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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부 Oct 24. 2022

치과에 간다는 것

살다보면 소소한 기념일이 생긴다. 치과 치료가 끝난 날 같은.

살다보면 소소한 기념일이 생긴다. 올해는 4월 21일이 기념일 목록에 추가됐다. 나에게는 나름 의미있는 날이 되었다. 왜냐면 오랜 숙원이었던 치과 치료를 모두 끝낸 날이니까. 


2021년 2월 치아보험에 가입했다. 그리고 차곡차곡 보험을 부었다. 1년이 지나고 나면 혜택을 볼 수 있다는데,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1년 하고도 2개월을 더 부었다. 원래 치과보험은 딱 1년 붓고 이를 고친 뒤 해지하는 거라는데, 다들 이렇게 한다는데, 괜히 민망해서. 나의 약삭빠른 셈을 누군가에게 들키는 게 늘 창피하다. 보험 상담사는 나 같은 사람이 처음이 아닐 텐데. 너무 당연한 일일텐데. "정말로 해지하시겠어요?"하는 질문에 "네"라고 대답을 하기까지 몇 번 망설였다. 다시 이가 아프면 어쩌지. 또 썩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그만 걱정이 들어서.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사람들의 구김없음이 늘 좋아보였다. 어떻게 저 사람들은 입 속을 다 보여줄 수가 있을까? 싶었다. 나도 사람들 앞에서 늘 입을 크게 벌리고 웃고 싶었는데, 어금니에 시커먼 아말감이 보일까 봐 창피했다. 그런데 이제는 크게 웃을 수 있다. 어금니까지 모두 하얘졌다. 


내 이를 일단 다 고쳤으니, 엄마도, 형도, 다른 가족들도 다 고쳐주고 싶은데 마음만큼 쉽지가 않은 일이다. 어렸을 때부터 늘 엄마와 형에게 양치 좀 잘하라는 잔소리를 했다. 엄마와 형이 양치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잠자리에 드는 걸 보면 너무 화가 났다. 건강하지 않은 식단, 먹고 바로 눕는 것 등 다른 것들이 더 건강에 좋지 않은 습관이었을텐데, 왜 양치에만 그렇게 큰 화를 냈는지. 이가 썩는다는 건 내가 몇만 원으로 감당할 수 없는 큰 돈이 드는 일이라는 걸, 어렸을 때부터 어렴풋이 알았기 때문인 것 같다. 감기나 두통같은 병이야 금세 고치고 아물지만, 이는 그렇지 않으니까. 치과는 너무 비싸니까. 나는 그만큼의 큰 돈이 없으니까.


대학생 때 이모에게 돈을 빌려서 치아교정을 했다. 아프고 귀찮았지만 좋았다. 이렇게 큰돈을 들여서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내가 나를 위해 써본 가장 큰 금액이었다. 당장 아파 죽지도 않는 일을 위해 돈 몇백만 원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치과에 가는 걸 좋아했다. 사실, 지금도 치과에서 의사가 내 입속을 들여다보는 순간을 좋아한다. 치과 진료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다들 ‘왜?’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는데, 누군가 날 살피고 고쳐준다는 그 기분이 좋았었구나 하고 이제야 깨닫는다. 연민도 깊어지면 병이라는데, 이 정도면 이미 중증이다.


내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그들이 양치하지 않고 잠자리에 드는 날들이 많을 것이다. 하루에 3번 꼬박꼬박 해야 하는 양치 대신, 하루에 3번 단돈 천원이라도 그들을 위해 모아놓는 게 정답이라는 걸 안다. '미운 마음' 위에 '위하는 마음'을 쌓는 일이 쉽지 않지만, 정말 쉽지는 않지만.


엄마와 형의 이가 오래 오래 건강했으면 좋겠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의 소원을 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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