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2일의 악필 편지
‘역에서 일하는 시인보다 시를 쓰는 역무원이 낫다.’ 어느 러시아 작가가 한 말로 기억합니다. 저는 이 말이 이렇게 들립니다. 시인이라는 명찰을 다는 것이 삶 그 자체를 풍요롭게 하지는 못한다고요. 시를 읽고 쓰는 일을 사랑하기만 한다면, 그리고 그로 인해 행복할 줄 안다면 그것이 등단 시인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시가 아닌, 그래서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삶의 매 순간이 시를 더욱 풍요롭게 할지도 모릅니다.
글쓰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글쓰기를 잘 하는 것 못지않은 재능입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키보드에 손을 얹어 하루치의 생각을 풀어내는 일을 기꺼운 마음으로 할 수 있기까지 저는 오랜 연습이 필요했습니다. 이토록 행복은 부단한 연습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충분한 연습을 거친 후에는 저는 제가 일궈낸 행복의 부산물, 제가 글이라 부르는 그것들이 이따금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을 지켜보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글쓰기로 돈을 버는 것은 아주 다른 이야기입니다. 글재주는 경험이 뒷받침된 기술이지요. 목수가 대패질을 하고 돈을 버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기술로 돈을 버는 것과, 그로 인해 내가 행복을 느끼는 것을 같은 것으로 종종 착각하고는 합니다. 자본주의는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듭니다. 어떤 일이든 돈을 벌어야 가치가 있는 일이고, 그렇게 돈을 벌면 당연히 행복해야 한다고요.
글쓰기를 포기할 수도 있어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수없이 많고, 글쓰기는 그 중 하나에 불과해요. 그러나 당신이 사랑하는 것,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포기하지 마세요. 당신을 행복하게 했다고 생각한 것들을 의심하세요. 글을 쓸 때 당신이 행복했던 것인지, 혹은 관심이 고파 알량한 글재주에 떨어지는 칭찬을 기뻐했던 것인지 고민하세요. 넘어지고 깨지고 닳고 부러지도록 고민하세요. 무엇에도 깨어지지 않는 당신의 핵을 찾을 때까지, 계속 고민하세요.
당신이 찾을 답이 무엇인지 저는 몰라요. 답을 찾은 후 당신이 어떤 모습일지도 몰라요. 그러나 이루 말할 수 없이 달콤한 죽음의 유혹에서도 펜을 부여잡은 당신이라면, 이미 제가 말한 여정을 훌륭하게 지나고 있겠지요. 여정의 끝자락에서 저는 기꺼이 당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독자가 되겠습니다. 그때 펜이 아닌, 당신의 삶으로 쓴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웹사이트 링크를 통해 편지를 보내 주세요. 답장으로 악필 편지를 매주 목요일 저녁 6시에 보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