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째, 여전히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함께 쌓은 이야기로 오늘을 살아가는 중

by 루시아


눈 내리던 3월을 지나

4월이 왔다.


요란했던 봄의 시작은 어디 가고

곳곳에 꽃이 피어난다.


아이가 노는 놀이터에도 벚나무가 있다.

바람이 불고, 벚꽃이 비처럼 내린다.

아이들은 꽃잎을 잡아보겠다고

소리치며 뛰어다닌다.


벚꽃이 피면

나는 언제나 그날을 떠올린다.

우리가 연인이 되기로 약속했던, 11년 전의 봄.




시각장애인 친구들이 많았던 나였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이 시각장애인이라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그의 생활에 익숙해지고,

그의 문제 앞에서 함께 고민하고 분노하며

나도 조금씩 변해갔다.


그의 신앙을 함께 믿어보기로 했고

고향을 떠나 살고 있던 나는

내 친구나 가족보다

그의 사람들을 더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결혼을 결심했다.


준비는 순조로웠지만

결혼이라는 문 앞에 서기까지

우리는 수없이 마음을 졸이며

마음의 문을 열고 닫아야 했다.


사실, 우리의 결혼에서 ‘장애’는 전부가 아니었다.

물론 걱정의 일부였던 적도 있었지만

더 큰 고민은 다른 데 있었다.



남편은 종종 그런 말을 한다.

“그때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평생 결혼 못 했을 거야.”


그건 ‘나라는 여자가 운명이다’ 같은 말이 아니다.

자기처럼 가진 것 없는 남자는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을 거라는 뜻이다.


그럴 때면 나는 웃으며 말한다.

“그땐 당신이 이렇게 가난할 줄 몰랐지 뭐~”


둘 다 웃지만

그 농담 안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




우리는 가진 돈이나 배경이 없었고

당시의 나는 계약직이라 매일 불안했다.

집도 차도 없었던 그때의 현실이

우리에게는 더 큰 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함께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

삶의 방식은 다를지언정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는 믿음.


결혼 후의 삶은

예상보다 훨씬 단단하고 조용한 시간이기도 했고,

또 때론 지치고 불안한 순간의 연속이기도 했다.


영화 ‘업’에서

칼과 엘리가 아무것도 없는 집을 함께 꾸미며

웃고 떠들던 장면이 떠오른다.

우리도 그랬다.


비록 가진 것은 없었지만,

함께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던 그 시절.

저녁마다 산책을 하며

앞으로의 삶을 꿈꾸던 그날의 우리를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얼마 전

남편과 함께 예전에 일했던 학교가 있는 동네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우리가 자주 가던 식당, 카페, 함께 걷던 길을 지나며

자연스레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눴다.


“오빠, 그때 나는 오빠를 정~말 좋아했나 봐.”


“(낄낄) 왜, 갑자기?”


“그때 비 오던 날 기억나?

오빠가 버스에서 내렸는데 우산 없다고 나한테 전화했잖아.

나도 그때 출근하던 버스 안이었는데,

내리자마자 오빠 있는 곳으로 막 뛰어갔잖아.

그냥 비 좀 맞고 가면 될 일이었는데,

나는 우산 쓰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오빠한테 달려갔지.

어휴, 왜 그랬나 몰라. 진짜 좋아했었나 봐.”


“맞아, 그런 적 있었네. 하하. 생각난다.”


“물론~~ 지금도 여보 사랑하지만…

지금이라면 그냥 ‘근처 슈퍼 가서 우산 하나 사~’ 했을 거야. ㅋㅋ”





그래, 그랬던 적이 있었다.


그때 쌓아둔 기억을 하나씩 꺼내보며

우리는

조금은 지친 지금을 함께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쌓아가고 있는 이 일상도

언젠가

우리에게 위로가 되어줄 이야기로 남을 거라 믿으며


나는

다시 한번 애써서 사랑해 본다.





사랑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결국 서로가 애써야 한다.


그걸 알고는 있지만

실천은 언제나 어렵다.


그래도 말이다—

애를 써보자.


그리고 바라본다.

오늘의 우리가,

먼 훗날에도

서로를 따뜻하게 떠올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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