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1밀리라도 그 원을 넓히려 한다

세음소평 (2025년 6월 18일)

by 완서담필


앞으로의 삶이

처음으로 내 책임이 된 듯한,


그 막막한 초입에 서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

버스에서 내려

몇 걸음쯤 걸었을까.


동네 시장 골목 입구에서,

구겨진 사파리 점퍼 차림의

중년 아저씨 한 사람이


철학 서적을 잔뜩 쌓아놓고

팔고 있었다.


힌두교 명상가의 책,

로마 철학자의 책,

주역에 노장사상까지...


그 사이로 눈에 들어온 제목 하나.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


그때의 나는

세속적인 출세쯤은 비웃으면서도


속으로는 '성공'이라는 말을

부러워하고 있었나 보다.


몇백 원이었는지,

몇천 원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요즘 말로

‘헐값에 득템’이라는 생각에,


그리고

날 아는 사람이

혹시라도 알아볼까봐


얼른

지갑을 열었다.


집에 돌아와

책을 펴보니,


중간쯤

제본 상태가 흐트러져 있었고,


몇 페이지는

아예 위아래가 뒤집혀 있었다.


그래도──

‘성공하는 습관’이라지 않나.


몇 페이지를 읽다가

덮었다.


아마도 번역된 문장 특유의 어투가

그땐 이상하게 낯설고,


책 제목의 ‘성공’이라는 단어가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꽤 거리가 멀게 느껴졌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내 마음이

아직 그 이야기들을

받아들일 만큼

자라있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펴고,

또 덮기를 몇 차례.


결국,

그 책은

책장 구석으로

조용히 밀려났다.


세월이

흘렀다.


'성공'을 꿈꾸던

그 늦깍기 청년은

어느덧

마흔이 가까웠다.


달려온 만큼은 달려왔다고,

그럭저럭 괜찮다 여겼던

한 해 또 한 해가,


짧은 봄날처럼

훌쩍 지나가던

그런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문득,

그동안 해온 일들과

쌓아온 것들이


어쩐지

허무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기반 없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고,


마음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고,


삶이 불안정하다는

불안한 생각들이


밀물 들듯

조용히,

그러나 깊숙이

엄습해 왔다.


그리고 그 때,
불현듯──

그 책이

떠올랐다.


그동안

몇 차례 이사까지 겪으며,

여러 차례 책장을

정리해 온 터였다.


그 위아래가

뒤집혀 있던 그 책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뒤였다.


그 무렵,

온라인에서 우연히

그 책의 영문판 광고를 보게 되었다.


짧은 한 문장이

묘하게 가슴을 쳤다.


영어 페이퍼백을

주문해 읽기 시작했다.


부끄럽게도,

그제야,


그 책이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그 책이 말하던 '성공'이란

세속적인 출세나 명예를

뜻하는 게 아니었다.


그 책은,

나를 흔들던

바깥의 소음이 아니라


내가 안에서 키워야 할

습관과 태도에 대해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저자 스티븐 코비의

한 문장 한 문장이

가슴 깊숙이

박혀왔다.


고백하자면,


그 후

벚꽃이 열 번도 넘게

피고 지는 동안,

나는 그 책에서

여러 가지를 배웠고,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의 기술’ 하나만은

늘 곁에 두고

살아가고 있다.


원리는 단순하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사실,

작은 틈같은 완충지대의 공간이 있다.


그 공간 안에

우리를 자유케하고 또,

성장하게 하는 힘이 들어 있다.


도 통한 현자가

아닌 다음에야


우리네 삶에

어디,

번뇌 아닌 것이 있기나 할까.


건강, 돈, 가족, 부모, 직장...


사건, 사고, 전쟁,

게다가 자연 재해까지…


그러나

이런 걱정거리들은 대부분

마치 날씨와도 같아서,


내가 직접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 근심 걱정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다.


코비는

이것을 이렇게

나누어 설명한다.


‘걱정거리 혹은 관심의 원'

(Circle of Concern),

그리고

‘영향력의 원'

(Circle of Influence).


『7 Habits』에 실린 도해를 참고해, 일부 색채와 구성을 새롭게 조정하였습니다.



우리는 많은 불안 요소들을

걱정거리의 원,

혹은 관심의 원 안에

담아 두곤 한다.


그러나 그 안에도

내가 직접

행동할 수 있는 부분,

즉,

'영향력의 원'이 있다.


그 원이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주도적인 사람은

바로 그

'영향력의 원'에 집중한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시간을 쓰고

그렇게 조금씩

그 원을

넓혀간다.


반면,

반응적인 사람은

마치 자극에 자동으로 반응하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그리고

과거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외부 상황이나

타인에만

시선을 고정한다.


그러다가는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조차

놓치게 되고,

'영향력의 원'은

점점 작아진다.


그렇게 걱정거리가 오히려

자신을

지배하게 된다.


반갑지 않은 자극은

하늘의 비처럼,

바람처럼,

가끔은 제법 큰 별똥별처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도 때도 없이

불쑥 찾아온다.


나를 자극하는

그 불청객 자극들을

나는 어찌할 방도가 없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잘 들여다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니다.


비를 피할

우산을──

기왕이면

마음에 드는 놈으로 챙기고,


바람을 피해

쉴 곳을 찾고,


날이 갠 후

해야 할 일을

조용히

계획할 수도 있다.


그런 일들에

집중해

조금씩이라도

해놓다 보면,


파블로프의 개와는 다르게

차츰차츰,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비와 바람을

탓할 것 없이,


비와 바람에

'자기 주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인생의 늦가을,

혹은 겨울 초입을

서성이는 지금,


나는 이 원리가


마인드풀니스 명상,

초기 불교의 마음 다스림,

신약성서의 지혜와도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

이 주어진 환경에

내가 어떻게

대응하며,

무엇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맞다.


나는

이 나이 되도록

지구 한켠에서

아직도

정치와 에세이 사이를

오가며 살아가고 있다.


밖의 세상은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처럼, 바람처럼,

별똥별처럼,


바깥 세상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자극의 파편들이

내 위로 쏟아져 내린다.


내 안은 또,

어떤가.


숲 속에 날뛰는 원숭이 떼처럼──

좋다, 싫다,

기쁘다, 억울하다, 화난다…


자극에 반응하는

감각의 불꽃이

끊이질 않는다.


그 불꽃을

그저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연습을 하지만,


쉽지는 않다.


직업상,

그 감정을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낼 수도 없는 노릇.


어찌 보면

일종의 감정노동에

가깝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관심의 원과 영향력의 원을

떠올린다.


오늘도

걱정거리는 쌓여만 간다.


바라는 게 많아서 걱정,

마음대로 안 돼서 걱정.


그래도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영향력의 원을 지키기 위해,

단 1밀리미터라도 넓히기 위해.


사실,

잘 안 된다.


그러나,

그래도 한다.


왜냐하면──


그게,

지금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

혹은 차선,

아니면 최소한

차악.


밑져도 본전이라는 걸,

살아본 경험을 통해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직도 작기만한

나의 그

영향력의 원에


다시

마음을

둔다.


2025년 6월 18일

소나리우스의 세음소평(世音小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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