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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meLee Aug 12. 2024

삶의 의미는 정말 존재하는가?

자살에 관한 모든 것 - 마르탱 모네스티에

불과 얼마 전까지,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었다. "삶의 의미는 정말 존재할까?" 친할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별세하셨고, 장례식을 치루며 생각이 많아졌다. 아버지의 말씀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사업에 띄어드셨고, 고생 끝에 꽤나 많은 돈을 버셨다고 했다. 노년의 나이가 됐음에도 식단을 관리하셨고, 매일 수십키로를 걸어다며 운동도 꾸준히 하셨다. 하지만 건강한 할아버지의 모습은 한 순간에 사라졌고, 한 줌의 분골로 삶을 마치셨다. 안치된 분골을 보며, 허망하다는 감정이 가장 먼저 들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고, 앞으로 열심히 살아도 한 줌의 분골로 끝나는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걸까?


읽을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들렸다가 <자살에 관한 모든 것>을 우연히 발견했고, '자살'이란 키워드에 사로 잡혔다. 몇 년 전부터 자살, 그 자체의 의미에 대해 흥미가 있었다. 이는 군대에서 읽은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비롯됐다. 억울한 재판으로 사형을 선고 받은 소크라테스, 사형일 전날 밤에 친구들이 그를 탈출시키기 위해 감옥에 찾아왔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탈출을 거부했고 담담히 사형을 받아들였다. 나에게 있어서 억울한 판결을 받고,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소크라테스트의 모습은 자살과 다를 바가 없다고 느꼈다. 


동시에 자살을 행하는 모습이 이질감이 느껴지면서도 숭고하게 느껴졌다. 삶을 더 이상 이어가기 싫다고 생각하고, 여기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보통의 사람들이 행할 수 없는 일이다. 삶을 끝내겠다고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실제로 자살을 행하는 이들의 생각을 엿보고 싶었다삶의 의미가 정말로 존재하는지 고민하는 나에게 주체적 자살자의 모습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리라 생각해 책을 구매했다. 

<자살에 관한 모든 것>
- 저자 : 마르탱 모네스티에
- 출판사 : 새움


작중에는 세계의 역사 곳곳에서 발생한 자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다룬다. 심지어 사건 현장의 사진을 보여주기도 하기에, 읽으면서 거북함을 느꼈다.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부당한 대우나 억울함 때문에 안타깝게 자살을 한 사람도 있고, 경제적 형편이나 과도한 빚 때문에 자살을 한 사람도 있다. 이런 유형의 자살은 안타까운 현실과 환경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사랑, 명예나 신념 등을 위해 주체적으로 자살을 행한 자들의 이야기도 상당 수 존재했다. 이런 유형의 자살은 공통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바로 자신에게 절대적인 삶의 의미가 있고, 이 의미가 더 이상 지킬 수 없거나 완전히 무너졌을 때 자살을 행한다는 것이다.

동료들의 처형과 바라제의 자살 소식을 들은 것은 바로 그곳에서였다 ... 클라비에르의 자살도 그가 단도로 자살하기 직전에 읊었던 시 때문에 역사전 사건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모든 것을 잃고, 희망마저 잃었을 때, 그 삶은 치욕이고 죽음은 의무가 된다
자살학자는 이러한 경우의 자살은 우연히 아무에게나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실망을 잘 느끼는 사람들에게서 일어난다고 보고 있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의 이상이 무너지는 것을 자신의 무능력 때문인 것으로 느낀다. 


꽤나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삶의 의미가 명확한 자일수록, 오히려 자살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그 대상의 정의가 선행되야 한다. 즉, 나의 삶의 의미가 명확히 정의되야지만, 삶을 더 이어갈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자살하는 것은 자신을 마음대로 처분하는 능력이고 존재하길 원치 않았던 자가 지니는 개인성의 가장 높은 표현이다.
- 클레망소
자살은 자유의 가장 고양된 표현이며, 자아에 대한 최고의 소유 행위이며, 초월의 흥미로운 확인이다.
- 메이나르
인생에서 완전히 길을 잃고 희망마저 없을 때, 삶은 치욕이고 죽음은 의무다. 최고로 불행한 순간은 집을 뛰쳐나올 수도 집 안에 틀어박혀 있을 수도 없을 때이다. 야만인들은 결코 생각해내지 못하는 자살을 섬세한 영혼의 소유자들은 실천한다
- 볼테르


"삶의 의미가 정말 존재하는가?"를 고민한 이유는 그저 나만의 삶의 의미를 정의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지난 인생을 돌이켜보면,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다양한 선택과 행동을 통해 남들보다 높은 커리어를 쌓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온 이유는 삶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가 아니라, 그 순간의 의미를 위해서였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도, 책을 집필하는 것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는 것도, 창업을 하는 것도 모두 이 순간이 즐겁기 때문이지, 거창한 삶의 목표와 미션을 위해서는 아닌 듯 하다. 아니, 그저 근면성실하는 것 자체에 느끼는 만족감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가 뭐였든지간에 지금까지 많은 것을 이루게 만드는 동력이 됐고, 이를 부정하진 않는다. 이제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내가 목숨 받쳐 따를 삶의 의미를 정의하는 게 아닐까 싶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니, 의미까지 찾으면 더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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