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복도식 아파트에서 살았다. 기억하기로는 한 쪽 끝부터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몇 번 신나게 발을 굴려도 반대편 끝까지 닿지 않을 만큼 길었다. 복도 벽에는 딱 내 발 하나가 들어갈 만한 기다란 틈이 있었다. 매일 한번씩은 그곳에 왼쪽 발을 끼고 올라서서 우리 집 맞은편 아파트 위로 흐르는 구름을 한참 쳐다보곤 했다. 저건 토끼 모양이야, 누구 얼굴이야, 그냥 신기한 모양이야. 구름에 스프링이 달린 듯 발판 삼아 뛰어다닌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실제론 발이 푹 빠져버리고 말겠지. 구름은 천천히 이동하기 때문에 한참 마음 놓고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 보면 벌써 저만치서 살짝 달라진 모양을 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언제나 하얗게 눈이 덮인 북한산이 보였다.
오른쪽 맨 끝에서 사는 두 남매는 우리 집앞 복도로 와서 창문 아래에 판박이를 몰래 붙이고 도망가기도 했고, 복도 가운데 엘리베이터를 지나서 두 번째 집에 사는 초등학교 고학년 언니 오빠들은 카멜레온을 보여준다고 나를 초대하기도 했다. 자기 꼬리를 자른다는 카멜레온은 밥을 들고 유혹하는 내 손에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도망가지도 않은 채로 항상 제 일을 하기에 바빴다.
하루는 그 집에서 다 같이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하얀 쌀밥을 푼 아저씨 숟가락 위에 검은색 파리가 앉았다. 파리는 두 다리를 비볐다. 파리가 떠난 후 아저씨는 파리가 앉았던 자리의 쌀알을 덜어내지 않고 그대로 입으로 넣었다. 그러곤 ‘너희 집에서는 밥을 덜어내고 먹니? 우리는 그냥 먹어.’ 라면서,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차피 같이 사는 세상이라 해를 끼칠 수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셨다. 이후에 언니도, 오빠도 밥 위에 파리가 앉았을 때 왠지 자랑스럽게 그대로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지금도 파리가 밥에 앉을 때 그날 저녁이 생각나곤 한다. 그때 그 집이 가졌던 어딘가 쓸쓸한 느낌과 적갈색 공기. 원탁에 앉아 파리가 앉은 자리를 지켜보던 세 사람. 그 후로 나는 종종 파리가 앉은 밥을 그냥 먹기도 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