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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잰 Mar 21. 2024

[길:경의중앙선 타고 응봉산으로]

오늘 약간 센치. 

  오늘부터 성동구에 위치한 응봉산에서 [개나리 축제]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응봉산은 서울에 위치했지만 가본 적도 없고 낯설어서 축제도 볼 겸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포스터 한 장이 응봉산으로 향하게 했다. 

  축제는 이번 주 토요일까지라지만 내일부터 비 소식도 있어서 혹시 개나리가 다 지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에 오늘 오전 강의를 끝낸 후 옷만 갈아입고 보온병에 따뜻한 차만 챙겨서 응봉산으로 향했다. 가는 시간은 1시간 10분 남짓 걸렸다. 공덕역에서 내려서 공덕역에서부터 경의 중앙선으로 환승해서 응봉역까지 가는 노선을 선택했다. 이유는 낭만? 지금 서울의 지하철역사는 시설도 최신식으로 잘 되어 있고 구도심이라도 거의 지하를 통해서 노선이 잘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경의중앙선은 지하철이 야외로 나오는 예전의 그 옥수역, 서빙고역 등을 거치는 노선이다. 정말 오랜만에 타보는 노선이다. 왠지 일본의 고즈넉한 시골역사 같기도 한 그런 낭만이 내게 남아 있는 노선. 경의중앙선을 타면서 공덕역부터 바로 시공간이 바뀌는 듯한 느낌이 너무나 좋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응봉역에 내려서 1번 출구로 나오니 바로 응봉역 팔각정으로 오를 수 있도록 바닥에도 정면에도 사인들이 있다.   

  응봉산은 낮고 작은 동산과 같다. 해발 약80m 정도?

  하지만 거기에는 커다란 반전이 있다. 응봉산은 원래 행당동의 대현산과 작은 매봉과 큰 매봉으로 짝을 이뤘던 산으로써 남산줄기에서 갈라져 나왔고 한남동, 옥수동, 신당동, 행당동, 금호동, 응봉동을 모두 아우르는 거대한 산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60년대 이후부터 서울의 팽창으로 응봉산 산골짜기마다 주거지가 파고들면서 산이 깎여 나가 경사로에도 상관없이 주택가로 바뀌어버렸다. 그리고 '독서당로'가 현재의 응동봉 고개를 뚫고 지나가며 대현산과도 완전히 분리되어버렸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응봉산은 여러 갈래로 갈가리 찢겨져 나간 것이다. 지금의 금호로 이동 지역의 봉우리만을 응봉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응봉역 1번 출구에서 좌회전하면 바로 응봉초등학교가 보인다. 응봉초동학교의 운동장을 지나면 얇은 여러 개의 기둥이 초등학교를 떠받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경사면의 학교 운동장을 평탄화하다 보니 그런 형상이 된 것같다. 보면서 어린아이들이 공부하고 뛰어노는 곳인데 좀 아찔해 보이기도 해서 안전을 기원하면서 지나쳤다. 


  이렇게 산이 찢겨져 나간 아픔을 간직한 응봉산은 그래도 매년 봄에 개나리를 흐드러지게 피워 상춘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개나리는 난개발로  훼손된 산을 회복시키는 일환으로 심었다고 알고 있다. 사람으로 상처받은 산이 그럼에도 꽃을 피워 되려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니...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묘한 느낌이 참 많이 들었다. 응봉산의 개나리가 피면 서울에 봄이 온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은 가보니 개화일 예측을 잘 못했는지 개나리가 한송이도 피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 작은 봉우리 팔각정위에 큼지막한 무대를 설치해놓고 있는 모습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바닥은 인조잔디 같은 바닥을 일부러 깔아 놓았다. 봄은 아직인데 사람들의 눈에만 보이기 위한 것들처럼 보여 괜히 내 마음에 심통이 난 건지도 모르겠다. 

  그 옆. 응봉산길을 맨발로 걸었다. 산마다 길마다 바닥은 그 느낌이 있다. 응봉산은 그다지 생기가 많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떤 산은 바닥을 디딜 때 에너지가 바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응봉산은 자갈 섞인 그냥 흙바닥의 느낌이랄까. 그마저도 인공 데크를 설치했고 나머지는 주택가와 연결된 산. 겨우 바닥의 어린 생명을 찾아 살며시 발과 사진 한 장 찍었다. 

  응봉산은 한강뷰가 매우 뛰어나다. 특히 야경은 너무나도 아름답다고 한다. 그런데 마음이 좀 꼬여서인지 한강 개발의 중심지에서 얼마나 고생했을까, 밤새 불 켜진 환경에 얼마나 고달플까. 이런 생각이 자꾸 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서울시 주택정리사업을 실시해서 녹지확보계획을 세우면서 크게 훼손되었었던 응봉산은 조금씩 조금씩 회복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사람과 함께 공존할 수밖에 없는 운명? 의 응봉산이 사람들에게 내어준 것만큼 사람들도 응봉산을 회복시키는데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주택지 개발, 개나리축제와 아름다운 야경, 성동구의 해맞이 행사 단골 장소 등 사람들에게 내어 주기만 했던 응봉산에 좀 더 생기가 감돌고 이제는 안 계실 푸근한 응봉산의 산신령님도 돌아오실 수 있으면 좋겠다. 


  경의중앙선으로 좋았고 응봉산으로 살짝 마음 아팠던 오늘의 [길:]이다. 그리고 사람과 자연의 공존에 대해서 다시 한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던 시간이다. 나의 실천은 어떤 것들이 있을지도. 


  개나리는 다음 주쯤에 만개하지 않을까 싶다. 개나리 축제에 가시는 분들 모두 마음속으로 응봉산에 따뜻한 에너지 불어넣고 오시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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