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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이 Sep 02. 2022

우울이 다시 찾아오면(괄호 중요)

우울함이 다시 찾아오면 '살아있음'과 '살고싶음', '살고싶지 않음'이 교차하면서 사소한 일에서도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자동으로 죽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돌아간다. 어떻게 죽는지는 그 때마다 다르다. 이런 이미지들이 찾아올 때 '아, 또 왔구나' 깨닫는다.  


예전에 경험하곤 했던 깊은 우울감과 구제할 수 없을 만큼의 무기력감을 다시금 느끼면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더해진다.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으로부터 마음이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일을 자주 겪을 수록 마음은 더 조급해지고 지쳐간다.


이럴때는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던지 마음이 힘들다는 것을 인정해준다. 그리고 우울을 즐기는 마음으로 영원히 탈출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수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노력한다. 또 왔구나 하고 그런 마음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 된다. 여유를 조금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그때부터 상황이 나아진다. 평소 미뤄왔던 하고 싶었던 일을 시도해본다. 어차피 생산적인 일을 해내지 못할것이라면 하고싶었던 일이라도 하는 것이다. 보고싶던 영화를 줄기차게 본다거나 대낮에 침대에 누워 벽이나 천장을 멀뚱히 본다던가 카페에 가서 핫초콜릿을 시켜먹는다던가 책한권 들고 마카롱이나 케이크나 브라우니를 먹는다던가 하는 식이다. 나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먹은 것에 대해 지나친 후회가 들어 더 큰 자괴감을 갖지 않는다면 말이다.


대형 서점에 가서 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하고 민감성, 예민성에 대한 새로운 책을 찾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아예 관련되지 않은 세계 역사나 추천 도서를 들춰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기도 할 것이다. (비교하게 되면 나락으로 떨어진다) 작은 서점은 오히려 지나치게 차분해서 도움이 안될수도 있다. 이럴때 만큼은 대형서점을 방문하자. 목이 마르지 않게 주의한다. 무거운 책을 들고 목이 마르고 다리가 아프다면 모든것을 그만두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수면시간을 지키고, 낮에는 햇볕이 드는 곳, 시야가 탁 트인곳을 걷는다. 헤드폰과 함께라면 더 좋다. 대중교통의 소음은 민감해진 신체를 더 피곤하게 할 확률이 높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책을 사서 경복궁으로 걷다가 효자동 어느 카페에 들어가서 단 음료와 책을 읽는것은 레파토리 1번으로 지정해놓아도 좋을 것 같다. 이수역 앞 아트나인에 가서 영화를 보고 나온 뒤 커피를 마시며 감상평을 끄적거리는 것도 좋겠다. 우울할때는 가끔 글을 쓰기 좋은 조건이 되기도 한다.(책상에 앉는것자체가 불가능할때가 많지만 한번 노트북을 열면 상황은 나아진다.) 마음이 침전되어있기 때문에 글에 집중하기위해 가라앉힐 필요가 없다. 글쓰기에 들어가는 시간이 단축된다. 쓰고 싶었던 글감을 어딘가 메모해두었다가 하나하나 처리한다면 짜릿함과 뿌듯함을 동시에 느낄 것이다. 대충 쓰면 다시 열어보기 싫은 글이 되겠지만 짧게써도 최선을 다해서 다시 읽고싶은 글이 되게 쓰면된다.


해야 될 일을 강요하는 것은 무력감을 부추길 수 있으나 적당히 즐거운 일을 해내는 것은 오히려 도움이 된다. 우울감으로 해내지 못하는 일들에 대한 부채감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방에만 틀어박혀서 있는 것은 아주 좋지 않다. 타인과의 만남을 소규모로 가져도 좋고 이때 우울하지 않고 건강한 페르소나를 만들어 참여한다면 환기가 되어 증상이 호전될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을 깊게 건드리는 사람이나 공연을 본다면 더 힘들어질 수 있으니 가벼운 만남을 갖도록 한다.


평소에 쓰지 않던 향기나는 제품을 사용해서 몸이나 옷에서 향기가 나게 하면 기분전환에 도움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 우울감이 찾아왔을 때 절망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우울감으로 새로이 보낼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하자. 그리고 매 순간 기억날때마다 내가 가진것들을 축복하는 것이 좋다. 내 세포 하나하나에도 축복을 보내자. 잃고나면 그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 분명하다.


우울감때문에 얼굴표정이 굳어있다면 심호흡을 하고 입꼬리를 살짝 올려준다. 세수할때는 시원한물로 얼굴을 위쪽 방향으로 여러번 쓸어준다. 하루종일 처져있던 피부와 기운에 생기가 돋는다. 굳어있는 마음을 풀려면 몸이 풀어져야 한다.  소리를 내어 목소리가 너무 응어리처럼 가슴에 메이지 않도록 한다. 가볍게 전신 스트레칭을 한다. 숨을 쉬는 몸을 느낀다. 내 의지대로 움직여주는 몸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우울감과 함께 한지 어언 10년, 최근에 찾아온 센놈한테 내린 처방이다. 우울할땐 신체적으로, 감정적으로 민감함이 심해지는데 이럴땐 많은 일들을 '그럴수도 있지~', '괜찮아~'라고 넘기는 것이 좋다. <자존감 수업>(윤홍길), <나는 타인보다 민감한 사람입니다>를 읽는다. <마음 세탁소>(황웅근)는 강력하고 뼈때리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어쩔 땐 타격감을 얻고 싶지 않아서 멀리하게 된다. 요즘말로 짤이 없다. 하지만 <마음 세탁소>야 말로 가슴속 가장 가운데에서 안전장치처럼 우울감으로부터 지켜주는 일등 공신이다. 너만 있으면 언제든 괜찮아 질 수 있어란 믿음이랄까.  


더이상은 손 쓸 수 없을 만큼 삶이 망가져 버렸다고 느낄 때, 그것은 오로지 나의 생각이라는 것 그리고 내 몸과 마음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기분이 나아질 수 있는 어떤 것이라도 한다. 청소가 대부분 효과가 좋다. 침대를 정리하고 바닥에 머리카락을 쓸고 상에 남은 컵자국과 과자 부스러기들을 닦고 설거지 후 귀찮은 음식물쓰레기까지 처리하고 나면 부교감신경이 자극되어 차분해지고 사고가 좀더 정리된다. 


몰두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몰두하지 못하는 삶은 어쩌면 불행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불행하다) 밀도 있는 삶을 살아야 숨을 쉴 자격이 있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나의 착각.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다. 살아있는 한 내 몸과 마음을 돌보고 그저 한 걸음씩만 걷는다면 (주저 앉거나 가만히 있는 것도 한걸음에 포함이다) 스스로에게 잘 하고 있다 말해준다. 그렇게 하루가 또 흘러가고, 나이를 먹는다. 언젠가 '그 때 그랬었지. 그리고 그 때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지. 이러나 저러나 숨을 쉬는 것만으로 나는 가치있는 사람이다.' 흔들리지 않고 말할 날이 올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통하지 않는다면 일어나고 싶을 때까지 누워있으면 된다. 그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빠른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이왕 누워있을 것이라면 마음 편하게 누워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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