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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부 Jul 10. 2021

고급 쇼핑백에 담아온 딱복

엄마는 모를 것 같은 브랜드의 쇼핑백이 있었어


나 실수 해서 30점은 더 떨어졌다


반찬을 받으러 엄마네집에 가는 길.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서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었는데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들 넷이  버스에 탔다. 뒤쪽으로 와서 둘은 내 옆에 앉고 둘은 앞에 앉았다. 마침 음악을 안 듣고 있어서 아이들의 대화가 고스란히 내 귀에 들렸는데.


- 시험 잘 봤어?

- 망했다. 나 마킹 밀려서 30점은 더 떨어졌다.


"실수했네, 실수."라고 웃으면서 말하는데 그 모습이 살짝 짠하고, 살짝 귀엽고, 살짝 부러워서. 실수를 해도 괜찮고, 하면 안괜찮은 나이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실수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서, 새까맣게 잊어버려도 괜찮은 일들이 많은 시절들을 마음껏 누리길 바랐다. 실수는 정말 실수인 거니까 세상이 무너질 듯이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건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우르르 탄 아이들이 몇 정거장 안가 다시 우르르 내렸는데, 옆 자리를 보니 의자와 의자 사이에 핸드폰이 떨어져있었다. 버스가 이미 출발한 뒤라서 나는 창문을 열고 "저기 핸드폰! 핸드포오오온!"하고 외쳤는데 무리 중 한 명이 놀란 표정으로 주머니를 뒤지더니 이내 버스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마침 버스도 느릿느릿, 정류장과 정류장 사이도 그리 멀지 않아서 다음 정류장에 버스가 멈췄을 때 창문으로 전해줬다. 창 밖에서 고개를 숙이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인사가 아무렴 괜찮아요, 괜찮아요 하는 말처럼 들렸다면 그건 조금 억지려나.

 



엄마가 쇼핑백 챙겨뒀어


엄마 집에 있는 고급스러운 쇼핑백은 아마도 내가 다 쓰는 것 같다. 버스에서 냄새나지 말라고 비닐봉지로 꽁꽁 싸맨 반찬들을 빳빳한 쇼핑백에 담아서 집에 가지고 온다. 엄마는 이런 브랜드가 있는 줄도 모를 거 같은데, 이 쇼핑백들은 다 어디서 난 건지. 들고 가는 길이 창피하지 말리고 모아둔 가방 중에 가장 빳빳한 걸 꺼내줍니다. 밥에 목숨거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먹는 건 어쨌든 배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할 때가 많지만, 결국 사람은 자기가 먹은 음식으로 자신을 설명하게 되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 내가 먹은 음식들로 나를 말할 수 밖에 없겠지. 가족은 같은 식탁에 앉으니까. 같은 음식을 먹으니까 가족인 것 같다. 좋아서 닮고 싫어도 닮게되는 것.



나는 서울에서 집값이 제일 저렴한 동네 중 하나에 살고 있는데, 서울에서 조금 벗어난 엄마의 동네는 우리집보다 더 저렴하다. 높은 건물은 찾아볼 수 없다. 쓰러져가는 집들이 쓰러지길 바라는 마음과 쓰러지지 않고 어떻게든 시간이 흘러가길 바라는 허망한 마음들을 만났다. 그건 내 마음이기도 했는데 이곳으로 엄마를 만나러 올 때면 부담스러운 마음과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차곡차곡 쌓인다. 쌓자마자 진득하게 눌러붙어서 다시는 분리가 되지 않는 손쓸 수 없는 짐더미처럼. 부자 동네 가난한 동네, 이렇게 나누고 이름 붙이는 게 얼마나 나쁜 일인지 머리로 다 알고 있는데, 엄마네 동네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든다. 버스를 타고 내가 서둘러 도착하고 싶은 곳은 어디일까. 이곳을 닮은 엄마를 떠나 잠시 잊고 있으면, 안 보고 있으면 나는 내가 사는 동네를 닮은 사람이 되는 걸까. 아니다.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양손에 들고간 엄마 반찬. 엄마 반찬을 먹고 나는 이렇게 계속 살고 있으니까. 얼른 돈을 모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덜 가난한 풍경을 보여주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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