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치혜 Sep 16. 2024

歌痕20 - 가을의 것 1. 찌고이네르바이젠.

  9월이 왔다. 가을이다.
  원두를 갈아 진하게 커피를 내렸다.
  여름 내 바쁘고 지쳐 커피를 내려 마시는 호사는 접어두었는데 실로 오랜만이었다. 수동 그라인더에 커피콩을 넣고 바쁘게 돌렸다. 늘 후회한다. 살 때 자동 그라인더를 살 것을. 낭만은 있을지 모르되 - 솔직히 낭만이 존재하는지 잘 모르겠다 - 손으로 돌려 갈다보면 힘들다. 오래된 필립스 커피메이커에서 조르르 커피가 내려오고 진한 향이 공간을 채운다. 제법 까마득한  기억이지만 담배에 불을 붙일 때의 짧은 적막같은 무념의 시간을 집중하며 컵을 들고 기다린다. 다소 설렌다. 오늘 맛은 어떠려나.

  올 여름  출근길에 열심히 커피를 마셨다. 편의점에서 1+1 커피를 집어 들어 벌컥거렸다. 각성하려고, 갈증을 해소하려고 마셨다., 출근해서 맥심 믹스 커피 한 잔으로 일을 시작하는 것은 오랜 루틴. 커피의 맛을 따질 계제가 아니다. 그저 습관처럼 마신다. 중학교 때 선생님들께서 수업 시작하시며 박카스를 마시듯. 일터에서의 두 번 째 커파는  카누 로스트이다.  비로소 기호식품으로서의 커피를 마신다는 생각을 한다. 한낱 인스턴트 커피지만, 그 맛이 입에 감긴다.

  해마다 9월의 첫 날이면 제법 커피를 갖추어 놓고 사라사테의 "찌고이네르바이젠"을 듣는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학생 시절의 어느 가을부터였다. 한수산 작가의 소설을 읽었는데 - 불행히도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작가의 필모에서도 찾지 못하였다. 내가 혼동하거나, 작가가 흑역사로 여기고 지워버렸거나. 아무튼 80년대의 통속소설이다 - 그 작품의 주요 제재였다. 찢어지게 가난하나 재능과 감성이 넘치는 남자와 엄청남 부잣집 공주님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두 주인공이었다. 그들을 비련으로 엮어준 곡이었다.
  나는  로맨스물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그 소설에 꽂혔다. 보다 정확히는 두 주인공의 운명이 교차될 때마다 등장하는 '찌고이네르바이젠'에 꽂혔다. 소설을 다 읽고 학교 앞의 클래식 다방에 들어가 찌고이네르 바이젠을 신청했다. 드라마틱한 도입부, 끊길 듯 흐느끼듯 혹은 관능적으로 호흡을 이어나가는 전개, 마침내 심장을 두드리는 강렬한 속주, 그리고 낙화와 같은 엔딩. 매료되었다. 또렷하지는 않지만 아마 눈물도 흘렸을 것이다. 지금도 9월의 첫 날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이 곡을 들으면 눈물이 배어나므로.
  9월 1일, 이 청승 퍼포먼스의 특별한 이유는 모른다. 그저 그렇게 해야만 하고 그래왔다. 확실한 것은 가을이구나 하는 실감을 하고, 연주가 흐르는 8분여의 시간 동안 커피맛의 깊이를 음미하고,  두 볼의 눈물 자국을 훔치며 비움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는 그 정도이다.

  올해의 가을도 이렇게 시작하였다.
  오래된 작은 습관을 의식인 양 치르는데 유난히 커피의 맛에 집중하였다. 길고 무서웠던 올해 여름동안 들이 부었던 '음료수 커피'에 대한 반동이었을까?
  흑석동 골목의 작은 카페에서 원두로 내리 커피는 유난히 맛이 좋다. 블렌딩 비율을 물어 들었지만 기억하지 못한다. 몇 해 전, 글쓰기 모임에서 최선배가 내려준 게이샤 커피의 풍미는 기억이 생생하다. 와인을 한 모금 머금듯이 커피를 입안에서 굴려보고는 깜짝 놀랬다. 수십 수백가지의 꽃향과 과일향이 입안에서 터져나는 느낌이었다. 흑석동 시장 안에  2층 카페의 노신사(?) 사장님이 내려주는 예가체프가 맛있다. 고풍스런 본차이나 잔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 세상사의 담는 것과 담기는 것들의 조화에 대하여 생각해 보곤 했다. 체인점의 커피는 입에 맞지 않는다. 그곳의 커피는 커피가 아니라, 브랜드와 공간이라는 상품의 부록이라는 느낌이다.
  그러나 커피의 섬세함을 느끼기엔, 내 입맛은 무디고 내 시간은 척박하다. 커피의 감동을 느낄 겨를이 없이 주면 마시고, 갈증 나면 맛있을 뿐이다.

  테헤란로의 카페들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하루 종일 비즈니스를 한다. 그중 상당수가 중년 혹은 그 이상으로 나이 든 손님들이다. 오래도록 한 자리를 차지하고 교대로 손님을 맞는다. 네트워크마케팅과 부동산과 주식과 보험상담 등이 치열하다. 카페마다 ‘1인 1음료’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카페 주인과 손님의 삶이 치열하다. 그 치열함이 쓸쓸하다. 그들에게도 커피는 하나의 매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리라 생각해 본다.

  느긋하게 앉아 커피를 음미하며 여유를 즐길 호사는 나에게 없다. 몇 해 전, 마음이 크게 상했던 에 강릉으로 향했다. 늦은 저녁, 넓은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손님은 두어 테이블뿐이었다. 외로웠다고 생각했지만, 강릉 해변을 걷는 사람들 모두가 외로워 보였다. 혼자든, 커플이든, 무리든.
  그날 밤, 커피를 테이크아웃하여 차를 몰고 상경하는 길에 유튜브로 노래를 틀었다. 목청껏 따라 부르며 커피를 마셨다. 커피는 뜨거웠고, 외로운 맛이었다. 그날도 가을이었다.

  '가을의 것'들이 있다. 가을에만 존재하는 것 아닐진대 가을이면, 그것도 초가을이면 도드라지는 것들이 있다.  찌고이네르바이젠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며, 가을의 것들을 떠올려 본다.


https://youtu.be/-My4X_OBNtI?si=Q5evORTTftXU8Z47


매거진의 이전글 歌痕19. Bye, past decad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