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영 못 하지만 이것만은 자신 있어
말 잘하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다. 똑같은 말을 해도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편하게 신변잡기를 이야기하는데도 묘하게 집중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이들을 보면 마냥 신기하고 부럽다.
나는 말 잘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아니, 못하는 것에 가깝다. 말을 잘 못하면 가만히 듣기만 하면 되는데 사회생활을 한답시고 말을 어떻게든 말을 욱여넣다 보니 내 의도와 다르게 말이 튀어나와서 당황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 어른과 식사를 하다가 추임새를 넣는다는 게 ‘실컷 이야기하셔도 됩니다.’해서 옆에 있던 엄마가 옆구리를 쿡 찌른다던가, 고민 끝에 직장생활을 정리한다는 선배의 말씀을 듣고는 ‘잘 생각해보시라고’ 이런저런 조언을 하다가 스스로 깜짝 놀란다던가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집에 오면서 항상 생각한다. 차라리 입을 닫고 있자........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나는 말과 영 친하지가 않았다. 엄마는 내가 거금 500원을 쥐고 있어도 코앞에 있는 슈퍼조차 가지 않았다고 한다. 주인아주머니께 ‘이거 주세요.’라는 말을 꺼내는 게 부끄러워서. 평생 그렇게 사는가 싶었는데 ‘아줌마, 얘는 1년 동안 단 한 번도 발표한 적이 없어요.’라는 1학년 단짝 친구의 한 마디에 충격받은 엄마는 나를 단박에 웅변학원에 집어넣었다.
20년 전만 해도 논술-웅변학원은 피아노, 태권도 학원만큼이나 인기 종목이었다. 낯선 아이들과 어깨를 부딪히며 봉고차를 타고 학원에 가는 것조차 버거웠는데 학원에서는 앞에 나와서 발음 연습, 책상 위에 올라가서 소리 지르기, 심지어 길거리에서 세워놓고 지나가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를 시켰다. 나가떨어질 법도 한데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게도 몇 년을 잘 참고 다녔다. 심지어 내가 단 한 글자도 쓰지 않은 대본을 달달 외워서 웅변대회도 나가 상도 받았다. 숱한 대회에 나갔는데 그때 외운 원고 중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건 단 한 줄 뿐이다. ‘이 연사, (손을 가슴에) 힘차게(주먹 쥐고) 외칩니다!(손 뻗기)’
다행히도 스파르타 교육이 힘을 발휘했는지 학교에서는 곧잘 임원도 하고 발표도 종종 하는 평균적인 말하기까지는 가능해졌다. 신기하게도 어른이 된 지금은 무려 남들 앞에서 말하는 걸 업으로 삼게 되었다. 직업적으로 말하는 건 연습을 통해 익숙해졌는데 여전히 그 외의 모든 말하기는 영 어색하다. 억지로 친해진 친구처럼 만날 때마다 긴장되고 헤어질 때 그 만남을 곱씹게 되는 그런 존재가 바로 나에겐 '말'이다.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저녁을 먹으며 말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웬걸 이 친구도 나와 똑같은 고민을 말한다. 회사에서 사람들과 좀 더 편하게 말을 하고 싶은데 생각을 너무 많이 한다고, 그래서 아무 말도 못 하겠다고. 좀 더 자연스럽게 말을 잘하게 되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프레젠테이션 잘하는 건 고사하고 직장 동료들과 스몰토크도 무얼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그런데 그런 고민을 말하는 친구의 말이 너무 능숙하다. 설명이 너무 논리적이고 자세하고 쏙쏙 이해가 된다. 친구에게 말했다. 지금 너 말 엄청 잘하는 거 알지? 친구가 웃는다. 말하는 스킬에는 자신이 없지만 말속에 진정성을 담아 말하면 상대도 그걸 느낄 거라고. 우리가 말은 못 해도 ‘진심’ 하나엔 자신 있잖아. 함께 이야기하다 웃어버린다. 학원에서 써준 원고를 달달 외워 능숙하게 말하는 웅변처럼 말하고 싶지 않다. 여전히 서툴고 어색해도 진심을 담아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내 말에 귀 기울여 줄 진심인 사람이 어딘가에 있으리라 믿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