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상자 사이에서도, 문장은 내게로 온다.
(1편은 총평 중심, 2편은 디테일한 책의 내용 중심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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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책과 대화하는 것이다. 책은 읽는 사람의 소망과 수준에 맞게 말을 걸어준다.
<청춘의 독서(특별증보판)>, 유시민 - 밀리의 서재
작가는 말했다. 같은 책이라도 청춘의 시기에 읽은 감상과 지금의 감상이 다르다고. 읽었던 책을 다시 한번 읽을 때 전과 다른 깊이의 통찰을 얻는 법이다. 나 또한 이 책을 세월이 조금 더 흐른 뒤 다시 읽는다면, 무얼 더 보고 느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읽은 기간: 25.6.3-6.9
추천 대상: 인간 사회의 지식과 교양에 갈망이 있는 사람
추천 정도 ★★★★☆
난이도 ★★★★☆
지적 자극도 ★★★★★
감정 몰입도 ★☆☆☆☆
재독 의향 ★★★☆☆
때는 25년 6월. 한창 웹소설에 빠져있던 때였다. 웹소설 작가라는 꿈을 키우며, 몇 개월 간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읽었다. 한 손에는 택배 박스를 들고 또 다른 손에는 핸드폰을 든 채 하루종일 걸어다녔다. 내 취향에 맞는 작품을 찾으면, 작품을 읽는 재미에 근무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을 하며 웹소설을 읽는 이 시간이 느리게 갔으면 하는 바램까지 들 정도였다.
그것도 몇 차례, 여러 작품을 완결 혹은 최신 화까지 읽은 후였다. 재미와 대리만족을 목표로 하는 웹소설에 문득 회의를 느꼈다. 분명 재미있고 자극적인데 나에게 남는 것이 없는 느낌이었다. 매일이 같은 택배기사가 주업이라 그런지, 나에게는 강한 '성장 강박'이 있다. 20대 후반. 내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회사에 취직해 직장 생활을 시작해 자리잡을 시기이다. 그들과 다른 길을 달리고 있다는 생각에 도태되면 안된다는 강박이었다.
그러다 떠올린 것은 '밀리의 서재'라는 전자책 어플이었다. 올초에 1년권 구독을 해놓고 한동안 잊고 살았다. 무언가에 홀린 것 같았다. 아마 배움과 성장에 대한 갈망이었을까? 밀리의 서재 앱을 켜고, 밀리랭킹 페이지에 들어갔다. 1위에 보이는 건 바로 이 책이었다. 유시민 작가님의 '청춘의 독서'.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유시민 작가님이었다. 과거 훈련소에서 유시민 작가님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머리를 스쳤다. 게다가 '청춘의 독서'라니.. 아직 청춘의 나이에 독서에도 관심이 많은 나로선,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제목이었다.
제목을 잘 지은 책이다. '청춘의 독서'라는 제목처럼, 유시민 작가님이 젊은 시절 읽었던 책들에 대해 대략적인 책내용과 함께 자신의 생각을 나열한 책이다. 책끈(?)이 짧은 나조차도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굵직한 15편의 작품이 소개된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죄와 벌』/ 리영희, 『전환시대의 논리』/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 토머스 맬서스, 『인구론』/ 알렉산드르 푸시킨, 『대위의 딸』/ 맹자, 『맹자』/ 최인훈, 『광장』/ 사마천, 『사기』/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찰스 다윈, 『종의 기원』/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 하인리히 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E. H. 카, 『역사란 무엇인가』/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위 책들의 줄거리는 이어지는 2편에 짧게 소개하며, 내 생각도 살짝 가미할 예정이다. 유시민 작가님의 방식을 차용해본다..ㅎㅎ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리영희 선생은 말한다. 진실, 진리, 끝없는 성찰, 그리고 인식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신념과 지조. 진리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용기. 지식인은 이런 것들과 더불어 산다. 선생의 글을 다시 읽으니 선생이 내게 묻는다. 너는 지식인이냐. 너는 무엇으로 사느냐. 너는 권력과 자본의 유혹 앞에서 얼마나 떳떳한 사람이었느냐.
<청춘의 독서(특별증보판)>, 유시민 - 밀리의 서재
난 비록 사회적으로 지식인과 거리가 멀다는 인식을 지닌 택배기사다. 좋은 학벌을 가지지도, 오래 배우지도, 돈을 많이 가지지도, 권력을 지니지도 않았다. 특별한 신념과 신조가 있는 편도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지식인이 될 수 없는가라는 질문에는 당당히 부정의 대답을 할 것이다. 높은 학위가 있어야만, 뛰어난 연구 논문 실적이 있어야만 지식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배움에 깨어있는지의 여부가 중요하다.
더 나아가, 리영희 선생의 말씀처럼 '진실, 진리, 끝없는 성찰, 그리고 인식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신념과 지조. 진리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용기.'를 지니려고 한다면 누구나 지식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문장은 배움과 진리를 향한 나의 갈망을 자극하는 동시에 격려를 해주는 듯 했다. 험한 파도와 악천후 속에서 흐린 하늘을 뚫고 빛나는 등대의 한줄기 빛처럼 참 든든한 문장이 아닐 수 없었다.
20세기 세계사는 소수의 ‘비범한 사람들’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수없이 많은 소냐와 두냐들이 좋은 세상을 만든 것이다. 만약 도스토옙스키가 20세기를 목격했다면 틀림없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선한 목적은 선한 방법으로만 이룰 수 있다.”
<청춘의 독서(특별증보판)>, 유시민 - 밀리의 서재
스탈린과 히틀러을 떠올리면 독재자와 학살이라는 상당히 거북한 키워드들이 떠오른다. 위 문장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죄와 벌』파트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문장이다. 아직 분별력이 온전하지 못한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체주의'적 사상에 순간 혹하고 말았다. 만인을 위한다는 사회주의 혁명의 스탈린, 더 이상 전쟁이 없는 위대한 독일제국이라는 이상을 지닌 히틀러. '비범한 사람들'에 속한 그들의 '선한 목적'을 위해 합리화된 그들의 폭력은 희대의 끔찍한 대학살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그 결과를 아는 나로서도 순간 혹했다는 것이 스스로 수치스러웠다. 한편으론 '선한 목적은 선한 방법으로만 이룰 수 있다'는 작가의 말에 나도 모르게 안도했다. 그럼에도 과연 선한 방법만으로 그 선한 목적을 온전히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현실적인 의문은 지울 수 없었다. 세상에는 선한 인간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아직 부족한 나에게는 참 어려운 내용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선한지 악한지를 판단할 분별력은 반드시 지녀야겠다는 결심이 선 문장이었다.
내가 남을 사랑해도 남이 나를 가까이하지 않으면 인자한 마음(仁)이 넉넉했는지 되돌아보고, 내가 남을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으면 지식과 지혜(智)가 부족하지 않았는지 반성해볼 것이며, 예로 사람을 대해도 나에게 답례를 하지 않으면 공경하는 마음(敬)이 충분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어떤 일을 하고도 성과를 얻지 못하면 자기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자신이 바르다면 온 천하 사람이 다 내게로 귀의할 것이다.「이루 상」 4
<청춘의 독서(특별증보판)>, 유시민 - 밀리의 서재
택배일을 시작한 후로 인간관계가 많이 좁아졌다. '그 나이에 왜 그런 일 해?', '대학 나와서 왜?' 같은 식의 반응에 질려서 그랬는지, 그냥 내 직업이 부끄러웠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좁아져가는 인간관계 속에서 나 자신의 사회성에 대해 불신이 커져만 갔다. 내가 하는 말이 눈치 없는 말이 아닌지 의문이 들었고, 타인의 장난을 자연스럽게 받아치지 못할 때마다 스스로를 타박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더욱 스스로를 감추고 무표정을 짓는 시간을 늘었다. 남에게 인자한 마음을 쓴다는 생각은 못할 정도로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이 문장은 나를 반성의 길로 이끌었고, 다시금 미소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붇돋아 주었다.
한편, '자기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으라'는 후반부 문장은 정말 내 가슴 깊숙이 찔러 들어왔다. 비록 지금은 택배기사지만, 꾸준히 책 읽고 글을 쓰며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살았다. 이렇다 할 결실이 없던 걸 '탓'으로 무마해왔다. 퇴근하고 피곤해서 시간이 없다는 '탓', 평생 이과로 살아와서 재능이 없다는 '탓', 심지어는 독서를 경시하고 공부만 강요해 키웠다며 부모님 '탓'까지 해버렸다. 이 문장을 통해 참 비겁하고 한심했던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맹자'의 말처럼, 일단 나부터 바르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 내 모든 선택과 결과는 내 탓이고 내 책임이다.
밀리의 서재를 오랜만에 접속하고 서점 베스트 1위라는 걸 보고 우연히 읽게 된 이 책. ‘청춘의 독서’는 내게 지적 갈망을 해소시켜주고 사고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시켜주었다. 어렵고 추상적인 이야기에 때론 몇 번이나 다시 읽어보기도 하고, 졸기도 했다. 이 책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건 당연한 것이고, 다시 읽어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히 얻은 한 가지는 삶의 방향성이다. 읽고 쓰는 것. 그것보다 더 가치있는 건 내 삶에 없을 것 같다.
이 책 덕분에 일과 동시에 독서가 가능한 택배일이 감사해졌다. 참 감사하고 또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물론 너무 어려워서 인생책까지는 조금 더 고심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