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 볶을 준비 하며 팟캐스트를 연결한다. 단순한 일로 시간 보내야 할 때 이야기가 향신료가 된다.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에서 소설 한 편 듣고 나면 깨소금 통이 채워져 있을 것이다. 업로드된 목차를 훑어보다 ‘앤드루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클릭한다. 제목이 예사롭지 않다.
낭독자는 여느 때와 달리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설명 없이 바로 본문으로 들어간다. “로버트가 마침내 내게 말을 걸어온 것은 가을 학기의 마지막 날이 되어서였다. 그는 교수였고….” 감정을 억제할수록 오히려 감각이 선명해지는 걸까. 오늘따라 유난히 감각적으로 들리는 목소리다. 볼륨을 높이고 참깨를 물에 담근다. 물속에서 깨들이 자잘하게 부딪히며 금빛 숨을 토한다.
깨를 일어 체에 밭쳐 놓는 사이 물리학과 교수인 ‘로버트’가 기말고사 시험지를 제출한 ‘헤더’에게 자기 집에서 차 한잔하겠느냐는 제안을 한다. 거절해도 상처받지 않을 거라는 말에, 헤더는 혹시 제안을 거둬버릴까 봐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아니에요. 마시고 싶어요, 차.”
나도 찻물을 올린다.
헤더는 의과대학생이고 학교의 대표 수영선수이기도 한 ‘콜린’과 교제 중이다. 헤더 스스로 ‘젊고 잘생기고 세계에 대한 낙관으로 가득 찼다.’고 콜린을 소개한다. 부인과 별거 중인 로버트는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를 가졌지만, 헤더보다 서른 살이 많다.
물기가 조금 가신 깨를 팬에 넣고 젓기 시작한다.
헤더와 로버트, 그들은 어느덧 함께 영화를 보고 로버트의 집에서 와인을 마시는 사이로 발전했다. 정기적으로 만나고 싶다며 헤더에게 여분의 집 열쇠를 건네주는 로버트. 콜린에게는 하지 않던 하찮고 소소한 이야기까지도 로버트에게는 스스럼없이 털어놓는 헤더.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있다고 고백할 때는 언제고 콜린과 만나는 것을 피하면서까지 로버트와 만날 때를 기다리는 헤더.
두 사람의 만남이 잦아질수록 내 안에서도 어떤 미세한 균열이 생긴다. 내 안의 로버트가, 내 안의 헤더가 서로를 바라본다. 이야기 밖의 인물이 아니라, 어쩌면 나의 가능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일까. 깨를 볶는 일이 아니었다면, 차 대신 와인을 따랐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언젠가 이런 만남을 되돌아보며 나를 미워하게 될까 봐 두려워요.”
“내가 두려운 게 뭔지 알아요, 로버트? 나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게 될까 봐 그것이 두려워요.”
로버트와 헤더가 달콤한 말 한마디 섞지 않고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사랑은 용기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 앞에서 서로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일까. 밤늦은 시간에 콜린과도 간 적 있는 술집에서 스카치를 마시며 나란히 앉아 있다니. 콜린에게 들키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로버트의 손을 놓아버릴 거면서. 헤더 혼자 남겨 두고 말없이 자리를 뜰 거면서.
뜨거운 팬 위에서 서로의 열기에 달라붙어 뭉쳐 다니던 깨들이 흩어지기 시작한다. 주걱에 달라붙어 있던 깨도 어느새 떨어져 있다. 이리저리 휩쓸려 통통 튀다 여차하면 뛰쳐나갈 준비가 되었다는 암시다. 불을 줄이고 밖을 넘보는 놈들을 잡아 두려 나는 부지런히 손을 놀린다.
그와 함께라면 적어도 불행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을 주는 남자, 콜린이 헤더에게 말한다. 로버트와 무엇을 했든 상관하지 않겠다고, 다시는 그 사람과 만나지 말라고. 마침내 헤더는 로버트에게 작별을 통보한다. 그 후 콜린과 결혼한 헤더는 먼 곳으로 떠나고, 간간이 편지를 주고받던 헤더와 로버트는 그 끈마저 놓고 만다.
그들의 이야기는 끝났는데도 내 마음엔 아직 식지 않은 잔열이 남아 있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원하는 많은 부분을 채워준다 해도 그가 채워줄 수 없는 중요한 일부분을 다른 누군가가 채워준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나 역시 헤더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구를 택하든 가지 않는 길에 회한을 품고 살게 되겠지. 그런데도 콜린이 헤더를 보내주기를, 로버트가 헤더를 잡아 주기를, 아니 헤더가 로버트 곁에 남기를 바라는 이 마음은 뭘까.
화자는 10년 전의 기억을 끄집어내 시간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서술해 간다. 담담하면서 진솔하게, 간결하면서 섬세하게. 미사여구 하나 없이 어떻게 그 복잡하고 내밀한 감정을 다 드러내는지.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가 석양빛에 반짝이는 잔물결 같다. 조심스럽고 은밀한 감정을 놓치지 않으려고 나는 온 감각을 열어 촉수를 세운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헤더는 로버트의 부음을 듣게 된다. 삶에 대한 기대나 욕망은 없지만 조용히 바라봐 주고 말을 들어 주고 성인으로 인정해 주던, 자기 자신보다 자기를 더 이해하는 것 같던,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핏속까지 편안하고 따뜻하던 로버트가 세상을 떠났다. 그런 사람을 체념하고 그가 갖지 않은 거의 모든 것을 가진 콜린과 사는 헤더는 통곡을, 통곡을 한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상한 이론’을 모티브로 삼았다. 파인먼의 이론에 따르면, 낮에 램프를 켜놓으면 100개의 빛 입자 중 평균 96개는 유리를 통과하고, 4개는 반사되어 돌아온다고 하지 않는가. 작가는, 누구도 빛 입자의 경로를 알 수 없고 특정 입자의 궤도를 예측할 수 없다는 파인먼의 이론에 빗대어, 인간의 선택 또한 예측 불가한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삶은 마음이나 기억, 삶의 방향과 그 삶을 둘러싼 물질의 축적마저도 원칙이나 법칙에 근거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빛이 유리를 통과하듯, 깨가 팬을 벗어나듯, 우리도 각자의 경로를 예측할 수 없다. 작가 또한 인간의 삶은 불확실성과 소멸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파인먼의 이론과 다르지 않다고 보았을 것이다. 작가가 제목에서 ‘이상한’을 뺀 이유는, 우연이나 부조리의 무원칙이 운명을 좌우하는 인생에서 더는 이상한 것이 아니기에 ‘이상함’ 그 자체를 인정한 것이리라. 삶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잠깐 딴생각으로 멈칫한 사이에 불판의 깨들이 세상의 모든 힘을 빌린 듯 맹렬하게 튀어 오른다. 가스불을 끄고 팬을 들어올린다. 어르고 달래고 몰아붙이며 단속했는데도 기어이 튕겨 나간 깨알들이 팬 바깥에 흩어져 있다.
바깥으로 튀어 나간 깨를 바라본다. 제자리를 벗어나 버린 작은 생들. 결국, 튀어 봤자 깨알인 것을.
<뉴욕일보 '수필의 향기'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