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학교 이야기
아이들과 숲 수업을 마치고 내려오니 산 아래 공원에서 세 모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는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머리가 반쯤은 하얗게 새어버린 젊은 엄마가 오랜 불안에 시달린 듯 까칠한 얼굴을 하고 나를 맞았다. 헛헛하게 연신 웃고 있지만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두 아이들에게도 어쩐지 불안의 냄새가 짙었다.
어머니는 '숲학교에 함께 하고 싶다'라고 말하고 사무적으로 여러 가지 준비 사항들을 물었다.
나도 순간 마음이 딱딱해지면서 거리감을 느꼈지만 '어떤 어려움이 있어 그렇겠지'하며 연민의 마음을 내려했다. 숲학교에 오는 어머니들과 아이들은 숲에 관심을 가질만한 사람이라면 그래도 마음에 여유가 있는 편이라 첫 만남에는 의례 여유와 웃음으로 대개는 분위기가 좋기 마련이었다.
근영(가명)이는 수업시간 내내 쉼 없이 말을 쏟아냈다. 다른 친구와는 말을 섞지 않고 오로지 내 옆에 껌딱지처럼 딱 붙어서 쉴 새 없이 말을 했다. 처음에는 잘 들어주었으나 너무 많은 말을 쏟아내니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워 서 있는 위치를 이동하며 수업을 하려 했다. 그러면 잽싸게 내 옆으로 따라붙으며 말을 쏟아냈다. 나도 근영에게 지금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수업해야 하니 숲길을 걸을 때 이야기하자고 쉴 새 없이 양해를 구해야 했다.
아이들에게 무얼 설명이라도 할라치면 이 아이의 어깨를 붙잡고 지그시 누르며 이야기를 이어가야 했다. 계속되는 움직임에 어렵사리 만들어놓은 집중의 시간을 깨버리기 때문이다.
아이들과는 이 사람 저 사람과 트러블을 일으켰다. 다른 아이가 막대기를 들고 있다가 얼굴을 약간만 스쳐도 자기를 공격했다며 불같이 화를 내었다. 학교에서 따돌림받았던 피해 의식이 깊이 마음속에 깊이 박혀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근영이를 부담스러워하며 함께 놀지 않으려 하고 그러면 근영이는 더 화를 내며 아이들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집에 돌아와 근영이에 대해 생각했다. 이 아이는 왜 이렇게 말이 많을까? 왜 이렇게 산만할까? 말의 내용은 대부분 자신이 겪은 이해되지 않는 억울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학교에서 외톨이로 지내며 겪는 소외감을 이야기를 들어준다 싶으니 상황에 개의치 않고 쉼 없이 하소연하고 있었다. 하얀 얼굴에 마른 몸매로 피노키오처럼 코가 뾰족한 근영이를 생각하면 천변에 홀로 서 있는 백로나 왜가리 같은 외로운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 아이는 어떻게 자라서 이렇게 외로운 아이가 되었나...?
엄마가 편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같이 자식을 키우는 엄마의 마음으로 전화를 걸어서 차를 한잔 하자고 했다. 학교 교사인 근영 엄마는 퇴근 후 바쁜 걸음으로 카페로 들어섰다. 깐깐해 보이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자신의 속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다는 듯 집안의 소소한 일들까지 다 내어놓았다.
근영이는 낳자마자 6개월은 영아원에서 6개월은 형님 집에서 6개월은 베이비시터에게 돌아가며 키워졌다고 한다. 친정엄마는 건강 상의 이유로 육아를 거절했고 남편의 쥐꼬리만 한 월급 때문에 마음 편히 육아휴직을 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엄마의 젖무덤에 파묻혀 달콤하게 젖을 빨아야 할 갓난아기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얼마나 시달려야 했을까? 이야기를 듣는데 엄마 사정도 딱하고 아기도 가여워 마음이 아팠다. 이런 집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근영이는 ADHD 증세를 가지고 있다. 근영이가 가진 어려움들이 다 ADHD 증상에 해당된다. 그런데 엄마는 근영이의 학습을 위해서 학습 치료에 몰두하고 있었다. 큰 병원에 학습치료를 다니며 큰돈을 들이고 있었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보면서 기초 학습의 중요성을 더 뼈저리게 느낀다나... 같이 차를 타고 집에 가면서 날마다 학습지를 하면서 엄마와 싸운다고 근영이는 이르듯이 나에게 말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아이가 왜 잘 자라지 못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근영에게 중요한 것은 학습이 아니라 말을 잘 들어주고 사랑해주는 일이다. 처음 만날 때마다 아이들을 꼭 안아주며 인사하는데 근영이와 동생은 안아주면 몸을 살짝 옆으로 돌려서 빠져나갔다. 해보지 않은 일이라서 마음이 불편한 것이다.
3년 동안 숲학교에 다니며 근영이는 많이 밝고 가벼워졌다. 까칠하던 얼굴도 뽀해졌다. 가끔 친구들과 싸우기도 했지만 이제는 남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마음도 낼 줄 알았다. 숲에 오면 선생님 가방 무겁다고 대신 메고 다니며 으쓱하기도 한다. 나는 근영에게 고맙다고 엉덩이를 두드려주며 그 사랑을 기꺼이 받았다. 어느 날은 헤어지며 선생님 '맞있는 거 사 드시라'며 천 원을 손에 꼭 쥐어주고 갔다. 마음이 울컥했다. 그 돈은 상자에 잘 간직해 두었다. 불안을 이기려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아이가 꽃도 물어보고 새소리를 듣고 이름도 물어본다. 옆으로 뻗은 소나무를 올라타고 누워 아주 즐거워한다. 진달래꽃 앞에서 활짝 웃으며 사진도 찍었다.
가끔 근영이가 보고 싶다. 잘 지내고 있는지...
나에게 가끔 전화도 했었는데... 지금은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심리학에서 아기는 3년 동안은 꼭 엄마가 키우라고 한다.
갓 태어난 3년 동안 인생의 모든 바탕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세상의 어떤 아이라도 최소한 3년만이라도 엄마 품에서 오롯이 사랑받을 권리가 있지 않을까?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더라도 ... 그 시간만큼은 아기에게 집중했으면.
그 때의 결핍으로 인해서 고통을 겪는 아이들을 보면 시간을 다시 되돌리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