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학교 이야기
전단지가 날아왔다. 동네에 새로 국숫집이 생겼단다. '감동 국수'
남편과 나는 점심이나 간단하게 때울 요량으로 슬리퍼를 끌고 집에서 입던 차림새로 대충 나섰다.
그 국숫집은 내가 가끔 가던 한정식 집이었는데 어느새 국숫집으로 변해 있었다.
두 면이 통창으로 되어 있고 밖에는 남천이 빨간 열매를 달고 울타리로 서 있는 제법 정감 있는 밥집이었다.
그 밥집이 없어진 것을 아쉬워하며 들어서니 여주인은 손님과 마주 앉아 멸치를 손질하고 있었다.
국수 한 그루에 5천 원인데 볶은 호박채랑 계란지단이 정성스럽게 올려져 있다.
게다가 떡갈비 한 조각까지 나오니 그야말로 '감동 국수'였다.
남편과 국수 그릇을 비우고 일어서려는 찰나 국숫집 주인이 말을 붙였다.
'혹시 000 선생님 아니세요?'
순간 얼굴을 마주하니 안면 있는 얼굴인데 누구인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정연이 엄마예요.'
그제야 생각이 났다. 두 부부가 학원을 운영하느라 숲학교에 2년을 보내면서도 첫날 한 번 만나고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열심히 사느라고 약간 피곤해 보이기는 하지만 선하고 고운 얼굴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났던 정연이는 벌써 고3이 되어 있었다. 친구들에게 배려 잘하는 다감한 아이, 선생님 일도 알아서 척척 도와주는 큰 딸 같은 아이, 다시 생각해보니 일찍 철이 든 아이였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연이가 아빠 아플 때 이야기를 해서 숲길을 걷다가 꼭 안아주었다는 이야기를 무심결에 했다.
갑자기 정연 엄마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하며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다가 정연 아빠의 죽음을 직감했다.
정연이가 그렇게 걱정하던 아빠가 암이 재발되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정연 엄마를 안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
멸치를 손질하던 손님도 우리 남편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가끔 와서 국수도 먹고 정연 엄마랑 이야기도 나눠야지 생각했지만 그 국숫집에 다시 가지 못했다.
어쩐지 마음이 아프고 불편해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들과 숲길을 걷다 보면 서로 선생님 옆에서 종알거리고 싶어서 4-5명의 아이들이 따라붙는다. 그리고는 한꺼번에 이야기를 시작한다. 들을 귀는 하나인데 네다섯 명이 서로 말하려 드니 난감한 일이었다. 그래서 '오늘 딸', '오늘 아들'을 정해서 한 아이씩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며 숲길을 걸었다.
처음에는 그저 '수다 떨 일들이 많구나' 생각했는데 아이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름대로 다 사연이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정연이는 다섯 살 때 처음 아버지가 입원을 하셨는데 한 달 동안 이모네 집에 맡겨졌다고 한다. 그때 얼마나 막막하고 불안했지는 그 암울한 마음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래',' 그랫구나', 하다가 덤덤한 말투로 다섯 살을 이야기하는 아이가 너무나 안쓰러워 갑자기 가던 길을 멈추고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아이는 그제야 눈물을 흘렸다. 품에 든 아이는 작고 가녀린 한 마리 새 같았다.
아이들과 숲길을 걸으면서 아이들도 마음에 쌓아둔 이야기가 많구나 알게 되었다. 어떤 아이는 어릴 적에 무릎을 다쳐 피가 많이 났는데 그때 놀라고 아픈 마음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얼마나 많이 아팠어!. 세상에!' 등이라도 토닥여주면 이 한마디로 아이는 마음을 풀고 편안해졌다.
'엄마하고는 이런 이야기해봤어?' 물어보면... '아니'라고 한다.
엄마는 '숙제 다했니?' '학원 가라' 이런 말만 한단다.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숲이 변해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자연스레 풀물이 들어가던 아이들은 일주일에 3번 가는 영어 학원이 유행하면서 한 달에 한번 월례행사로 숲에 오게 되었다. 토요일에도 숲을 오르내리며 2시간 실컷 산에서 뛰어놀다가 또 태권도 학원을 가야 한 데서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농담하는 척하면서 '엄마는 어릴 때 그렇게 해보았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그렇게 못한단다.
토요일에 스케줄이 2개는 기본이고 3개까지 있는 아이들도 많았다. 일주일에 9개까지 하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학원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마음을 챙길 여유가 없고 하루를 가방 들고 이 학원 저 학원 전전한다.. 좀 뒹굴뒹굴하는 시간이 있어야 머릿 속도 정리가 되련만 그저 주워 담기에 바쁘기만 하다.
엄마들하고 이야기해보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상을 따라갈 수가 없다고 하소연 한다. 조금 늦게 영어학원을 보내면 따라갈 수가 없다고, 나도 어쩔 수 없노라 말한다.
숲에만 오면 아이들이 망아지처럼 뛰어논다. 놀이를 할 때는 아이들 얼굴에서 기가 뿜어져 나온다. 아이들 얼굴이 미소로 빛난다. 머리는 땀에 젖고 얼굴에 땀방울이 가득하다. 그 순간 아이는 살아있는 존재의 기쁨을 맡본다. 마칠 시간이 되면' 한 번만 더!'를 외치며 놀이를 하게 해달라고 두 손을 비빈다. 놀이에 목마른 아이들... 어떻게해서든지 더 놀게 해주고 싶지만 다음 스케줄 있는 아이 때문에 때로는 그것조차 어렵다.
하루에 한 번, 꼭 시간을 내서 아이들 마음을 잘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 그랬구나, 네가 많이 속상했구나...
아이들은 작은 새 같은 존재이다. 아직 어리고 상처 받기 쉬운 존재이다.
마음을 잘 들어주고 받아주고 따듯하게 품어주어야 한다.
어두운 에너지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새로운 에너지가 들어온다.
아이들이 날개짓을 하며 새가 되어 산을 내려간다.
자연의 힘으로 또 일주일을 잘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