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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May 31. 2024

歌痕16. 천왕봉을 오르다.

젊은 연인들(서울대트리오. 1978)

   유붕 원지지리발정(有朋, 遠至智異發程). 벗이 있으매 멀리 지리산까지 길을 떠나다.(행여나 ‘원, 지지리 발정’으로 읽혀 본연의 깊고 그윽한 뜻이 오독되지 않기를 바란다.)


   무릇 모든 위대함에는 드라마틱한 서사가 있는 법이다. 싯다르타께서 병사를 고뇌함으로써 깨달음을 얻었고, 예수께서는 황야에서 사탄의 계교를 물리치셨다. 동굴을 뛰쳐나간 호랑이를 반면교사 삼지 않았다면 어찌 단군왕검이 있었으며, 엄수에서 길이 막힌 주몽 앞에 물고기와 자라 떼가 다리를 놓아주지 않았다면 어찌 고구려가 있었으며, 혁거세의 알이 부화하지 않았던들 어찌 오늘의 ‘박대기자’가 있을 것이며, 유신이 애마의 목을 치지 않았던들 삼국통일의 역사가 어찌 쓰였을 것이며, 다스베이더의 ‘내가 니 애비다(I’m your father)’가 없었다면 어찌 스타워즈의 대 시리즈가 완성되었으랴.


   떼(모 대학 모 학과의 동문 소모임. monter, 오르다 즉 한 달에 한 번 산행으로 의기투합하는 모임이다)의 다섯 벗이 1박 2일 같지 않은 1박 2일의 여정으로 지리산 천왕봉을 올랐다. 산길만 장장 15킬로미터. 그들 중 누군가에게는 여덟 시간, 누군가들에게는 아홉 시간 남짓, 누군가에게는 열한 시간.


   천왕봉은. 이만치 다 왔는데, 저만치 더 있는 곳. 피안처럼.


  산행 코스부터 숙소 예약의 완벽한 준비는 물론, 마치 딴 집 살림이라도 차린 것 마냥 온갖 ‘멕일 것’들과 ‘멕일 것을 만들 것’들로 배낭을 가득 채운 정석대장은 심란했으리라. 초행인 일행들을 무사히 완등의 감격으로 인도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귀경할 수 있게 이끄는 것은 아무나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견장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어야 자격이 주어진다.

   동티가 난 것도 아닐 텐데 DJ형의 구토는 어째서였을까. 건강함과 꾸준함의 상징과도 같은 그에게는 너무나도 어색한 상황이었다. 몽떼의 장형으로서, 평소 그의 책임감을 가늠해 볼 때, 산행을 앞두고 혹여 일행에 폐를 끼치지나 않을까 우려와 초조가 밀려왔으리라.

   청년병사로서 강원의 온갖 높은 산 깊은 골을 범처럼 내달렸으나 등산객으로서는 이러한 고봉준령을 난생처음 오른다는 호송thy는 설렘과 각오로 텐션이 넘쳤다. 평소 아침식사를 안 하는 그가 선배들의 권유로 섭취한 새벽 네시 반의  찰밥 한 덩이가 시샘을 한 것일까? 신새벽의 어두운 산길을 오르는 내내 가슴을 옥죄는 답답함을 해결하기 위하여 목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나서야 그는 다소 안도하였다. 비로소 지리산에 들어섰다는 실감과 긴장이 그의 몸을 에워쌌다.

   히말라야 등반대에는 정상 정복조가 있고 몽떼에는 최 회장이 있다. 업무를 마치고 원주에서 함양까지 삼백 수십 킬로를 운전하여 주파한 그도 처음 마주한 영산의 위용 앞에 몸을 낮추며 컨디션을 가다듬었다. 동료들과 고속버스로 함께 이동할 수 있었다면 한결 날아갈 듯한 상태로 첫 번째 만나는 지리산과 인사했으리라. 육체의 피로는 우루사만으로 다스려지는 것이 아니다. 신은 인간에게 피로를 주었으되, 그것을 다스리는 아름다운 정신을 주었다. 최 회장은 그 선물의 수혜자였다.

   S는 밤 열한 시가 넘어 백무동에 도착했다. 호송thy가 숙소로 이끌어주었다. 모두 잠든 밤 물소리는 크고 맑았다. 노트북을 켰다. 끼니를 건너뛰어 눈은 퀭했고, 소주도 당겼다. 친절한 호송thy가 어디선가 조달해 와 함께 나눈 진로 한 병이 아니었으면 지리산자락의 흑야는 막막했으리라. 친절한 호송thy, 쌩유~

   일을 마치고 샤워하고 누우니 두 시였다. 잠은 쉬 오지 않았고 이름 모를 산새들과 멀리 있는 큰 개들이 울고 짖었다. 펜션 방바닥이 절절 끓었다. 창문을 열어놓으니 그제야 지리산의 선선한 숨결이  순환했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새벽 네 시, 산으로 오르는 사람들의 이른 발소리가 이따금씩 창을 넘어왔다. 몽떼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눈을 떴다. 채비를 하고 방바닥에 둘러앉아 정석대장이 밀폐용기에 챙겨 온 찰밥과 구운 햄을 김에 싸서 반 공기남짓 씩 먹었다. 장터목대피소에서 브런치를 하기 전까지의 든든한 양식이었다. 소박하고 간절한 한 끼에 감읍하는 ‘왕후의 밥과 걸인의 찬’이란 말도 있지만 이 검박한 새벽밥상에 깃든 친구의 배려와 정성을 과연 어떤 왕후장상이 맛보았으랴. 귀하고도 귀하였다.

   계곡을 오른쪽에 끼고 산으로 향했다. 옅푸른 보랏빛의 산길과 숲의 그림자가 아슴아슴했다. 비가 예보되어서였는지, 새벽숲이 내뿜는 숨이 원래 그러했는지,  대기는 촉촉했고 이내 땀이 배어 나왔다. S가 턱에 차오른 숨을 추스르는 사이 최 회장은 시야에서 사라졌고 정석대장, DJ형, 호송 thy도 아련해졌다. 출발은 같이 했으나 서로 종적이 묘연해져 그리움(?)이 시시각각 짙어졌고, 한참이나 지나서 마침내 극적인 재회가 이루어졌다. 


   S가 11시경 장터목대피소를 지나 천왕봉으로 향하는 고사목 지대를 통과할 무렵 천왕봉을 이미 딛고 장터목으로 내려오던 최 회장과 조우했다. 정상에서 한 시간 남짓 기다리다 춥고 졸려 내려온다는 그를 보며 S는 그저 감탄했다. 장년의 시대에 저런 경공술을 구사할 수 있다니. 절차탁마와 연단은 그 세기보다 꾸준함에서 열매를 맺는 법. 나이브하고 순하게만 보였던 청년 최 회장의 어느 곳에 이런 강함이 면면하였을까. 사람은 오래 볼수록 아름답다. 

   한 가지 나쁜 놈! 가뜩이나 힘겨운 S에게 최 회장은 심드렁하니 툭 던졌다. 

   "천왕봉 막바지는 꽤 힘들데.” 보이스 비 앰비셔스는 못 할 망정, 이게 할 소리란 말인가. 나쁜 놈.

   최 회장과 헤어진 후 돌배나무 군락길에 못 미쳤을 때 역시 천왕봉을 딛고 내려오던 세 벗을 만났다. 모두 쌩쌩했고, 당분이 부족하다는 정석대장은 뛰어 다니고 있었다, 참 나. 물과 초콜릿과 과자를 나누어 먹고 그들은 S를 격려했다.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올라갔다 와. 기다리고 있을게.

   돌아서 걸으며 S는 코끝이 찡해졌다. 오늘 이곳에 그가 있는 것은 온전히 저들의 덕분이었다. 오래전부터 지리산 천왕봉을 버킷리스트로 꿈꾸었으나 막막하여 엄두를 못 냈다. 공룡능선을 계획하던 친구들이 S의 ‘여생’을 감안하여 지리산으로 방향키를 돌렸다. 일사불란 주도면밀 의기투합이 착착 이어졌다.

   함께 가자고 들떠 이야기를 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S는 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첫 번째 이유는 겹친 일정들이었다. 회사일, 집일, 교회일, 단체일들이 식당 카운터의 이쑤시개통만큼 촘촘했다. 주변머리가 없어서겠지. 세칭 맘 편히 거를 타선이 없었다.

   더군다나 2주일을 앞두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급체에서 비롯된 극심한 체력과 컨디션 저하가 이어졌다. 매 끼니 한 움큼씩의 당의정으로 배를 채웠다. 소화가 안 되니 못 먹고, 못 먹으니 기운이 없고, 기운이 없어 뭘 먹으면 소화가 안 되는 갑갑한 날들이 열흘 가까이 되었다.

   과연 갈 수 있을까? S는 이번이 아니라면 지리산 천왕봉을 만날 기회는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고, 전전반측 끝에 어렵게 어렵게 결심을 냈다.

   친구들의 조언이 힘이었다. ‘무리가 안된다면 등산 대신 공기 좋은 곳에서 하루 휴양한다는 기분으로 내려왔다 가면 어떨지. 천왕봉은 못 가더라도 백무동에서 일박 후 천천히 체력 닿는 곳까지 올랐다가 같이 하산하는 그림…’ 고마운 응원, 바위를 굴러가게 하는 것은 마지막 한 번의 밀어주는 힘이다.

   저녁 일곱 시, 백무동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S의 고민은 계속됐다. 자신의 느려터질 등산 속도 탓에 일행들의 일정에 폐가 되리라는 ‘확신'때문이었다. 그는 도저히 안되면 천안봉까지 오르는 것은 포기하고 지리산에 다녀왔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겠노라고 마음을 먹었다. 

   결과적으로 무리한 일정이었고, 친구들에게 많은 폐가 되었다. 귀경길에 친구들에게 자신 때문에 전체적으로 일정을 지연시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는데 친구들은 대노했다. 쓸데없는 말 말라고, 함께한 여정이어서 좋았다고.  그래! S는 뻔뻔해지기로 했다. 

   이리하여 S는 에스는 소중한 꿈을 하나 잃었다. 이루어진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니므로. 대신에 그는 또 하나의 아름답고 고맙고 깊은 추억을 챙길 수 있었다.

   천왕봉에 오르는 길은 가파른 비탈의 연속이었다.   

크고 작은 바위들과 돌계단으로 이루어진 경삿길은 이제까지 다닌 여러 산 중에 가장 으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비탈을 오르고 바위를 딛고 봉우리에서 허리를 펴고 가쁜 숨을 몰아쉴  때마다 펼쳐지는 계곡의 깊은 그림자와 연봉의 줄달음질은 장관을 이루어 절로 감탄과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셔터를 누르느라 S는 그나마 알량한 체력의 상당 부분을 소진했을 것이었다. 

   그런 기쁨도 있었지만, 오르는 행위 자체가  S를 무척이나 힘들게 했다. 쇠잔하여 앙상한 다리 근육을 탓하고, 탓할 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천왕봉에 오르니  많은 사람이 천왕봉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으려 줄 서 대기하고 있었다.  차마 거기에서 기다려 서 사진을 찍기에는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었으므로  S는 옆에 있는 신사분과 품앗이로 천왕봉 표지석의 뒤쪽을 배경으로  한 장의 사진을 찍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흐린 날씨에 운해가 찼고 그래서 정상을 둘러싼 조망이 탁 트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되었다. 여기는 지리산, 해발 1,915미터의 감격이 온몸을 휘감아 주므로..


   S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자신을 이 자리에 올라올 수 있게 해 준 여러 이유들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했다. 속 좁고 강퍅한 그가 감사하는 마음이 많아지는 것은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일 것이리라. Il vieillit de plus en plus.. 


   S는 가고 싶었던 산이 3개 있었다. 한라산과 지리산 천왕봉, 나머지 하나는 특정한 산을 짚지는 않고 남겨두었다. 언제든 마음에 남는 산을 오르면 그것으로 채울 요량이었다. 오늘로써 그는 그중에 두 가지 봉우리를 올랐다.

   9년 전 무등산을 올랐을 때의 날이 생각이 났다. 새벽 첫차를 타고 광주에 내려 무등산을 오르고 저녁 막차로 귀경하는  일정이었다. 무등산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막연히 광주의 유명한 산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출발을 했으나 해발 1,186미터의 무등산은 만만한 산이 아니었다.  더욱이 서석대 부근에서 저혈당이 와 조난의 걱정까지 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내려왔던 기억이 있었다. 그럼에도 무등산은 너무나 맑은 날씨, 좋은 하늘이 윈도우 바탕화면처럼 펼쳐진 투명하고 인상적인 풍경과 함께 ‘완전한 평등(無等)'이라는 산 이름의 의미를 가슴에 깊이 새겨  주었다.

   무등에서 완전한 평등을 생각했다면 오늘 지리산에서는 서로의 다름을 깨친다(智異)고 뜻을 새겨보았다. 친하게 지낸 오랜 벗이지만 각자의 생활과 생각과 모습과 활동 패턴들은 다 다르다. 오늘 산에 오르는 것에서도 확연한 차이가 나는 다름들이 있다. 그러나 이 친구들은 그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을 이해하고 그 다름을 서로에게 배려해 준다. 다르기에 오래 함께 걷는다.

   장터목으로 하산하며 S는 정석대장에게 전화를 했다. 일행들은 장터목에서 라면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S를 기다려 라면을 끓여 먹이려 기다리고 있었다. 시장과 피곤이 겹쳤을 텐데 기다려준다니  그저 고마울 뿐이었지만 더 이상 일정을 지체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먼저 내려가라고 했다. 정석대장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다렸다가 같이 가자고 했지만 S는 똥고집 덩어리이다. 고마움은 별개로.

  내려오는 길은 길고  길었다. 올라갈 때 초라한 다리 근육이 안쓰러웠다면 내려올 때는 두 다리에 실리는 체중이 원망스러웠다. 길고 긴 바윗길 돌길을 걸어 내려올 때 뒤에 내려오는 커플의 여자가 남자에게 하는 얘기를 들었다.

   “이제 돌 좀 그만 밟고 길, 흙 좀 밟았으면 좋겠다.”

   S는 저 여자가 나야 라는 생각이 들어 빙긋 웃었다.


   한참을 더 내려와서 비로소 포장도로가 나타났다. 터덜터덜 걷는데 DJ 형과 호송 thy가 그를 불렀다. 둘은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어찌나 반가운 목소리, 어찌나 반가운 얼굴인지 내려오면서 들었던 온갖 생각과 힘듦이 일순 사라지고 S의 마음에는 활기가 뛰놀았다. 이제 이 위대한 여정 여정의 마무리가 다가온 것이었다.


   귀경길은 최 회장이 책임을 진다. 무척 피곤했을 터인데 그는 운전대를 잡고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일행을 서울까지 총알배송하였다. 독한 놈. 정석 대장은 조수석에서 열심히 썰을 풀었고  DJ형과 호송 thy도 네버 엔딩 화답하며 운전자의 졸음을 쫓았다. 안전운전의 태권브이. 마징가제트, 메칸더브이! S는 말도 안 되는 야부리로 장단을 맞추다가 끝내 까무룩 잠이 들다 깨다 했다. 저질체력의 초로, 현실직시!


   9시가 넘은 광화문의 밤거리는 갈증을 그대로 보낼 만큼 매정하지 않다. 네온빛이 반사되는 생맥주 한 잔을 들이켬으로써 심플하나 향이 짙게 1박 2일의 대장정은 종언했다. 잘 꾼 꿈처럼. 서로의 분투를 치하하며 총총걸음으로 헤어졌다.


   어찌 보면 믿어지지 않는 일정이었다. 24시간 남짓 만에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고 그 먼 길을 왔다 갔다 하다니. 조국 근대화의 위대함을 칭송하기보다 어떤 트러블도 없이 이 길을, 그 험하고 높은 산을 다녀올 수 있었다는 사실은 오래 간직할 감격이었다.

  S는 이번 산행에서 마음에 담은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완전한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라는 사실이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정석대장의 꼼꼼한 준비가 없었다면, 그들의 산행은 결코 이렇게 순조롭지 못했을 것이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산행 코스와 또 차편과 무엇을 어떻게 먹고, 어디서 쉬고 해야 할 것인가 등에 대하여 정말 주도면밀하게 준비를 했다.    반면에 S는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오로지 천왕봉에 오르고 싶다는 그 욕망 하나에 매달려 가뜩이나 기본 체력도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부족한 잠으로 천왕봉을 오른다는 것은 산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일행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었다.

   언제까지나 젊은 날의 기억만을 변주하여 적당한 기준으로 삼은 욕망을 용기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라는 사실을 그는 또렷이 새겼다. 그것을 인정해야만 다른 어떤 경우에도 철저한 준비를 하고 현명하게 대응해 나갈 수 있는 가장 최적의 길을 찾는 것이다.


   둘째, 청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나이가 들며 익어갈 뿐이라는 것이다.

   호송 thy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형 우리 정말 대단해요. 어려서 만나 이제 60이 된 나이에 또 함께 모여 이렇게 등산을 하다니요.

   그렇다. 이것은 어찌 보면 기적이고 어찌 보면 찬란한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부터 청년 시절부터 친구로 지냈지만,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까지 어울려 모임으로, 친구 선후배로서의 모임으로 이어져 가는 경우는 쉽지 않다. 주위의 사람들만 보아도 대부분 몇 달 만에 한 번씩 만나 그저 술 한 잔씩 하면서 이런저런 한담을 나누거나, 여러 이유로 그마저도 여의치가 않아 소소하고 적막하게  하루하루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몽떼들은 그렇지 않고 한 달에 한 번 혹은 그보다도 자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모인다는 것은 정말로 기적과 같은 일인 것이다.

   이것은 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아직도 청년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날을 소중히 기억하고 단지 그것을 반추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금 열심히 살아가는 삶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분명 다르게 살아왔고,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만 청년을 함께 보냈고 청년의 그 뜨거운 피가 숨 쉬던 기억을 같이 갖고 있기에 지금 그들은 이것이 가능하다.

   뜨거운 피의 기억이 살아있는 한 청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천천히 늙어갈 뿐이다. 그리고 청년은 혼자 늙어갈 수 없다. 벗이 있기에 청년들은 늙어갈 수 있는 것이다.


   지리산을 다녀온 지 닷새가 지났다. 이제야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수월해졌다.

   다들 어떠하신가?


https://youtu.be/WiJxzj6i74s?si=3Cazh0vHGyQzDS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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