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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meLee Aug 03. 2023

고통을 포용하는 힘이 필요하다

시지프 신화 - 알베르 카뮈

목차  
1. 삶에서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부조리
2. 고통 속에서 직면하는 "나"
3. 고통을 포용하는 힘이 필요하다


 나는 고전을 즐겨 읽는다. 특히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나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같이, 암울하고 침체된 분위기가 기저에 깔려 있는 책을 좋아하는데, 이런 분위기가 나에게 더 큰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몇 주 전, 교보 문구에 들렸다가 카뮈가 쓴 <시지프 신화>를 구매했다. 예전부터 좋아한 카뮈가 쓴 책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제목에 이끌렸다. 


 시지프는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신의 노여움을 사 크고 무거운 돌을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는 인물이다. 노력 끝에 정상에 돌을 밀어 올리면, 바위는 경사를 따라서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그러면, 시지프는 다시 산을 내려와 바위를 밀어 올린다. 끝없는 형벌에 갇힌 그의 모습이 떠오르니, 책을 향한 흥미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책 제목 : 시지프 신화
저자 : 알베르 카뮈
출판사 : 열린책들





삶에서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부조리

 작중에는 "부조리"라는 키워드가 끝없이 반복된다.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는 '인간의 알고 싶은 욕망'과 '이를 알려주지 않는 세상', 이 둘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괴리감을 칭한다.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알아갈수록 단언할 수 있는 바는 모른다는 것이다. 이 모순적 상황을 인지할 때, 우리에게 정신적 고통이 찾아온다.


 알고 있음과 알지 못함의 공존으로부터 파생되는 고통을 떨쳐낼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알고 싶은 욕망을 멈추거나, 초월적인 존재에 의존하는 방법이 있다. 다만, 이는 의식적인 삶과 거리가 멀다. 바꿔 말해, 의식적 삶을 선택한 사람은 대가로서, 모순에서 파생된 정신적 고통을 견뎌야 한다.

이 자명함이 바로 부조리이다. 열망하는 정신과 이 열망을 저버리는 세계 사이의 분리, 통일성에 대한 나의 향수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이 세계, 그리고 이 둘을 서로 묶어 놓는 모순이 바로 부조리다.

<시지프 신화>
??? : 이야? 이걸 버티네? 독하네 독해!




고통 속에서 직면하는 "나"

 대가로 찾아온 고통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고통과 함께 살아가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고통은 오히려 삶을 더욱 의식적으로 살아가게 만든다. 나와 세상 사이의 부조리를 느끼기 전까지,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세상으로부터 정의했다. 하지만, 나와 세상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간격을 받아들인 이후부터, 우리는 '나'의 존재성을 세상으로부터가 아닌, 온전한 자신으로부터 찾게 된다. 

부조리는 인간의 가장 극한의 긴장이자 혼자만의 노력으로 끊임없이 유지하는 긴장이다. 왜냐하면 그는 매일매일 이 같은 의식과 반항 속에서 도전이라는 자신의 유일한 진리를 증명하고 있음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지프 신화>


아아... 침착맨... 그는 일류다. (출처 : <유튜브 - 침투부>)






고통을 포용하는 힘이 필요하다

 의식적 삶을 살기로 선택한 사람 나와 세상 사이의 좁힐 수 없는 부조리를 느끼며 끝없는 고통에 빠진다. 이는 끝없는 고통을 감내하며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와 비슷하다. 카뮈는 시지프가 행복할 것이라고 말한다. 바위를 끝없이 밀어 올리는 고통 속에서 시지프는 세상과 분리된, 유일하고 온전한 자신의 존재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통을 받아들이고, 이와 함께 할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시지프의 말 없는 모든 기쁨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운명은 그의 것이고, 그의 바위도 그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조리한 인간이 그의 고통을 조용히 바라보면 모든 우상은 입을 다물게 된다. ... 그 외에 부조리한 인간은 자신이 자기 삶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시지프 신화>


 창업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신적 고통도 커지고 있다. 선택의 딜레마에 부딪히기도 하고, 명확하고 확실한 답이 없는 상황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며, 나의 이상과 신념을 버려야 하는 순간도 있다. <시지프 신화>를 읽다 보니, 나에게 지금 필요한 건 고통을 받아들이고, 이와 함께 할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싶다. 

중요한 것은 갈리아니 신부가 데피네 부인에게 말한 것처럼, 고통은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일임에도 말이다.

<시지프 신화>


현대인이 시지프의 행복을 받아들이는 모습(?) (출처 : <넷플릭스 - 피지컬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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