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가치 그리고 마음
그러나 말보다 감정이 먼저 있고, 표현보다 울림이 중요한 사람은 이런 세상에서 정말 쉽게 지친다. 이 세상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숨 쉴 만한 그런 공간도, 사람도 없다. 그래서 나와 같은 사람들은 결국 숨어버린다. 찾고 지치고, 홀로 숨을 고르다 보면 세상에는 더 이상 숨 쉴 곳도, 사람도 남지 않게 된다.
그래서 나의 삶이 울컥하는가 보다. 만화 나루토를 보면, 거기에 주인공 나루토가 아기일 때, 그의 몸에 구미호를 봉인한다. 그리고 나루토가 자란 후에 그 구미호를 잘 다룰 수 있도록 훈련한다. 결국에는 나루토는 필요할 때 구미호의 봉인을 열어서 구미호가 되어 싸운다. 하지만 늘 몸속 깊은 곳에 구미호의 울부짖음이 있는 거다. 봉인 너머로 뛰쳐나가고 아주 길길이 날뛰고 싶어 하는 야생의 구미호가. 나도 늘 내 속에 무언가 울컥함이 살아 있다.
나의 얼굴을 묘사하자면, 나는 그냥 조금 밋밋하고 조금 비대칭이고 하얗고 동그란 얼굴에, 눈두덩이가 주름진 아몬드 모양에 살짝 올라간 눈매, 내면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눈빛, 피부에 옅게 깔린 주근깨가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내가 정말 날카로울 정도로 내 감정이 드러나는 사람임을 느낀다. 피곤하고 지겨울 때는 공허하고 죽은 눈빛이, 그리움과 아련함을 느낄 때는 촉촉하고 슬픈 여운이 느껴지는 눈이 된다. 그럴 때면 눈 모양도 더 동그래 보인다. 글을 쓸 열망과 꿈을 생각할 때면 반짝이고 또렷한 눈을 마주하게 된다. 거울 속에 마주한 나는, 정말 신기한 사람이다.
얼굴은 영혼의 창이고 글과 말은 영혼을 담는 모양이다. 많은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서슴없이 글과 말을 뱉어내지만, 사실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뀐다. 특히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상품의 가치도 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똑같은 상품이라도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내가 카페에서 일했을 때는 모든 메뉴의 가격이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모텔에서 객실이라는 상품은 주변의 다른 모텔의 시세와 인구의 유동성, 평일과 주말이라는 날짜의 특수성 등 다양한 조건에 따라 유동적으로 가격이 바뀐다. 그래서 말이라는 도구로 어떻게 가치를 표현하는가가 중요하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 과정이 아직도 어렵고 어색하다. 이 일에 적성도 재능도 없지만 나는 오늘도 조금 더 가치를 담아 말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요즘 드라마 협상의 기술을 너무 재밌게 보고 있다. 배우 이제훈 님이 연기하는 윤주노 팀장의 에피소드는 하나하나가 다 몰입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나는 그중에 딱 한 장면을 소개하고 싶다. 바로 M&A 팀의 여자 팀원과 그녀 엄마의 이야기이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일상의 한 장면 같은 에피소드이다.
그녀의 엄마는 아파트 단지 앞에서 딸기 트럭을 주차해 놓고 딸기를 팔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경비 아저씨가 다가와 ‘여기서 장사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주의를 주었다. 딸기가 잘 팔리지도 않았고, 트럭을 곧 옮겨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 그녀의 엄마는 망설임 없이 딸기 한 박스를 건네며 웃었다. ‘금방 갈게요’라는 말과 함께 작은 배려를 보였다. 경비 아저씨가 그 자리를 떠난 후 그녀는 딸기 앞에 쓰인 문구를 그제야 발견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이거 떨이야?”
그리고 약간 신경질적으로 박스의 자투리를 가져와서 그 위에 마카로 무언가를 끄적였다. 그 후에 그녀는 엄마에게 바쁘다고 하며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손님들이 하나둘 딸기 트럭에 찾아오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올해 마지막 딸기’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 박스 자투리가 세워져 있었다.
나는 이 장면에 정말 공감했다. 같은 상품이어도 그 상품을 어떤 말로 표현했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가치를 갖는 상품이 되기도 한다. 마치 이 속담처럼.
'아' 다르고 '어' 다르다.
그리고 또 다른 진실은 어떻게 말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떤 본심을 담았는가에 따라 같은 표현이라도 더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드라마 ‘협상의 기술’은 단순한 비즈니스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 간의 진심을 주고받는 ‘사람 사는 이야기’다. 드라마 속 기업 간의 협상 또한 이러한 진심을 어떤 말의 기술을 통해서 주고받는 일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과 진심은 이렇게나 중요하다.
당신은 오늘, 어떤 말로 누군가의 마음에 다가갔는가? 당신의 본심은 어떤 모양으로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