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낮별 Jul 31. 2022

나의 어둠을 소개합니다

말더듬이 꼬맹이

평온한 주말을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산책을 다녀와서 어제 쓴 이 글을 퇴고하고 이제 발송을 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산책길에 처음으로 야외에서 마스크를 벗어 봤는데, 어색하더라구요. 고작 2년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고 어색해하는 제가 재밌어서 혼자 빙그레 웃다가, 지나가는 강아지들을 보며 웃다가, 성내천에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수영을 하는 오리들을 보며 웃다가(성내천엔 야생 오리가 진짜 많아요. 백로도 있어요!), 아빠 무등을 타고 까르륵 웃는 아기들을 보며 웃다가… 혼자서 참 많이 웃은 하루였습니다.


이 글을 쓰다 보면 마음이 자주 무거워집니다. 감정이 울컥 올라올 때도 있지요. 과거에 대해 충분히 제 감정들이 정리가 되었으리라고 생각하고 이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제 나이 수만큼 서랍이 달린 서랍장을 하나씩 열며 차근차근 정리하는 기분입니다. 여전히 엉망이어서 어떻게 정리해야 할 지 감도 안 잡히는 서랍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렇게 글로 쓸 수 있을 만큼은 가지런하더라구요. 물론, 그런 서랍도 얼만큼은 마음을 가다듬는 손길이 필요했지만요.


그래도 요즘 저는 행복하게 글을 쓰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불안들을 하나씩 끄집어 내 정리할 수 있어서, 그리고 정리가 끝나면 후련한 마음으로 산책을 다녀 올 수 있어서요. 제 마음의 시선을 지나가는 풍경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네요. 벌써 한 달을 기약한 연재가 반이나 지났다는 게 아쉬울 정도로요.


여러분의 주말은 어떠셨나요? 저처럼 행복하셨나요? 마음 한 켠에 엉망인 서랍장을 발견해서, 아니면 다른 이유로 마음이 무겁지는 않으셨나요? 혹시라도 마음이 무거우셨다면, 산책을 다녀오시는 건 어떤가요? 산책길에 만나는 수많은 것들이 기꺼이 여러분의 친구가 되어 줄 거예요. 새로운 친구들과 마음을 나누고, 조금은 더 가뿐한 기분으로 새로운 한 주를 맞이하시길 바라요!  




말더듬이 꼬맹이


초등학교 저학년쯤까지 나는 말을 더듬었다. 글을 쓰며 찾아보니 어릴 때 말을 좀 더듬는 건 꽤 흔한 일이란다. 대부분 나이를 먹으며 자연스럽게 나아지고, 6~7세 이후에도 말을 더듬는 경우에는 말더듬이 만성화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남들보다는 조금 오래 말을 더듬은 셈이다. 그 영향인지 지금도 말투가 특이하다는 소리를 이따금 듣는다. 발음이 정확한 것도 아닌데 말투는 마치 아나운서 같단다. 특히 경상도에 사는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 ‘완전 서울 사투리’라고 놀리곤 한다.


굳이 말더듬의 원인을 찾자면 아마 내가 어린 시절 겪었던 정서적 불안에서 비롯했을 것 같다. 지금의 아버지는 예순이 넘는 나이에 걸맞게 유해지셨지만, 원래는 그리 성격이 부드러운 분이 아니었다. 내 기억 속 아버지는 늘 폭군이었고, 어머니와 형은 그 폭정의 불쌍한 희생양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맞서 싸웠지만 그것도 머리가 좀 큰 후의 이야기다. 사춘기 전에는 나도 그저 희생양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래서 난 지금도 그런 아버지가 보이는 유한 모습이 쉽사리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 정서적 불안의 영향은 형과 나에게 좀 다른 방향으로 나타났던 것 같다. 형은 괴롭고 불안해도 아무 내색하지 않고 꾹 참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건 태산처럼 흔들리지 않는 묵묵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형의 조용함은 비명을 지르는 환자의 입을 억지로 틀어막은 것 같은 침묵이었다. 어리디 어렸던 형의 모습은 고통을 담담히 인내한다기보다는 아파도 신음하는 법을 몰라 안절부절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지금의 형에게도 나는 그 시절의 그림자를 쉬이 찾아내곤 한다. 형은 자기 생각이나 기분을 먼저 표현하는 법이 없다. 간혹 그런 일이 있어도 말을 우물거리는 형의 모습은 뭔가가 어색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형은 자기 기분을 표현하지 않아도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으면 말없이 헤벌쭉 웃으며 손이 닿는 데까지 어떻게든 챙겨주려 한다. 보통은 내가 그런 역할이었고, 그래서 우리 둘은 언제나 사이가 좋았다.


형이 불안에 대해 둔감해지고 묵묵해지기를 선택했다면, 나는 반대로 예민해지고 시끄러워지기를 선택했다. 이야기했다시피 나는 무슨 일만 생기면 온 동네가 떠나가라 펑펑 우는 울보였다. 말더듬이 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 만큼 마음이 편할 때는 조잘조잘 말도 많은 편이었다. 그리고 나쁜 감정을 꾹꾹 쌓아 두다가 그게 한번 터지면 손에 잡히는 건 뭐든 집어던지며 불같이 화를 내는 버릇도 있었다. 나는 화가 나도 참지 않는다는 것이 아버지와 나의 불화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정말 징글징글하도록 싸웠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세계 3차 대전이 터지면 분명히 우리 집에서 나와 아버지가 싸우다 터질 거라고 자주 푸념을 늘어 놓았을 정도로.




노파심에 다시 말하자면, 나는 내 우울이 아버지 탓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게 옳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인간 관계는 상호작용이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아버지가 폭군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밑에 핍박받기를 선택했던 어머니와 두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엔 지금의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주 복잡한 상호작용이 서로의 역할을 만들어갔을 것이다. 물론 코흘리개였던 형과 나에게 그 시절 우리 가족이 겪은 불안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굳이 책임을 묻자면, 아버지 뿐만 아니라 어머니에게도 함께 물어야 맞을 것 같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어린 시절 아버지는 폭군이었고 나머지 가족들은 그에 맞서 싸웠다고 내가 ‘해석’했다는 점이다. 우리의 내면 세계에서 진실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해석이 있을 뿐이다.


아무튼 사춘기 이전의 나는 아버지 앞에서는 항상 주눅이 잔뜩 들어 말 한 마디도 뜸을 잔뜩 들여야 할 수 있는 꼬맹이였다. 나는 체벌이 만연한 분위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퇴근한 후 저녁 밥상머리에서마다 아버지의 기분이 안 좋을 때면 어김없이 고함이나 매질이 날아왔다. 그래서 어머니와 형과 나는 거실에서 신나게 장난을 치며 놀다가도 아버지가 퇴근하면 입을 꾹 다물고 아버지의 눈치를 살살 살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평소보다 현관문을 쾅, 세게 닫기라도 하면 우리는 얼른 각자의 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 어린 꼬맹이가 늘 아버지의 눈치만 살피며 입을 꾹 닫고 자랐는데, 말을 더듬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 영향으로 나는 말을 하는 것을 꽤 오래 어려워했다. 내 말더듬이나 말투를 지적당하면(아이러니하게도 이걸 지적하는 사람도 대개 아버지였다) 나는 더 당황해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기만 했다. 지금은 말을 잘 한다는 소리도 이따금 듣는 편인데도 말이다. 그런 어려움이 내가 글쓰기에 흥미를 갖는 데에 큰 영향을 줬다. 말을 할 때는 상대의 눈치를 살펴야 하지만, 글을 쓸 때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말할 때는 주눅이 들거나 당황해서 내 생각과 기분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때가 많았지만, 글을 쓸 때는 그저 느긋하게 내 마음 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종이 위에 꺼내놓기만 하면 되었다.


그건 바꿔 말하자면 내가 면대면의 대인관계에 서툴렀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컨데 학교 같은 곳에서 나는 낯선 분위기에 잔뜩 긴장해 있다가, 누군가 말을 걸면 더듬거리며 겨우 대꾸를 했다. 항상 주눅이 들어 있으니 표정, 몸짓, 분위기 같은 비언어적 신호들을 파악하는 게 서툴렀고, 상대가 나를 놀린다고 혼자 오해하는 일도 많았다. 그러면서 느끼는 오만 감정을 꾹꾹 눌러 담다가 그게 한 번 터지면 돌발행동을 저지르곤 했다. 그래서 나는 학교 생활에 전혀 적응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일학년 때 짝꿍에게 커터칼을 집어 던졌다가 어머니가 학교에 불려 온 적도 있었으니까. 정말 천만다행으로 짝꿍은 다치지 않았다.


그런 분노, 코흘리개 꼬맹이가 필통에서 커터칼이라도 꺼내들어 집어던지고야 마는 분노가 내 어둠의 또다른 모습이었다. 분노는 더듬거리는 입으로 담지 못했던 못했던 감정들이 썩어 문드러졌을 때, 그 고름이 터져 나오는 고약한 모습이었다. 나는 물건을 집어던지고, 누군가를 때리고, 사람의 면전에서 악을 쓰며 참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면서도 홧김에 자꾸 실수를 하는 나를 자책했다. 나는 점점 나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모습들이 다름아닌 내가 가장 미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이었음을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나의 어둠을 소개합니다'는 뉴스레터를 통해 연재했던 에세이 원고를 다듬은 글입니다. 퇴고본이기 때문에 뉴스레터 연재 당시와는 다소 내용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매주 수/일요일 업로드합니다.


브런치와 흰 종이 위의 날개에 업로드되지 않은, 뉴스레터 연재분을 비롯한 최신 연재분을 받아보고 싶은 분은 하단 링크를 통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https://maily.so/heena.daystar

작가의 이전글 나의 어둠을 소개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