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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부 Oct 26. 2022

20대를 도둑 맞았어

늙어버린 가족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엄마집에 다녀오는 길. 오랜만에 형을 봤다. 나와 세 살 터울인 형은 너무 늙어보인다. 이제 30대 중반인데, 40대, 아니 50대 같아. 아주 예전부터 생각했다. 엄마와 형은 20대와 30대를 잃어버린 것 같다고. 그 시간들은 어디로 달아났을까?


너무 늙어버린 형을 보면 나 혼자 이렇게 잘살려고 노력하는 게 무슨 의미일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형은 신장이식을 해야 살 수 있는데, 수년째 기다려도 감감무소식.


- 형, 신장이식은 도대체 언제해?

- 기증자가 있어야 하지. 

- 그럼 언젠가 할 수는 있는거야?

  평생 못하면 어떻게 해? 그럴 수도 있는거야?


나는 가끔 당연히 알아야하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있다.


- 엄마, 우리 아빠는 왜 죽었지?

  심장마비 맞지?


가족에 관해서는 내가 알고 싶은 만큼만, 딱 그만큼만 알고서 끝내려고 한다. 형은 아픈데, 아주 오래 전부터 아팠는데 나는 형이 사실 왜 아픈지를 몰랐다. 불량한 인생을 살아왔으니까, 되는대로 막 살아왔으니까 벌을 받은 거라고 생각했다. 나랑 엄마를 너무 힘들게 했으니까 그런 병이 생긴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 형에게 물어봤는데, 고혈압과 당뇨 때문이라고 했다. 형은 나이도 어린데, 왜? 하고 물었더니 아빠에게서 유전된 거라고 한다. 사실 나는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가짜인지는 모르지만, 그동안 내가 아무 것도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노력하면 우리 세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올까? 나는 아무 짐도 지기 전이지만, 내가 바라는 행복이 오기 전에 짐 같은 일들이 먼저 올까봐 늘 어느정도는 무섭다. 약간씩 걱정이 된다.


'심근경색'을 네이버에 검색했더니 "심장은 온몸에 혈액을 보내 산소와 영양소를 전달하는 펌프로, 평생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일합니다"라고 나왔다. 심장이 멈춘 사람들은 그저 단 한 순간만이라도 쉬고 싶었던 걸까? 이런 생각을 하니까 딱 지금의 내 나이에 심장이 멈춘(멈췄을) 아빠 생각이 났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는 평생 알 수 없겠지만, 하나는 알겠다. 아마도 쉼이 필요했던 사람이겠지.


나는 우리 가족들이 아픔을 참지 않았으면 좋겠다. 통증이 느껴지면 참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 생각은 하지 않고 일단 119를 부를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하는데... 일단 나부터 아프만 병원갈 생각 대신 참고 견디기를 택하는 사람이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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