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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산 Nov 12. 2022

어쩌다 보니

이태원 참사, 그 후

 어느 날과 같은 주말 저녁이었다. 종로에서 남편과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데 평소보다 많은 인파를 보고 그제야 핼러윈이 코앞인 걸 알았다. 그 작은 서촌 골목에도 사람들이 가득 차서 여러 식당을 전전하다가 겨우 한 곳에 들어가서 배를 채울 수 있었다. 가볍게 술을 한잔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데 용산 쪽에 유난히 사람이 많은 것이 확연히 눈으로 보였다. 동생에게 카톡을 했다. 네가 알려준 곳에 갔는데 분위기 좋더라, 고마워. 연락을 받은 동생은 자신은 지금 용산 쪽에서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있다고 했다. 좋은 시간 보내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집에 도착했다.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재난 문자가 울렸다. ‘해밀턴 호텔 근처 교통 통제 중’ 평소 워낙 많은 재난 문자가 오기에 이제 재난 문자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고, 해밀턴 호텔에서 파티하다 불이 났나, 사람들은 대피했겠지? 가볍게 생각했다. 너무 피곤해서 바로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아침 10시가 되어서야 눈을 떴다. 그리고 어젯밤 이태원에서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심정지로 죽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바로 떠오르는 건 동생의 문자. 동생이 식사를 하고 있었던 곳은 이태원으로 충분히 걸어갈만한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평소 동생은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활발한 아이기 때문에 2차로 술을 한잔하러 이태원에 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사고가 정지한 듯했고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바로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동생은 받지 않았다. 카톡을 해도 확인을 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연락을 했지만 동생은 감감무소식이었다. 남편은 아직 자고 있을 수 있지, 기다려보자며 나를 달래주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태원에서 일어난 뉴스를 클릭할 수조차 없었다.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확인할 자신이 없었다. 설마, 설마를 되 뇌이며 연락을 기다렸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사상자들이 보내졌다는 병원 연락처를 찾기 시작했을 때에야, 동생은 연락이 왔다. 왜 이렇게 전화를 많이 했어? 


 동생은 등산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해맑게 산 정상에서 웃고 있는 동생의 사진을 받고서야 온몸에 긴장이 풀렸다. 그제야 이태원에서 어젯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뉴스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런 통제가 없는 곳에서 수많은 인파가 이태원에 몰렸고 좁은 골목 안에서 사람들이 압사당했다는, 정말 듣고도 믿을 수 없는 뉴스였다. 그 골목은 이태원에 한 번이라도 가봤다면 누구나 오르내렸을, 1번 출구 앞 좁은 골목이었다. 나 역시 최소 10번 이상은 그 골목을 오르내렸을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에 깔려 죽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누군가 한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비웃음을 당할 것이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큰일 날 뻔했지 뭐야.’ 엄마가 들려주신 이야기. 어렸을 때 감기와 천식을 달고 살았던 내게 가습기를 놓아주고 싶었는데 너무 바빠서 가습기를 놓아줄 정신이 없어 내내 미안했다고 했다. 가습기를 놨다면 깔끔한 아빠 성격 탓에 분명히 그때 유행했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을 것이고, 그 결과는 상상도 하기 싫다고. 성인이 되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내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안 된 것은 어쩌다 보니,였다. 동생이 그날 밤 가까운 이태원에 가지 않은 것도 어쩌다 보니,였다. 뉴스에서 노동을 하다 사망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슬프지만, 내 일은 아니야라며 넘어갔던 것 같다. 이번 참사를 겪으며 잠시나마 이 일이 내 것이라고 느꼈던 그 짧은 시간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고 앞으로도 잊지 않으려 한다. 눈을 크게 뜨고 앞으로의 일들을 지켜볼 것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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