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머무르고 싶은 육체란

by 담하

날이 추워질수록 방 안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이 부쩍 늘어난다. 잠깐이라도 나가볼까 마음먹다가도, 오늘은 특히 더 춥다는 핑계가 의지를 슬그머니 눌러버린다. 그렇게 하루를 넘기는 일이 요즘은 제법 익숙해졌다. 움직임이 줄어들수록 몸과 마음이 함께 무거워지고, 체력도 눈에 띄게 떨어진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겨울에 맞서 밖으로 나갈 용기는 쉽게 나지 않는다. 겨울은 늘 이렇게 사람을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날이 비교적 따뜻하면 주말마다 근교로 피크닉을 가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실제로 실행에 옮기던 시기가 있었다.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도 공기가 달라진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그 짧은 외출이 한 주를 버티게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의 외출은 집 근처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이 전부다. 점점 줄어드는 체력과 함께 무기력해지는 나를 바라보다가, 문득 책 속의 한 문장이 양심을 콕 찔렀다.


“영혼이 머무르고 싶게 만드려면 육체를 잘 보살펴야 한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죽음』 중에서


영혼이 머무르고 싶은 육체라니. 이 문장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영혼과 육체를 분리해 생각하고, 몸을 관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정성껏 돌보아야 할 거처로 바라보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늘 막연하게 ‘건강을 챙겨야지’라고 다짐하던 태도와는 분명 다른 시선이었다. 이 표현 속에는 나의 영혼을 위해, 자신의 몸을 소중히 아끼고 가꾸어야 한다는 따뜻한 배려가 담겨 있었다. 그런 육체를 가진 누군가를 떠올리며 막연한 부러움이 일었다. 그런 육체에 영혼이 머무를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관점을 달리하자, 자연스럽게 결심이 따라왔다.


나도 내 영혼을 위해, 육체를 살뜰하게 보살피기 위한 노력을 해보고 싶다. 영혼이 결국 지치고 떠나고 싶어 지도록 몸을 내버려 두고 싶지 않다. 체력이 떨어질수록 무기력과 우울이 더 잦아진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여러 번 경험했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잠시 쓰러지듯 잠들었다가 깨어났을 때, 더부룩한 속과 무거워진 몸을 느끼며 피로가 풀렸다는 느낌보다 의미 없이 시간이 흘러갔다는 허탈함이 더 크게 남았던 순간들처럼 말이다. 그렇게 마음이 가라앉을 때는 잠깐이라도 밖으로 나가 걷고,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땀을 조금 흘리고 나면 기분이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되곤 했다. 몸은 생각보다 솔직했다.


직장인들의 많은 공감을 얻었던 현실 드라마 『미생』의 주연 배우로 나왔던 임시완 씨는, 한 프로그램에서 드라마 대사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말로 다음을 꼽았다고 했다.

“체력을 기르지 않으면 적당한 노력 선에 안주하게 될 것이고, 체력을 길러야 너의 역치가 더 늘어나서 더 많은 걸 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쉽게 흔들리고, 마음이 무너지면 다시 몸을 돌볼 힘조차 사라진다. 체력은 단순히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 전반을 지탱하는 기반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고 마무리하는지, 작은 일에 얼마나 쉽게 지치는지, 감정을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까지 모두 몸의 상태와 이어져 있다. 몸이 무너질수록 생각은 좁아지고, 선택지는 점점 줄어든다. 그럴 때는 ‘마음을 다잡자’라는 다짐마저 생각보다 와닿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몸을 억지로 버티게 하기보다, 영혼이 머물고 싶어 할 수 있도록 가꾸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성취를 위해 관리하는 몸이 아니라, 영혼이 편안히 머무를 수 있는 상태를 먼저 생각하는 일이다. 더 빨리 가기 위해 채찍질하듯 몰아붙이기보다, 하루를 무사히 함께 살아낼 수 있을 만큼의 리듬을 되찾는 것. 숨이 가쁘지 않은 속도로, 무너지지 않을 정도의 힘으로 오늘을 건너는 연습이다. 몸을 도구처럼 쓰지 않고, 영혼이 오래 머물 수 있는 거처로 돌보겠다는 다짐은 이제 생각에 그치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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