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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나를말하는사람 May 21. 2022

결혼, 그 쓸쓸함의 기록 9

맞아. 내가 잘난 체 한 게.


 남편의 ‘이혼하자’라는 발언이 있기 전까지는 남편이 정상범위를 벗어난 사고체계를 가졌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남편이 나와는, 어쩌면 다른 보통 사람들과도 다른 상식을 가졌다고만 생각했었고,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이 생기기 시작한 이후로부터, 나의 의견이 란 건 머릿속에서 되도록 생각을 안 하려고 하고 그의 생각을 존중하고 인정해주려 노력했다.


이런 일이 일어난 건 나란 사람은 내 의견이 하나도 없이, 다른 사람의 의견만 따르면서 내 목소리를 내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는 사람이어서 그랬을까?


아니 숨죽이고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면, 이 결혼이 행복했을까?

아니.. 아니다. 맞벌이어서 육아나 집안일은 나눠하거나, 한쪽이 일이 생기면 다른 배우자가 잠시 맡아야 하는 상황이 생기곤 했는데, 그는 그런 상황에 매우 화를 냈고, 어떤 논리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내 잘못으로 몰아갔기 때문에, 어떠한 성격을 가지더라도 이 결혼 생활이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남편은 내가 조금이라도 의견을 내기라도 하면, 꼴페미 짓한다던가 잘난 체한다며 조롱했다.


이렇게 폭언과 막말을 듣는 상황이 수도 없이 반복되었는데 난 왜 진작 인지하지 못했을까?…


학창 시절과 대학시절까지 나는 매우 활발했고, 처음 만나는 친구와도 재미있게 술 마시고 떠들고는 놀았는데, 그때뿐 거의 따로 연락하지는 않았다.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친구가 나는 가장 친하다. 고 생각했었고 나와 취향이 비슷하고 그것도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 한두 명 정도였다.

이후 동호회 활동에서도 비슷한 패턴으로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동호회 특성상 대규모 모임이 많았지만 따로 연락해서 만나 시시콜콜한 수다를 떨 수 있는 사이가 나에겐 친한 친구였다.


이렇게 내가 친구를 많이 만드는 사람은 아닌 데다, 그중 매우 친하다는 친구에게도 정말 힘든 고민을 털어놓지 못한다.

언젠가 회사에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선임자가 있었는데, 그땐 스트레스 때문에 하루한끼도 제대로 못 먹는 적도, 잠도 3시간씩 자고 일했다고 … 다 겪고 몇 년이 지나 술을 먹다 그땐 그랬었지 하고 친구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때 친구는

“정말이야? 난 너랑 그때 종종 술 먹었는데 그렇게까지 힘들어한 줄은 몰랐어”

라고 말했다.


곰곰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그 당시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는 것은, 그 당시 힘들었을 때 무너진 내 자존감과 초라하고 작아진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의 이상한 자존심 때문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아무리 내가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은들, 위로를 받는다 한들, 결국 해결해야 하는 건 나 자신인걸. 우울한 얘기하는 시간에 친구들을 만난 그 순간은 오히려 깔깔 웃으며 즐기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건 저런 남편이 저런 행동을 할 때 너무 답답해서 대나무 숲에 털어놓기라도 하면 시원하겠지 싶어 친구에게 얘기를 했을 때 친구들의 반응이 두 가지 반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도 참지만은 않는 성격인지라, 그 사람의 행동에 화가 나서 내가 화를 냈다는 것에

“둘이 똑같으니까 맨날 싸우지. 한쪽이 참아줘야 해” 라던가

“그 정도면 진짜 이혼해야 돼… “ 라거나.

사실 부부 사이에 일을 누가 찬찬히 들어보고,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서 조언을 해줄 수 있단 말인가.



문제는 더 있었다.

그와의 의견 차이가 있을 때 그는 못되게도 나의 이런 점을 나의 단점이라 콕 집었다.

네가  성격 받아주는 사람 하고만 어울리니까  주위에 친구가 없지.”

“그래서 니 주위에 ㅇㅇㅇ 같은 수준이 안 되는 미친년들만 있는 거야.”


사실 친구가 많이 없다는 건 사실 나의 콤플렉스 이기도 했기에, 내가 사랑하는 나를 그렇게 평가한 것에 나는 매우 슬펐다.

게다가 같은 동호회 활동하며 사귄 몇 명 안 되는 친구들에 대해(남편에게도 친구이자 지인이다) 나에게 수준이 떨어진다. 미친년 같다 등의 욕을 했다. 나는 큰 상처를 받았지만, 그런 남편의 말들이 반복되자 점차 나라는 사람이 성격이 이상해 인간관계를 잘 못하고 있다고 믿기 시작했던 거 같다.

게다가 친구사이라는 것이 매번 가까울 수도 없고, 단점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싸움이 될 때마다 남편이 말하자 나는 그들의 단점을 자꾸 보게 되었다.

자연히 소원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 번은 남편이 심한 욕설을 내뱉으며 물건들을 집어던지기도 했을 때, 친정에 말씀을 드린 적도 있다.

엄마 아빠가 내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내뱉은 말의 그 슬픈 목소리와 눈빛을 보고, 난 더 이상 부모님께도 투정 부리듯이 얘기할 수도 없었다.


남편과의 감정교류나 일상적인 소통도 매우 힘들었기 때문에 나는 점점 더 감정적으로 고립되어 갔던 것 같다.


난 내 안에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고군분투했다.

“나만 가만히 있으면, 내가 바뀌면, 내가 남편을 전적으로 이해하면… 모두가 행복해..”


그건 엄청난 착각이었다는 걸, 이건 내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역설적이게도, 내가 다 해결할 수 있다며, 내가 잘난 체한다며 조롱한 남편 말은 정말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혼해야겠다!!”



(*저처럼 누구가와의 관계에서 전혀 대화가 되지 않고, 예외 없이 비난의 화살이 본인에게 돌아온다면 유튜브(‘서람 TV’’서머’s사이다 힐링’ ‘뇌 부자들’ 채널에 자기애적 성격장애, 경계성 성격장애에 대한 정보가 쉽게 설명되어 있으니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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