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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자 Jun 15. 2023

잃어버린 행복

능력주의와 자기 연민.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원하지만, 행복의 왕도를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저녁을 배부르게 먹기만 해도 행복한 사람도 있지만, 야식까지 먹어도 행복은커녕 도리어 우울함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른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도 제각각 다르다. 천 원에 일희일비하는 사람과 천만 원도 쉽게 쓰는 사람이 같은 사회에서 함께 살아간다. 이렇게 다른 배경의 사람들을 본인의 능력에 따라 평가하자는 것이 능력주의다. 능력주의는 언뜻 보면 행복을 위해 필요한 기본 원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능력주의를 강조하면서 생기는 끊임없는 자기 연민은 많은 현대인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능력주의는 현대 사회에서 공정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방식이다. 취업이나 대학 입시 과정에서 적용되는 블라인드 제도가 바로 그 예시다. 혈연, 지연, 인종, 성별처럼 지극히 사적인 요소는 가리고, 오직 능력에 따라 평가한다. 개인적인 특성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보다는 훨씬 정당한 방법이다. 다만 능력과 노력은 동의어가 아니기 때문에, 능력이 기준이 된다고 해서 나를 구성하는 다른 요소들이 완전히 영향력을 잃는 것은 아니다. 노력은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필수적이지만, 유일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비싼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 한 가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시는 좋은 부모님,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능 등 배경과 운도 필요하다.



   능력주의 사회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기 연민에 빠지기 쉽다. 어떤 이들은 능력주의의 환상에 빠져 환경의 영향력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노력을 과대평가한다. 다른 이들은 능력주의의 함정을 깨닫고 배경과 운에 집착하게 된다. 전자의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보다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스스로를 안타깝게 여긴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적 약자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를 두고 능력도 안 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준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후자의 사람들은 남들보다 부족한 근성과 재능, 집안의 재력과 주변 환경 등을 탓하면서 자신과 자신의 배경을 불쌍하게 여기고, 그들과 관련된 모든 것을 원망한다.



   이 자신을 향한 연민이 무조건 틀렸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나를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생기는 자기 연민은 치명적인 문제점을 동반할 수밖에는 없다. 첫 번째로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 비하를 멈추기 힘들다.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운이 없고 불행하다고 여기거나, 나는 남들보다 못난 환경에서 형편없는 모습으로 태어난 사람이라고 자신을 깎아내린다. 두 번째로,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를 잊어버리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천부적으로 능력을 타고난 것이라고 믿고, 타인의 노력을 경시한다. 이 과정에서 오직 나만 불행하며 다른 이들은 고통 없이 잘 산다는 착각에 빠진다. 이렇게 되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어 사회 갈등이 심해질 수 있다.



   과도한 능력주의로부터 초래된 자기 연민은 우리를 불행의 늪으로 끌어들인다.



 개인의 노력과 능력을 인정해주는 사회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나의 행복을 놓쳐서는 안 된다.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과 나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을 멈추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줄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자신만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상황도 이해할 수 있을 때 자기 연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모든 사람을 행복이란 목적지로 데려다주는 분명한 길은 없다. 그러나 자기혐오에서 벗어나 자존감을 높이고, 자기 연민은 타인에 대한 연민으로 변화시켜야 능력주의 사회 속에서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기 위해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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