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칼럼
개봉일은 1998년 12월 19일, 개봉된지 무려 20년이 넘은 작품이다.
그래서 그런지, 1998년 12월의 이 작품은 현 시점에서 보기에는
전개가 상대적으로 느린 편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공식적인 상영 시간은 108분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누군가가 그러지 않았던가?
느림에도 미학이 존재한다고........
평소 성미가 급한 필자 또한 느림을 기피하다 못해 서투른 조바심까지 내는 성격이지만
전술한 이름 모를 누군가가 말한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에 대해
최소한 이 작품만큼은 깊이 동감하는 바이다.
작품을 보기 직전, 대형 포털사이트에 관객들이 남긴 리뷰는
"유치하다"식의 반응이 많았다. 작품을 막 관람하고 이 글을 쓰는 필자는 이렇게 생각해본다.
'내가 봤던 유치하다는 관객들의 리뷰와 문구는 과연 무슨 의미였을까?'
보통의 사람들은 본 작품에 대해 "감성주의에 너무 몰입했다" "감성을 요구한다" 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정확히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 작품은 수용자인 관객에 대해 감성이 요구된다 못해
우리를 감성 그 속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작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철수(이성재 분)와 춘희(심은하 분)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때
때마침 시간적 배경은 이정향 감독의 아주 의도적인(?) 연출이었을까?
개봉일인 12월 19일에 맞춘 겨울이었다.
크리스마스 아니, 화이트 크리스마스 직전
눈이 내리기 前 우리들에게 안겨주는 작품으로서의 본 작품은 개봉했다.
눈물만이 때로는 주인공 춘희(심은하 분)의 짝사랑 속에서,연애 속에서만 비 오듯이 내리는 것이 아니다.
눈이 내리듯이 눈물도 내린다는 진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칭하고 싶다.
20년 前 작금에 비해, 비교적 상대적으로 성에 대한 인식에 대해 보수주의가 만연화된 그 시절에
작품 내의 섹스에 대한 담론, 성관계를 연상케하는 새벽의 그림자 씬은
이정향 감독의 시대적 맥락이라는 텍스트 내에서 망설이며 조심하는 태도와 관점이 엿보인다.
반면에, 이정향 감독의 과감한 전개와 연출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만큼 감독의 다양한 시도가 다각도로 보이는 작품이라 말할 수 있겠다.
성에 대한 담론을 은밀히, 그것도 아주 은밀히 노출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은밀함과 은은함의 차이는 뭘까?
솔직한 답변을 바란다면, 그것은 작품 속에 둘다 내포하고 있다.
그 은은함이 무엇인지 의구심이 생긴다면 독자들은 작품을 끝까지 한번 보시라...
본 작품은 개봉 당시 까지도, 아니 작금까지도
시놉시스 전개에 있어 매우 독창적이고 참신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본 작품이 20회 청룡영화상 각본상을 수상한 점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수상 이력은 필자가 보기에 어찌보면 불필요할 수도 있는 과잉의 미사여구에 불과할 뿐이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본 작품은 삼중적인 시놉시스에 기반해 있다.
그 어떤 감독도 이중적인 시놉시스는 쉽사리 도전을 하곤 하지만
삼중적인 시놉시스 연출은, 연출과 각색인 측면에서 보자면
어려움(난관)을 넘어선 매우 위험한 도전이자 시도이다.
이 점에서 이정향 감독이 깊은 내적 갈등경험과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투자자분들(?)을 상대로
커다란 시도와 용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점이다.
삼중적인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1.국회의원 보좌관 인공(안성기 분)을 현실에서 짝사랑 하는 춘희(심은하 분)의 과거가 되어버린 현실
2.철수(이성재 분)와 춘희(심은하 분)가 동거 아닌 동거 속에서
두 사람은 키보드를 상호 교차하며 공모전을 위한 가상의 시나리오를 쓰곤 하지만
시나리오의 전개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철수(이성재 분)와 춘희(심은하 분)가 시나리오를 전개하기 이전
두 사람의 과거 속에 존재한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사실을
"미래의" 의미로 재구성 한다는 것이다.
관객을 포함한 우리는 항상 눈에 보이는 실재적인 대상만을 마주치고 마주하려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시나리오 전개는 현실의 우리 모두가 실재적 대상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너무나 쉽게 망각해버린 시뮬라르크(가상의 관념,존재)의 존재를 표면에 내비추게 해준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의 관념 속에 있는 이름 모를 대상을
실재적 대상에 투영해 주는 시뮬라르크(가상의 관념,존재)라는 존재를
공모전을 위한 시나리오에서 노골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3.그렇게 두 사람 철수(이성재 분)와 춘희(심은하 분)는 공모전을 위한 시나리오를 전개해 나가지만
작품의 상영 시간 종료 -3분 까지도 우리가 그토록 기대했던 시놉시스는 전개되지 않는다.
철수(이성재 분)는 춘희(심은하 분)를 위해 비디오 카메라에 찍힌 춘희(심은하 분)의 좌절하는 모습과
녹음을 남기고 그렇게 둘만의 장소를 떠나갔다.
이 때 춘희(심은하 분)는 액자 속 그림에 비친, 카메라에 찍힌 자신의 모습을 보며
그렇게 자신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소위 심리학 교양에서 들어봤을법한 쿨리와 미드의 "거울 속의 자아이론"을 연상케하는 부분이다.
춘희(심은하 분)는 자신의 자아를 되찾기 시작하며
떠나간 철수(이성재 분)가 있을 법한 장소를 향해 급하게 서두르기 시작한다.
그곳은 바로 작품 명인 "미술관 옆 동물원"
그녀와 그는 상영 종료 -30초 전에 키스를 하며 그렇게 둘만의 미래를 예고하며 막을 내린다.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과거-현재-미래의 삼중적인 시놉시스가 모두 구현된 작품이다.
투영,시뮬라르크와 같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망각한 소재 또한 참신하게 다룬 작품이다.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실체에 더욱 더 가까워지고 접근하려고 한다.
우리는 사람 대 사람으로 이루어지는 그 간극을 좁히기만을 갈망한다.
우리는 물리적인 거리적 간극에만 몰입하고 집중하며 살아간다.
본 작품은 이러한 우리의 시각과 태도에 대해 일종의 반성적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본 작품의 20년도 더 된 식상하고 유치한 멘트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때때로 짓곤 했지만
마지막 씬을 보며 관객들이 유치찬란하기 그지없다는 본 작품에 대해
필자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 눈물은 슬픈 눈물이 아닌 두 사람 철수(이성재 분)와 춘희(심은하 분)를 위한축복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