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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 Dec 08. 2021

청설모 도시락을 만들어요.

숲학교 이야기


투-욱 툭, 툭...

10월 숲에 들어서면 여기저기서 열매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중력을 안고 떨어지는 도토리가 마치 우주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그 소리가 깊고 묵직하게 숲을 울린다.

그 소리에 가을이 깊어 간다.

봄에 수십 킬로 먼길을 날아서 수정되었던 꽃가루들이 이제는 열매가 되어 지상의 양식으로 떨어진다.


도토리는 대표적인 구황식물이었다.

고려 후기 윤여형이 지은 <상률가>라는 가사에 보면


'촌집 늙은이 마른밥 싸가지고 

새벽에 수탉 소리 들으며 도톨 밤 주으러 가네.

저 만길 벼랑에 올라

칡덩굴 헤치며 매일 원숭이와 경쟁한다.

온종일 주워도 광주리에 차지 않는데

두 다리는 동여 놓은 듯 주린 창자 쪼르륵

날 차고 해 저물어 빈 골짜기에서 자네.(중략)


 배고픈 백성들의 참상과 살기 힘듦을 호소하는 가사 글이다.

가뭄이 들 때 참나무는 꽃가루를 많이 날려 열매를 많이 맺고 비가 많이 오는 해에는  꽃가루를 날리지 못하니 열매가 부실하기 마련이다. 벼가 잘 안 되는 해에는 도토리가 풍작이고 벼가 잘 되는 해에는 도토리가 흉작인 것이다. 그래도 백성들 굶어 죽지는 말라고 참나무와 벼가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도토리로 배고픔을 연명하면서 도토리가 귀한 식재료가 되어  도토리가 도톨밤으로 승격한 것이 아닐까 싶다.


팍! 팍! 퍽!

소리 나는 쪽으로 돌아보면 어김없이 참나무를 발로 차거나 나무토막을 나무 위로 냅다 날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심지어 이단옆차기로 몸을 날리며 나무 둥치를 가격하는 사람도 많이 보았다. 도토리를 줍는 것으로 모자라 나무를 때리면서까지  도토리를 먹어야 할까? 먹을 것이 널린 세상인데 도토리라도 동물에게 양보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도토리까지 싹쓸이해서 먹어야겠다고 나서니 숲에 도토리가 아주 귀하다. 숲 속의 참나무들은 거의 다 맞아서 상처투성들이다. 어린나무 일 때 상처를 입어 휘어진 나무들이 대부분이고 상처 있는 곳에 영양분이 제대로 흐르지 못해  배가 불룩한 나무 등 모양새가 갖가지다. 참나무에 상처가 나면 빗물이 들어가 썩거나 곤충들이 침입해서 살기 때문에 나무들이 건강하게 자라기 어렵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해마다 열매를 맺는 참나무들이 대견하고 고맙다.


 "이렇게 때리면 나무가 병들어요. 나무도 생명체인데 맞으면 너무 고통스럽지 않을까요? 화를 누르며 애써 부드럽게 말하면 십중팔구 '웬 참견이냐'며 불쾌해한다. 도토리를 열심히  줍는 할머니들에게 '다람쥐들도 좀 먹고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라며 말을 붙여보면 도토리가 '1킬로에 3만 원'이라며 '국산 도토리 먹기 쉽지 않다''내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이 다 주워가는데 뭐'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가을 숲에 도토리 줍는 노인들이 너무 많아 '요즘 노인들이 너무 할 일이 없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애들아, 도토리를 사람들이 다 주워가는데 다람쥐나 청설모가 먹을 수 있는 무슨 방법이 없을까?"

아이들과 머리를 굴리며 아이디어를 내다가  청설모가 겨우내 먹을 수 있는 도토리 창고를 만들기로 했다. 

나무 밑에 둘러앉아 간식을 먹고 있으면 청설모가 나무에서 쪼르르 내려와 까만 눈망울을 반짝이며 입을 쫑긋거리며  우리가 먹는 걸 쳐다보곤 한다. 아이들이 빵이나 옥수수, 고구마 등을 던져주면 쏟쌀 같이 물고 나무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던져준 고구마를 갉아먹다 까만 눈망울로 우리들 한번 쳐다보고 또 먹고 하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아이들이 반해버렸다. 청설모가 내려오면 아이들이 우르르 다가가서 먹이도 던져 주면서 아이들의 친구가 되었다. 수완이는 청설모에게 도시락을 만들어주겠다고 종이 접기로 그릇을 만들어왔다.


"선생님, 우리 팀을 나누어서 도토리를 주워요!

"그럼 우리 시골쥐팀과 서울쥐팀으로 나눌까?" "좋아요."

"그럼 막대기를 주워서 봇짐 주머니를 만들어보자."

막대기를 주워와 손수건으로 봇짐 주머니를 만들고 아이들은 봇짐을 둘러메고 시골쥐와 서울 쥐가 되었다.

10명의 아이들이 흩어져서 도토리를 줍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꽤 많은 양의 도토리가 모인다.

아이들은 도토리가 가득 든 봇짐 주머니를 어깨에 메고 '떼굴떼굴 도토리가 어디서 왔나'~노래를 부르며 돌아왔다.


아이들은 주어온 도토리로 나뭇잎 그릇을 만들고 도토리를 담아 도시락을 만들었다.

참나무 주변에 낑낑대며 땅을 파고 도시락을 잘 묻어주었다. 

"청설모야, 겨울에 배고플 때 잘 찾아 먹으렴!" 

착한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땅을 파고 기원의 말을 담아 도토리를 묻었다.

낙엽으로 잘 덮어 위장하는 일도 잊지 앉았다.

"다람쥐가 겨울잠 자고 일어나서 몹시 배고프잖아? 

그럴 때 너희들이 숨겨준 도토리를 찾아먹으며 많이 고마워할 거야."

못 찾아 먹은 녀석들은 내년 봄에 참나무 새싹이 되어 올라오겠지? 

나는 다람쥐를 대신해서 아이들의 따듯한 마음을 읽어주었다.

아이들은 내년에 이 장소에 다시 와서 잘 먹었는지 꼭 확인하고 싶다며  

뿌듯한 마음을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도토리 창고의 도토리들아,

다람쥐에게 잘 먹혀도 좋고 참나무 새싹으로 자라도 좋구나!

너희들이 있어서 이 숲이 풍요롭구나.

나는 도토리 창고를 손으로 잘 다독여주고 아이들이 꽂아 놓은 깃발도 바로 세워놓았다.

해가 기울고 숲에는 다시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툭, 투둑, 툭 ---

가을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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