 동기로 아랍인을 총으로 쏘게 되면서 재판을 받게 되는 이야기다. 태양 때문에 우발적으로 총을 쐈지만, 계획 살인이라는 범죄로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여기서 의아했던 점은 뫼르소는 법정에서 자신의 억울한 입장을 적극적으로 표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모든 정황들은 진실과 멀어진 채로, 자신의 운명에 철저하게 이방인으로서 서있을 뿐이다.
읽는 내내 뫼르소라는 인물의 행동이 답답하면서도 그의 심리가 궁금했다. 계획 살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입장을 크게 변론하지 않는 의지 없는 소극적인 태도에 허무하기도 했다. 사형 선고를 받는 순간에도 어떻게 이렇게 침착할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는 순간 자신의 운명에 일관되게 무덤덤한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의 진짜 마음은 무엇일까 답을 알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자신의 삶을 포기하거나 체념한 것처럼만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유로워 보였고 왜 그럴 수 있었던 걸까, 알고 싶어졌다.
사람들은 정말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걸까
뫼르소가 재판받는 과정은 부조리한 현실의 작은 판이었다. 뫼르소는 계획 살인을 도모하지 않았지만 법정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진실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뫼르소는 자신의 입장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긴 했다. 하지만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우발적으로 총으로 쐈다는 말은 배심원들에게 우스꽝스럽게 들릴 뿐이었다. 사람들은 진실을 정말 알고 싶어 하는 걸까.
법정의 사람들은 뫼르소가 계획 살인을 했다는 낙인을 찍은 후, 그의 행동과 살인을 어떻게든 관련짓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자신들이 생각한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에 합당한 요인을 찾고 있는 듯했다. 검사가 찾은 뫼르소의 심리적 동기 역시 꽤 논리적이고 그럴듯해 보이는 증거였지만, 계획 살인이라는 결과에 상식과 벗어나는 행동이라는 원인을 억지로 퍼즐 맞추는 식이었다. 결론적으로 틀에 벗어난 뫼르소의 과거와 현재 행동들은 모두 계획 살인과 맞물리게 되었다.
뫼르소는 사람들의 상식에 어긋나는 인물이었다. 과거의 행동이 문제가 되는 것들은 이런 것이었다. 예를 들어,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냉담한 태도를 취한 것, 엄마 나이를 모르는 것, 장례식 다음 날 마리와 데이트한 정황들. 현재의 행동이 문제가 되는 것들은 이런 것이었다. 예를 들면, 현재 죄를 뉘우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 신을 믿지 않는 것. 그의 행동은 살인 사건과 연루시켜 문제 삼기에 적절해 보였던 것이다.
법정의 사람들이 문제를 삼고 있는 상식적으로 보이지 않는 그의 행동들은 사실 아무런 의미도 의도도 없었다. 그의 무심한 성격으로 인해 하는 말과 행동이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재판은 살인 사건의 본질과는 멀어진 채로 무언가가 결정되고 있었다. 뫼르소는 자신의 사건을 두고 본인만을 빼놓은 채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
만약 뫼르소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그의 이상한 행동을 모두 문제 삼을 수 있었을까? 조금 이상하게 보이긴 해도 우리 주변에 있을법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문제 삼지 않았다면 그가 일상생활에서 보여줬던 행동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살인을 저질렀고 그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그가 과거에 했던 관련 없는 행동들까지 모두 재판대에 오르게 되었다. 이제는 '왜 그게 뭐 어때서'라고 넘기기기에는 상식에서 벗어나 보이는 행동들까지 문제가 되어,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인물이 된 것이다. 문제를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행동들까지, 살인이라는 명목하에 과거와 현재 행동들이 계획 살인의 심리적 증거가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살인이라는 범죄 자체에 대해서는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할 테지만, 그가 남들과는 조금 다른 성격과 행동을 했다고 해서 그의 모든 행동들을 범죄와 모두 관련지어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는 남들보다 무심했을 뿐이다. 감정이 더 메마르고 열정이 없고 더 무관심했을 뿐이다. 하지만 법정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한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이 생각하는 상식에서 어긋났다는 이유로 뫼르소의 모든 행동을 심판대에 올려 재단하고 있다.
내가 '그 이상한 뫼르소'일지도
우리 모두는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데, 과연 상식이 1개인 세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물론 살아가면서 꼭 지켜야 하는 법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생각이 다양한 만큼 각자에게 통하는 상식은 하나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하고 있는 생각과 상대방이 다르다고 해서 타인이 상식에서 벗어났다고 보긴 힘들다. 나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일 수는 있겠다. 그리고 그럴 수도 있는 거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할 자유는 있으니까. 그런데 반대로 타인이 봤을 때 나 역시 이상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모두 다 이상한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이상하다는 게 나쁜 걸까? 정상적이지 않은 걸까?
우리는 꽤 이상한 생각을 많이 하고 살아간다. 겉으로 티 내지 않을 뿐이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해 보여서 말로 꺼내지 않았을 뿐이다. 서로서로 우리는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상식에 어긋났다는 이유로 함부로 누군가를 심판대에 올릴 수 있는 입장은 못 되는 것이다. 나 역시 내 안의 틀과 상식으로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생각만큼 각자 다른 섬에 살고 있다. 서로 다른 세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모든 생각들은 배척할 것이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것이 된다.
내가 '나의 기준대로 행동하길 바라는 재판관'일지도
우리는 보이지 않게 들리지 않게 누군가를 무언가를 판단하며 살아간다. 나도 마음속으로 누군가를 재단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나의 생각이 단단해지면서 나와 아주 다른 사람을 봤을 때, 나와 다른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는 있겠다 (이상한 게 꼭 나쁜 건 아니니까). 이럴 때 우리는 괜찮은 생각 하나로 서로에게 관대해질 수 있다.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조금 더 서로를 너그럽게 바라보면 재판관 역할에서 내려올 수 있다.
나와 아주 다른 사람에게 그럴 수 있다는 마음을 장착하면, 그의 이상한 행동이 그렇게까지 불편하진 않을 것 같다. 부모님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는 게 이상해보일 수는 있다.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무던한 사람도 있고 혼자 있을 때만 아파하는 사람도 있을 수도 있다. 겉모습으로 알 수 없는 거다. 그리고 어떤 모습이어도, 그게 꼭 이상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도 우리 스스로 아주 모르진 않을 것 같다. 우리가, 내가 상식적인 생각만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이상하다고 해도 뭐 괜찮지 않나.
이방인의 태도로,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어떤 걸까
뫼르소는 가면을 쓰지 않는다. 뫼르소는 일관되게 끝까지 자신의 모습이었다. 어떤 큰 뜻을 품고 자신만의 신념을 지키려고 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어떤 정직에 대한 엄청난 신념이나 대의가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그저 자신의 원래 모습으로 있었다고 해야 할까. 그는 평소 무심한 성격대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진실을 말할 뿐이다. 상황과 타협하지 않고 그저 자신이 느낀 것을 은폐하지 않고 말할 뿐이다.
법정에 있는 사람들은 각자 뫼르소에게 바라는 것들이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상식으로 둔갑시켜 그가 꼭 지켜야 하는 법처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뫼르소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자신의 감정대로, 생각대로 말할 뿐이었다. 재판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이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에게 보이지 않자 가장 쉬운 방법으로 그를 배척하는 것을 선택했다. 나의 기준대로 행동하기를 바라는 것이 폭력인 줄도 모르고. 그럴수록 뫼르소는 철저하게 법정에서 외부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뫼르소는 사회가 바라는 관습을 따르지 않는다. 사람들이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이방인이기를 선택한다. 왜 그랬을까. 자신의 기준이 절대 진리인 줄 알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 부조리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회가 그리고 법정의 사람들이 바라는 것을 하나도 하지 않음으로써 반항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뫼르소는 부조리한 재판 과정에서 아주 사라지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법정에서 철저하게 이방인으로서의 모습을 선택했던 걸까.. 생각했다. 분명 포기는 아니었다. 그는 더 자유로워 보였으니까. 나는 그 이유를 계속 찾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뫼르소의 이방인으로서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는 마지막 죽음 앞에서도 일관되게 이방인으로서 서있었다. 그리고 가장 자유로워 보였다. 아무것도 희망할 것이 없을 때 오히려 모든 것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울 수 있었던 걸까..
죽음 앞에서 오히려 자유로워 보이는 그의 심리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뫼르소의 이방인으로서 행동을 통해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계속 그의 심리를 따라 답을 찾아다녔지만 정확하게 '이거야!' 하는 심리를 읽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생각을 많이 하게 했고, 읽은 후에도 생각을 여전히 많이 하게 하는 책이었다. 한번 더 읽으면서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