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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혀놔 Mar 06. 2023

따스한 봄에 사용하는 포근한 뜨개소품의 맛

여느때보다 봄이 더욱 빠르게 다가온 느낌이 든다. 기분이 좋다. 한 손에는 살구색 텀블러 홀더, 다른 한 손에는 보라색 뜨개 지갑을 들고 아이보리색 캐시미어 목도리를 두른 채 길을 나선다. 이 세 아이는 요즘 나의 일상을 함께하는 소품들이다. 


잘 만든 손뜨개 소품과 함께하는 하루는 기분이 좋다. 정성이 깃든 물건에 문득 시선이 머물 때마다 다정한 생기가 충전되곤 한다. 이 기쁨을 많은 사람들과 누리고 싶은 마음에 겨울을 지나 봄에도 사용할 수 있는 나의 뜨개 소품 3가지를 나눠보고자 한다. 


* 오늘 소개하는 뜨개 소품들은 모두 엄마의 손길로 완성됐다 (고마와요 윤여사♥)




1. 텀블러 홀더


텀블러를 선물로 받았다. 크림 화이트색의 텀블러는 처음 보자마자 스크래치가 생기면 어떡하지, 때가 타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들 정도로 예뻤다. 



오래오래 깨끗하게 쓰고 싶은 마음에 엄마에게 텀블러 홀더를 만들어 달라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단번에 예쁜 살구색 실로, 오직 이 텀블러를 위한 딱맞는 홀더를 만들어주셨다. 



몇 번 쓰지도 않았는데 얼룩이 생겨 버렸다. 처음엔 커피 자국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가방에서 이염되어 생긴 얼룩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희미한 생활 오염이라면 너그럽게 눈감아줄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감사하다. 텀블러를 보호하다 생긴 영광스러운 흔적이니까. 덕분에 나의 텀블러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짱짱하다. 



몇 번 세탁기에 돌려서 사이즈가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씌우고 벗기기에는 문제없다. 한 손에 딱 알맞게 잡히는 그립감은 덤. 내 손에 딱이다. 




2. 카드 지갑


안타깝게도 나는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편이다. 언니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지갑을 택시 뒷좌석에 두고 내리고, 남자친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지갑을 길가에 떨어트려 잃어버리기를 두 번. '나는 지갑을 선물로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 것 같아' 라며 망연자실했을 무렵 엄마가 뜨개질로 지갑을 떠주셨다. 


원하는 크기는 명확했다. 카드지갑 크기만큼 한 손에 들어올 만큼 컴팩트해야 하며 한 번 접은 만원 지폐가 들어갈 만한 사이즈여야 했다. 엄마는 카페에서 그저 뚝딱 만들어주셨다. 


그사이 나의 거친 사용감으로 인해 그사이에 보풀이 일어나긴 했지만 이 정도는 보풀제거기로 한 번만 싹- 훔쳐주면 다시 깔끔해진다. 단추는 엄마가 아주 오래전부터 반짇고리에 모아둔 옛날 단추들 중 어울릴법한 하나를 골라 달았다. 그 어떤 시제품보다도 근사하다. 






3. 목도리


나의 가장 페이보릿템. 거의 10년 정도 사용하는 동안 보풀 한 번 일어나지 않은 목도리는 여전히 짱짱한 짜임을 자랑한다. 


총길이는 210cm. 테두리는 한코고무뜨기를 교차로, 가운데는 안뜨기와 겉뜨기를 반복한 체크무늬로 채웠다. 이건 작품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이 머플러를 두른 날, 가로수길을 걷다 무신사 스냅사진을 찍는 포토그래퍼 분께 포착되어 사진이 찍힌 적도 있다 흐흐.

투박한 겉옷 위로 무심히 툭 둘러주기만 해도 제법 태가 난다. 겨울에 매일같이 두르고 다녔지만, 아직 봄이 추워 지금까지도 애용하고 있다.




이 아이들은 모두 내 몸과 TPO에 아주 잘 맞는 그립감을 선사한다. 만드는 단계에서부터 맞춤형으로, 몇 번이고 몸에 대보며 수정한 끝에 완성되었으니 말이다. 시선이 꽂힐 때마다 찬찬히 뜯어보곤 하는데 볼 때마다 얼마나 따스하고 예쁜지 모른다. 



정성스럽게 사랑을 담아 만든 물건은 단순한 소유 이상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꼭 뜨개실로 만들지 않았더라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정감이 가거나 이야기가 담긴 물건이 하나 둘 있길, 그 속에서 추억을 떠올리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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