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거래의 시작’입니다.

칭찬이라는 이름의 부담.

by 담하

“오늘 수업 너무 좋았어요. 언제 또 수업하세요? 다음에 또 뵙고 싶어요.”

고마운 말이다. 내가 한 일을 좋게 받아들이고, 그 감정을 스스럼없이 표현해주는 마음이 감사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감사함과 동시에 다른 감정이 나를 감싼다. 바로 부담이다. 다음에도 지금만큼, 아니 그 이상 해내야 한다는 압박. 그래서 기쁨보다 부담이 먼저 다가온다. 더 나아가 칭찬을 표현해 준 것에 대해 무언가로 보답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이 부담감은 칭찬에 대한 나의 반응으로 나타난다. “오, 많이 늘었네”와 같은 가벼운 말에도 나는 곧바로 “아니에요. 오늘은 컨디션이 좋은가봐요.”라고 대응한다. 사실 “고마워요”라고 짧게 받아도 충분할 텐데, 나는 늘 한 번 더 부인하고 만다. 그만큼 칭찬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 않았다. 분명 기분이 좋고 마음 한편으로는 우쭐해지는 순간도 있었지만, 왜인지 내 반응은 늘 부정적인 쪽으로 기울었다. 그렇게 돌아보면, 그 이유는 결국 하나였다. 칭찬이 기쁨으로 머무르기보다 곧바로 부담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칭찬은 분명 긍정적인 힘을 가진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는 말처럼, 누군가의 인정을 받는 경험은 계속해서 노력할 동기를 만들고, 그 노력은 실력의 향상으로 이어진다. 또 칭찬은 내가 무엇을 잘하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는 하나의 피드백이 되기도 한다. 잘 작동할 때의 칭찬은 성장의 선순환을 만든다.


하지만 칭찬이 언제나 긍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칭찬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외부의 반응 없이는 스스로를 평가하기 어려워지고, 의미 없이 오가는 칭찬은 오히려 방향 감각을 흐리게 만든다. 나 역시 이런 위험을 알고 있었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나는 칭찬 자체보다 칭찬에 뒤따라오는 기대와 책임에 더 크게 반응하고 있었다.


특히 일과 관련된 칭찬 앞에서 그 경향은 더 강해졌다. 업무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으면,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마음이 먼저 앞섰다. 그러다 보니 나의 기준이나 방식보다는 상대가 좋아할 만한 선택을 하게 되었고, 결국 나의 성장보다는 “칭찬받기 쉬운 행동”을 반복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방향을 잃고, 나 자신과 멀어졌던 순간들도 있었다.


나는 칭찬을 받으면 무의식적으로 빚을 졌다고 느꼈다. 다음에는 더 잘해야 하고, 실수하지 말아야 하며,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압박이 따라왔다. 그래서 칭찬은 점점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칭찬을 ‘호의’가 아니라 ‘거래의 시작’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누군가를 칭찬할 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특별한 의도가 있어서라기보다, 그 순간 느낀 고마움이나 좋았던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다. 말하는 순간 이미 충분했고, 그 이후에 무언가를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타인의 칭찬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칭찬을 부채처럼 받아들였던 나의 해석이 과했던 것이다. 뭔가를 항상 보상하려는 사람은 지치게 마련인데, 나는 불필요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쏟고 있었다.


앞으로는 칭찬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고 싶다. ‘나 전체’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그때의 행동 하나에 대한 피드백으로. 그리고 칭찬을 받았을 때는 더 잘하겠다는 다짐 대신, 짧게 “고마워요”라고 말하며 그 순간을 닫아보려 한다. 부담이 올라올 때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보려 한다. 이건 호의이지 계약이 아니다.


내가 바라는 건 칭찬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칭찬이 없어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 스스로 세운 기준에 따라 계획하고 실천하고, 그 과정을 내가 알아볼 수 있다면 충분하다. 칭찬을 편하게 받는다는 건, 남에게 기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불필요한 짐을 내려놓는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이제 그 짐을 조금씩 내려놓아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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