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휴직하겠습니다"②, 아직 없는 아기 위한 연차
난임과 직장생활, 그 딜레마 5
공무직으로서 혜택을 참 많이 본 부분이 있어 회사 흉만 마냥 볼 순 없다. 바로 유연시간 근무제와 사기업보다는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연가와 병가 제도 덕분이다. 사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다면 난임 병원을 이렇게 일정 맞춰 방문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난임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후로 민망하리만치 연가를 써야 했다. 자연임신 시도를 하는 중에는 한 주기(약 4주)에 두세 번 내원해야 했다.
대학병원 난임 클리닉에 다니고 있는데, 보통 큰 병원에서 일주일 내 예약 잡기는 꿈도 못 꾸지만 난임 클리닉은 성격이 다르다. 무엇보다 예비 임부의 생체 주기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클리닉에서도 의사 선생님의 바쁜 스케줄을 최대한 조정해 어떻게든 예약을 잡아주려 노력한다.
첫 번째 방문은 생리 시작 당일부터 3일 내로 잡으며 자궁과 난소 상태를 질초음파로 확인한다. 이때 난소와 자궁 환경을 확인하고 이번 주기에 어떤 시술을 진행할지 의논한다.
두 번째 방문은 생리 시작 10일 후 정도에 잡는다. 이때는 난자가 잘 성장했는지, 몇 개의 난자가 준비됐는지, 배란일은 언제쯤인지 등을 파악한다. 두 번째 방문일에 배란일이 확인되면 좋지만 난자가 아직 잘 자라지 않았을 경우 2~3일 뒤에 한번 더 내원해야 했다.
배란일을 받으면 그 뒤엔 자연 임신 시도를 열심히 해 보고 2주 뒤 (병원에서는 3주 뒤에 체크하라고 권장한다) 임신테스트기로 체크해보거나 생리가 찾아오면 다음 주기를 위한 예약을 잡는다.
'한 달에 두 번이면 나쁘지 않은데?'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연가를 내는 직원으로서 이는 보통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2주에 한 번씩 병원을 위해 연가 또는 반가를 내야 하는데, 오롯이 난임을 위해서만 그 정도인 것이다. 실제로는 그저 휴가를 위해서나 치과나 내과 방문 등등 다른 사유로 일이 생길 수 있다. 이런 경우까지 합하면 연가 쓰는 횟수가 생각보다 잦아진다.
자리를 비우는 동안 일이 쌓이거나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일처리를 몰아서 해 두었다. 너무도 고요한 사무실을 드나들 때엔 사람들에게 방해될까 봐 밝게 인사하는 대신 눈치만 보며 이동했다.
연가를 쓴다고 마냥 신나고 후련한 것도 아니다. 나 즐겁자고 쓰는 연가가 아니라는 생각에 결재 한 번 올리기가 아쉽고, 누구를 위해 쓰는 연가인가 싶어 괜히 억울했다.
나중에는 너무 꾸준히 연가를 써야 해서 홀로 속앓이 하다가 결국 동료들에게 사정을 털어놓게 됐다. 여직원이 많은 직장이라 그런지 동료들은 오히려 내 상황에 관심과 지지를 많이 보내주었다.
윗 선에서는 내 '개인 사유' 때문에 휴가 처리하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감사하게도 사유를 물어보진 않았다. 다만 가끔씩 '몸은 괜찮은가?'라고 확인차 질문해오긴 했다. 그때마다 아기가 아직 생긴 것도 아니고, 난임이 자랑거리도 아니기에 '아 네네... 그냥 병원 검진 때문에...' 정도로 말을 줄이곤 했다. 더욱이 상사들은 모두 남성이라 편히 내 상황을 의논하기가 아직은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