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치료와 호르몬제, 그리고 체중 증가
난임과 직장생활, 그 딜레마 7
아이를 갖겠다고 영양보충을 열심히 하다가, 애는 안 생기고 영양 가득한 몸만 남았다. 난임 병원 다닌 지 5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원래 유지하던 체중보다 10 킬로그램 증가했다.
임신 계획 전 BMI 지수가 17 정도로 평균보다 조금 하회했다. 원하는 옷을 입기엔 편리했지만 확실히 몸이 마르고 만성 영양실조 상태가 되면 생리 불순이 잦다.
앞서 언급했지만, 아무런 산부인과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생리가 50일에서 90일까지 늘어졌다. 그래서 2세 계획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신경 쓴 것이 몸 영양 보충이었다.
몸이 선천적으로 마른 편은 아니다. 대학생 때 잠시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왔었는데, 그 당시 하루에 세 종류의 고기를 모두 맛보지 않은 날이 없었다. 당과 염분, 3대 영양소 가득하고 맛난 음식을 매일 접하다 보니 몸무게가 급격히 늘었었다. 통통한 편이 지극히 정상 축이었던 외국에서와 달리, 한국에 돌아오니 주변에서는 '너무 잘 지냈나 보네!', '사이즈 좀 늘었네?'라는 말을 서슴없이 해왔다. 당시 심리적 상처가 상당히 깊었다. 이후 약 2개월 동안 10 킬로그램을 급속도로 빼면서 다양한 부작용을 경험했다. 거식증과 일시적 탈모가 생기고, 손톱이 물러지면서 찢어지는가 하면, 걸을 때엔 이가 흔들렸다. 물론 다이어터들이 흔히 걸리는 다이어트 강박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루에 섭취하는 칼로리양과 하루 운동량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이다.
직장을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조금은 다이어트 강박에서 벗어났지만 몸무게는 항상 예민하게 예의 주시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2세 계획을 시작하고부터는 체중에 대한 고민에서 더더욱 벗어나 보기로 결심을 내렸다. 어차피 아이를 가지면 불어날 몸이라 생각하며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가리지 않고 섭취하기로 했다.
음식을 조금 더 먹는다고 체중이 급격히 늘진 않는다. 이 정도의 급격한 체중 증가의 1등 공신으로 난임 병원에서 사용하는 각종 호르몬제들을 지목하고 싶다.
난임 병원에서 첫 시도 차에는 배란 유도를 위해 클로미펜 정을 복용했다. 생리 시작 3일 차부터 클로미펜을 5일간 복용하면 잘 자라지 않던 난자가 신비롭게도 2개 이상으로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한다. 부작용이 많은 약은 아니라지만, 내 경우 클로미펜은 자궁 내벽을 얇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다음 주기부터는 페마라로 약을 교체했다. 페마라는 그 후 4개월간 생리주기에 꾸준히 복용해 왔다. 또한 배란일에 임박해서는 난포를 터뜨리는 IVFC-5000 주사를 맞았다. 그 외에도 인공수정과 시험관을 진행하면서 정말 수많은 호르몬제들이 내 몸을 점령하게 된다.
경험에 의하면 난임치료 초기에 살이 가장 많이 쪘다. 몸이 한 번도 이 정도의 고용량 호르몬제들을 받아들인 적이 없기에, 초반에는 몸이 빠르게 반응하고 변했다. 단 음식, 달지 않은 음식 할 것 없이 그냥 많은 음식들이 당겼다. 저녁 이후 딱히 야식 생각이 없던 내가 저녁 10시쯤 되면 출출해서 뭔가를 꼭 먹고 있더라.
의사 선생님과 이 현상에 대해 상의한 적이 있었지만 페마라의 경우 공식적으로 알려진 체중 증가 부작용은 없다고 했다. 더 우울했다. 그저 내 식탐이 도진 것을 호르몬제 탓으로 돌리려 했던 것일까. 하지만 여성호르몬제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부작용은 분명 있다. 바로 세포들로 하여금 물을 머금고 있게 한다는 것. 그래서 평소보다 몸이 부을 수는 있다고 한다.
그렇게 치료를 시작한 초반 2~3개월 동안은 체중이 미친 듯이 증가했다. 증가 속도가 너무 무서워서 나중엔 작정하고 섭취량을 줄이고 운동량을 늘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런 노력들이 소용도 없이 내 몸은 마이웨이로 체중을 늘려갔다. 4~5개월 차쯤 되니 내 몸무게는 해외 어학연수 다녀온 이례로 최대치를 찍었다. 그러다 수분이 조금 빠지기 시작하는지 2킬로 정도 몸무게가 내려왔다. 이쯤 되니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내 몸이 반복되는 호르몬제 유입에 적응한 것 같다. 치료 초반처럼 음식을 게걸스럽게 찾아 먹거나 늘 허기져 있는 상태가 사라지고 이제는 그 욕구가 기억나지 않는다. 약간은 음식에 대한 감정이 평온해졌는데, 무언가 노력한 점은 없다. 그저 '체중이 언제까지 늘려나'라는 마음으로 스스로의 식욕을 지켜보았을 뿐이다. 다만, 운동은 무엇이든 소소하게 꾸준히 하고 있다. 지나친 체중 증가는 임신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친다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자궁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혈류가 원활히 공급될 수 있게 몸을 움직여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난임치료를 받는 많은 분들이 아마 체중 증가 현상으로 당황스러울 것이다. 블로그 글을 조금만 검색해봐도 난임치료하면서 살쪘다는 간증이 많다. 그러니 홀로 이 경험을 하는 게 아니라는 데에서 위안을 얻어보려 한다. 또한, 더 이상 과도한 체중 증가가 없는 것을 보니, 이것이 내가 정상적인 생식활동을 영위하기 위한 알맞은 체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난임치료 전에 입었던 많은 옷들이 더 이상 몸에 맞지 않다. 예전 같았으면 경악을 하며 다이어트 보조제들을 찾고 하드코어 운동 모드로 돌입했을 테지만,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그럴 수가 없다. 차라리 갑작스럽게 아이가 들어서면 이런 과정도 없으련만, 시간을 들여 임신을 준비하다 보면 나를 많이 내려놔야 하는 상황들에 직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