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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부 Oct 24. 2022

가난의 내숭

사람들은 잘 모른다. 가난하면 내숭이 필요하다는 걸.




사람들은 잘 모른다.

가난하면 내숭이 필요해진다는 걸.


궁상맞은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영화를 볼 때. 

날 것의 풍경이 담긴 드라마나 유튜브 영상을 볼 때. 

등장인물들에게 너무 깊이 이입하다가도 

다시 정신차리고 표정을 고친 적이 있다.





반지하가 그렇게 끔찍해?


전세대출이자가 한 달에 50만 원. 45만 원에서 1만 원, 2만 원씩 야금야금 이자가 오르더니 지난 달부터는 50만 원을 넘겼다. 지금 사는 집은 (작지만) 방 두 칸에 주방 겸 거실 하나. 보일러실이긴 하지만 짐을 보관할 수 있는 다용도실도 있다. 너무 욕심을 부렸나? (조금) 넓은 집에 쾌적하게 사는 것보다 좁은 원룸에서 이자가 아깝다는 생각 없이 살던 게 더 나았던 것 같기도 하고. 아직 이사가려면 반 년이나 훨씬 더 남았는데, 시간이 날 때면 부동산 앱에 들어가보곤 한다. 전세금을 이만큼 줄이면, 이만큼 여유가 생기고, 그러면 또... 돈에 대해 집착하지 않아야 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데 어떻게 하면 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부동산 앱에서 전세 1억 5천을 설정하면 서울에는 집이 (진짜로) 하나도 없다. 간간히 목록에 뜨는 집을 클릭해보면 모두 반지하다. 반지하라고 해서 모두 못 살 만한 집은 아니니까 ‘다음엔 반지하에 가고 돈을 좀 아낄까?’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애인이 와서 말린다.


- (아무리 돈이 없어도) 반지하는 절대 안 돼.  


절대 안 될 것까지 있나 싶은데, 올여름 서울, 그것도 강남 한복판에서 물난리가 난 것을 보고 그런 태도가 더욱 확고해졌다. 반지하는 꿈도 꾸지 말라고. 내가 반지하에 살겠다고 하면 자기 주식을 팔아서라도 나에게 보태줄 것 같은 기세다. 그 마음이 고맙지만, 그런 마음이 가끔은 나에게 커다란 좌절감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아마 만나는 내내 말하지 못하겠지.




어제는 애인과 함께 유튜브로 반지하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다.  


- 나보라고 틀어준거야? 


하고 웃으며 물었더니, 그냥 알고리즘에 떠서 튼 거라고 했다. 영상 속에서 반지하는 더럽고, 위험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너무한’ 그 화면들을 바라보면서 ‘반지하라고 해서 모두 저런 건 아닌데...’ 하고 변명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애인에게 말하진 못했지만, 사실 반지하에 꽤 오래 살았다. 초등학생 무렵에 2년, 고등학생 때부터 20대 초반까지 4~5년. 적지 않은 시간을 반지하에서 살았다. 


집집마다 전단지를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반지하인데도 'B01호' 대신, 101호, 102호라고 호수가 붙은 집들을 봤다. 그때마다 우리집도 저러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친구들이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늘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정말 친한 친구들이 아니면, 늘 집 한참 앞에서 헤어지곤 했다.


안 살 수 있다면야 가장 좋겠지만, 살아야 한다면 뭐 그것도 그렇게 못살 건 아니지. 부끄러움의 기억이 '위험함'이라거나, 불편함과 같은 것들을 모두 지워버렸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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