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치혜 Mar 25. 2024

歌痕15. '백의민족'에서 '패션 빤쓰'로

   살면서 팬티가 빨리 해지기를 바란 적은 처음이었다. 빨리 해지게끔 하는 묘책도 없으니 매일 매일 갈아입으며 상태를 확인할밖에. 마침내 그 바람이 이루어져 지난달에 새 팬티를 샀다. 허리 밴드에 CK라는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혀있는 그 브랜드 팬티를. 그다음 주에 전혀 뜻밖의 선물을 받았는데 그것 역시 CK가 새겨진 팬티 세 장짜리 세트였다. 허허, 말년에 관운은 안 틔어도 내의운은 열리려는 모양이다 라며 웃었다.  

   

   고급이거나 혹은 알려진 브랜드의 팬티를 사 입어야겠다는 생각은 우연히 들었다. 이선균 배우가 ‘자살을 당한’ 작년 연말, 굳이 추모까지는 아니어도 그가 출연했던 몇 작품을 다시 보았다. 그중에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에서 송새벽 배우의 대사가 귀에 꽂혔다. 

   “나는 아무리 돈이 없어도 빤쓰는 비싼 거 입을거야. 우리 나이가 언제 무슨 일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인데, 내가 갑자기 죽거나 병원에 누워있게 되면 내 옷이 벗겨질 거 아냐. 근데 그때 싸구려 너덜너덜한 빤쓰를 입고 있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추레하고 비참하겠어.”

   대충 이런 대사였는데 그 말에 정말 공감했다. 맞아. 가뜩이나 늙고 볼품없는 몸이 마지막 걸친 것마저 늙고 볼품없다면 그것은 나를 수습하는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암. 이제부터는 한 장에 몇만 원, 몇십만 원씩 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라도 제법 괜찮은 빤쓰를 입자. 나도 최소한의 품위있는 최후를 맞을 자격은 있으니. 

    

   그렇다고 이 결심 전에는 “골라~골라~ 두 장에 천 원~”하는 식의 좌판에서 파는 팬티를 입고 다녔다는 말은 아니다, 물론. 

   내 나이대의 남자들이 대부분 그랬겠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패션 리더이자 전속 코디네이터였던 엄마의 초이스에 따라, 전통의 강자 비와이씨나 트라이, 남자들만 입어야 한다는 개그가 붙곤 하던 쌍방울 등에서 나온, 눈보다 더 희어 눈마저 부신, 순면 백퍼센트의 ‘전통적’이고 ‘단정’하며 ‘벗어놓았을 때 주인을 가리기 어려운’ 삼각팬티를 주로 입었던 순수 백의민족의 적자였다. (지금도 궁금한 것은, 삼각팬티 앞부분의 터진 부분은 왜 존재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단 한 번도 그 ‘구멍’을 이용한 바가 없으며 내 주위의 인사들에게서도 그 구멍을 이용했다는 간증을 들은 바 없다. 그렇게 천편일률적으로 만든 이유를 아시는 분은 댓글 주시기 바란다.) 

   우리들은 그렇게 똑같은 빤쓰를 입고 자라 똑같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똑같은 검은색의 교복과 얼룩덜룩한 교련복을 입고 멀리서 보면 똑같은 한덩어리로 사춘기를 보냈다. 어깨너머로 훔쳐보던 여성잡지의 광고 속 여자 속옷은 우리들의 그것과 달리 얼마나 매끈하고 다양하였던가. 어린 사내들의 마음은 속절없이 뛰놀았다. 어린 사내들은 늦은 밤에만 송출되던 TV광고를 차마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채 왠지 부끄러웠다. 그러나 그 CM송은 체육대회 때면 익살맞은 응원단장의 선창에 따라 고래고래 운동장에 울려 퍼졌으며, 지금도 늙어버린 사내들의 뇌리 어딘가에, 마음속 어딘가에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나만이 알고 있는 사랑의 비너스, 아름다운 비너스, 비너스 브라자, 비너스 거들, 비너스 올인원, 아름다운 당신의 비너스 화운데이션.”


   1980년대 말 나온 트라이 팬티 - 아! 지금 생각해도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벽을 내리치던 이덕화 배우의 팬티 광고는 닭살이 돋을 지경이다. 아무튼 센세이셔널하기는 했다 – 를 시작으로 색깔이 있고 ‘구멍’이 없는 팬티들이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확실히 보여 드리겠습니다’라는 도발적인 카피를 앞세운 개그맨 주병진 씨의 “제임스 딘”과 “보디가드”의 유행은 대단했다. 그 무렵부터 나도 그런 브랜드를 주로 입었는데 어느 때인가부터 팬티 가격이 제법 비싸게 느껴졌다. 

   ‘이제는’ 내가 어디 가서 팬티 보여줄 일도 없잖아?

   실용을 중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형 마트가 생활의 중심이 된 이후에는 패키지로 묶인 브랜드 팬티를 사서 입었다. 타이트하고 편하고 ‘질겼다’. 

    

   ‘빤쓰의 고급화’를 결심하고 나서 속옷장을 보니 팬티가 서른 장 가까이 있었다. 그중 낡은 것 –새 고급 빤쓰에 대한 강렬한 욕망에 기대어 ‘대단히 가혹한 기준’을 적용했다. 미안하다, ‘낡은 것’들이여 – 들을 추려내고도 스무 장이 넘었다. 

   이것들이 없어져야 새 빤쓰를 입을 텐데. 마음은 급해졌고, 국산 빤쓰는 너무나도 질 좋고 ‘질겼다’. 속옷을 빨리 해지게 하는 여러 방법을 떠올려 봤지만 그런 방법은 찾지 못했다. 방귀를 많이 뀌면 속옷이 닳는다는 얘기도 있었으나 방귀가 잦으면 똥이 나오는 법. 패션욕에 눈멀어 리스크 테이킹을 할 수는 없었다.      

   ‘유행이 지났다고 말해볼까?’

   “늙은 아저씨께서 어디서 개수작이셔~” 돌아올 답은 뻔했다.     


   스무나믄 장중에 그중에서도 ‘특별히 연약해 보이는’ 몇 장을 골랐다. 다른 멀쩡한 것들이 매일 아침 “Pick me~ pick me~ pick me up~”을 외쳐댔지만 눈 감고 귀 닫고 골라낸 몇 장만으로 선발 로테이션을 돌렸다. 그리고 드디어 꿈은 이루어졌다!!!     

   처음 빨래를 돌리고 난 후 아내가 물었다. 어인 CK이시냐고. 담담히 대답했다. 나의 품위있는 최후를 위한 숭고한 결단이었노라고.     


   CK를 입으며 생각했다. 내가 신경 써야 할 일이 어디 속옷뿐이겠는가. 살든 죽든 나의 평판 – 명예나 유명세가 아닌 – 은 줄곧 내가 만드는 것이다. 말, 행동거지, 하고 다니는 일, 입성들은 물론 나의 생각마저 나를 규정짓는다. 가끔 쓰기를 즐기니 컴퓨터나 인터넷상에 남아있는 나의 흔적들도 중요한 작용을 할 것이다. 

   고급 새 빤쓰를 챙겨입는 마음으로 나를 좀 더 정갈하게 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사실은, 새 빤쓰가 아닌 어떤 빤쓰를 입은 날이라도 늘 정갈할 수 있기를. 최후의 날에 나를 수습해 주시는 분들이 나의 마지막 입성을 보지 않고 나의 얼굴에서 평온과 정갈함을 발견할 수 있기를.  

   

   여러 해 전 교회의 한 중학생 제자(감히?) 녀석이 또래의 유행에 물들어 약간 껄렁거리며 다닌 적이 있었다.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한마디 조언을 해주었다.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모든 행적이 어딘가에 남아있단다. 네가 나중에 유명해졌을 때 지금 네가 갖고 있는 모습 중 조금 착해보이지 않는 것 같은 모습이 발굴되면 너는 그냥 한 방에 훅 가는 거야. 뉴스에 가끔 나오지? 지금부터 관리 잘 해야 해. 녀석은 안 껄렁해졌고, 지금은 아이돌을 팬으로 잘 섬기고 있다.   

  

   뉴스 기사에 실리는 정치인이나 국회의원 후보자, 공직 후보자들의 이력과 행적, 설화, 필화를 보면서 생각한다. 팬티를 갈아입을 때, 자신에게 마지막 남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시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일 텐데...


https://youtu.be/Tk7b3ZPgsi0?si=_B9wUJsyn0IvACak

매거진의 이전글 歌痕 14. 짬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