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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 Dec 08. 2021

혼자 자란 아이

숲학교 이야기

효섭(가명)이는 숲에 오면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쉼없이 풀을  잡아 뜯었다. 

긴장하거나 마음이 불편한 아이들은 풀이나 나뭇잎을 잡아 뜯는 행동을 하면서 긴장을 해소하려고 한다. 

한 모둠에 10명이 모이면 꼭 한 두 명은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땡그란 눈망울과 꾹 다문 얇은 입술, 또래보다 키가 큰편인 효섭이는 한눈에 봐도 외로워 보이는 아이였다.

효섭이가 따로 떨어져 있으면 아이들도 마음이 불편한지 함께 놀자고 말을 던져보지만 

효섭이는 묵묵부답이었다.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있으면 나도 마음이 답답하지만 억지로 끌려고 하면 되레 일이 어려워진다. 

나는 효섭이랑 같이 풀을  뜯는 척하며 효섭이의 마음을 읽어주려 했다.

"효섭아, 아이들이랑 함께 있는 게 많이 불편해." 끄덕끄덕.

"너 마음이 편해지면 같이 놀까?" 끄덕끄덕. "그러면 선생님이 기다릴게."

그래도 간식시간이 되면 아이들과 같이 돗자리에는 함께 앉아있었다.


각자 숲학교에 신청하여 오니 처음에는 모두 낯선 얼굴들이지만 

아이들은 놀이를 하며 간식을 나누며 금방 친해진다.

한두달만 지나도 결석한 사람이 있으면 '오늘 00이 안 왔어요?"라며 안부를 묻는다.

한 학기가 끝날 무렵이면 아이들은 한덩어리가 되어 잘도 놀았다. 

놀이의 위력이다.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먹는 일은 아주 중하다.

아이들은 산 초입을 오르면서부터 "너 오늘 뭐 싸왔어?"하며 간식 메뉴를 묻기에 바쁘다.

여름에는 뜨거운 옥수수나 감자를 쪄서 등에 메고 오느라 땀을 뻘뻘 흘리는 녀석들이 많다.

하교 후 시간에 쫓긴 엄마들이 솥에서 바로 꺼낸 옥수수나 감자를 싸보내기 때문이다. 

안쓰럽기도 해서 땀을 닦아주며 혼자 피식 웃을 때도 있다.


떡을 가져온 아이에게는 떡 장사를, 과일을 가져온 아이들에게는 과일 장사를 하게 한다.

한 아이가 "떡 사세요!"를 외치면 고사리 같은 손을 뻗치며  "나도! 나도!" 서로 달라고 아우성이다.

떡장사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눠주기에 바쁘다. 주는 기쁨도 맛보며 내가 주인공이 된 듯한 

뿌듯함을 느끼는 것이다.


효섭이 엄마랑 얘기를 나누어 보았다.

담배 냄새가 희미하게 나는 효섭 엄마는 "외동에다 제가 혼자 키워서 그래요."라고 선선히 인정했다.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 아이는  줄곧 혼자 지냈다고 한다.

보통 아이의 부정적인 면을 의논하면 엄마들은 그렇지 않다고 '당신이 무얼 잘못 본거'라고 강하게 도리질한다. 나의 단점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나도 이야기 꺼내기 쉽지 않지만 아이가 겪는 고통을 옆에서 보고있자니 안타까워서 고심하다가 얘기를 꺼내게 된다. 


나는 효섭이 간식을 아이들과 나누어먹기 좋게 준비해 달라고 부탁하고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거라고 숲에 꾸준히 보내시라고 말했다. 순하고 착한 아이라 배려심있는 친구 한명을 묶어주었더니 조금씩 아이들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효섭이는 숲학교 2년을 마칠 무렵, 망아지처럼 잘 뛰어놀고 하하! 잘 웃는 아이가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 외로움이 묻어나던 그 얼굴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친구가 고팠던 그 마음이 채워지니  아이가 가지고 있던 밝음과 명랑함이 드러났다.  밝게 뛰어노는 아이를 보면서 내가 치유받는 느낌이 들었다. 숲이 아이들을 키운다.



마을공동체가 파괴되면서  점점 혼자 자라는 아이들이 많아진다. 엄마들도 아이들 키우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엄마도 엄마들을 사귀기도 어려우니 아이도 아이들을 만나기 어렵다. 예전에는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몰려나와 놀았지만 이제는 놀이터도 설렁하다. 아이들을 만나려면 굳이 학원에 와서 돈을 쓰면서 만나야 한다.


어쨌든 숲학교가 매개가 되어 아이들이 대학 갈 때까지 만나는 팀도 있다. 내가 아이들 데리고 산에 올라가면 엄마들은 커피와 다과를 나누며 수다 꽃을 피운다. 나도 그 자리에 앉아  함께 수다를 떨고 싶은 유혹을 느낄 만큼 화기애애 분위기가 좋다. 숲학교가 없는 날이며 누구네 집에 모여 엄마들은 부침개 파티를 열고 아이들은 모여서 인라인을 타던지 농구를 한다고 한다.


내가 그 자리에 없는 게 미안했던지 엄마들은 친정에서 올라온 고구마나 귤 상자를 들고 가끔 우리 집을 방문한다. 음식을  나누고 아이들을 함께 키우니 이게 마을 공동체가 아닐까? 숲학교가 이웃들을 연결하는 작은 끈들이 되어주니 보람있는 일이다. 여름 땡볕에 무거운 가방을 메고 산에 오르던 그 수고로움은 사라지고 따뜻하고 끈끈했던 다정한 정들만 생각난다.


아이들을 함께 키워야 한다. 부모가 아무리 좋은 음식과 좋은 교육으로 아이를 키워도 친구들과 뛰어노는 기쁨을 대신할 수 없다. 친구들과 부딪히고 갈등을 겪으면서 그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은  많은 것을 스스로 배운다.  옆집 아이 아랫집 아이 모아서 작은 공동체를 만들면 좋겠다. 내가 먼저 커피도 타고 부침개를 부치면  아이들도 함께 공을 차며 뛰어놀겠지. 

마을이... 아이들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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