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손'이 보이나요
‘호캉스’.
말만 들어도 설레는 단어. 좁은 집을 탈출하고 싶을 때면 호텔에 갔다. 열심히 일한 나를 위한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눈 딱 감고 카드를 긁는다. 호텔의 가장 좋은 점은 상상 속의 집을 눈앞에 현실화해준다는 것이다. 깨끗하고, 편리하고, 전망 좋고, 무엇보다도 노동이 없다. 집에서 쉬다 보면 온갖 물건들이 말을 걸어온다. 저기, 나 건조기에서 잠잔지도 삼 일이 넘었어, 안 갤 거야? 야, 나 마지막 휴지다. 너 얼른 휴지 사야 해. 하지만 호텔에서는? 아무도 나를 성가시게 하지 않는다. 호텔 물건들은 처음 보는 나에게 말이 없다. 그저 수영장에서 마음껏 수영을 하고 방으로 돌아와서 에어컨을 틀어놓고 바스락거리는 침구에 몸을 던지면 그만이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잠시 부자가 된 것 같은 달콤한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그날도 여느 호캉스 중 하루였다. 수영장에 애매한 시간대에 가서인지 운 좋게도 거의 사람이 없었다. 넓은 수영장을 나 혼자 차지하고 마음껏 수영을 하고 나왔다. 기분 좋게 씻고 머리를 말리려고 화장대로 들어서려는데 청소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화장대를 치우고 계셨다. 무심코 걸어갔는데 그녀의 손놀림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정말 빨랐다. 흡사 동영상을 두 배로 빨리 감기를 해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정확했다. 드라이기 전선을 마는 횟수, 면봉의 튀어나온 높이, 빗의 정렬, 티슈가 뽑혀 나온 정도, 화장품의 방향 하나하나를 맞춰 모든 화장대가 똑같이 보이게 정리하고 있었다. 자로 잰 듯 정확하게,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한참 정리를 하다가 그녀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뒤를 돌아봤다. 얼빠진 채로 있는 나를 보고는 고개를 숙이고 재빨리 어디론가 사라졌다.
머리를 말리면서 멍해졌다. 그동안 호텔의 깨끗하고 정돈된 모든 것들이 원래부터 그 상태였던 것처럼 생각하고 마음 편히 누렸다. 당연하게도 누군가는 이 완벽한 호텔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빨고 청소했을 텐데 말이다. 그날 푹신한 침구에 몸을 눕혀 잠을 자려는데 자꾸만 그녀의 손이 생각났다. 그녀는 퇴근해서도 그렇게 자기 집을 정리할까? 집에서 가족이 그만하라고 나무라는데도 계속 집 정리를 멈추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이 제멋대로 내 머릿속에서 리플레이되었다. 그 뒤로 나는 호캉스를 예전처럼 즐기지 못한다. 이제 호텔의 물건들도 나에게 이따금씩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끔 여행 때문에 호텔에 갈 때에는 방을 나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정리를 하고 나온다. 이전엔 보이지 않던 누군가의 손이 자꾸 생각나서.
삶이 편해질수록 그 삶의 뒤에 있는 수많은 ‘손’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택배를 편하게 받고 상자를 뜯으며 기뻐하지만 정작 나는 우리 집에 택배를 배달해 주시는 기사님을 단 한 번도 뵌 적이 없다. 모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근을 하다가 쓰레기를 치우는 쓰레기차를 마주친 적이 있다. 거기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내려 손으로 하나하나 쓰레기봉투를 집어 차로 옮기는 걸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당연히 누군가가 그렇게 하겠지만 쓰레기를 버릴 때 그것까지 상상해본 적은 없었다. 나에게 쓰레기는 그저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고 그게 끝이었다. 분리수거 아르바이트에 다녀온 친구는 분리수거된 물건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꺼내고 분류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제일 싫었던 것이 캔 안에 쓰레기를 쑤셔 넣은 병이 너무 성가셨다고, 그걸 하나하나 꺼낼 때 시간이 제일 많이 걸렸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눈앞의 것들만 바라보면 몸도 마음도 편하게 누리고 살아갈 수 있는데 자꾸만 보이지 않던 손들이 눈에 들어온다. 호텔을 마냥 기쁘게 누리지 못하고, 쓰레기를 버릴 때면 한 번 더 손이 간다. 택배를 뜯을 때에도 누군가가 이 상자를 들고뛰었을 비하인드 신이 떠오른다. 그러다 보니 뭘 하든 조금 더 불편해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는 이 불편함이 싫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