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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Jun 21. 2024

여행하다 죽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6. 이스탄불


타국에 와서 중고 서점에 들르는 일. 게다가 읽지도 못하는 언어로 쓰인 책을 정성껏 고르는 일. 그러다 보물을 발견하는 일. 그것은 이방인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행운이죠. 오늘 저는 이스탄불의 한 작은 서점에 들렀어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오래된 책 냄새가 이곳이 중고서점임을 깨닫게 하죠.


이제부터는 보물을 발견하기 위해 아주 느리게 걸을 거예요. 행운은 그런 발걸음에만 찾아오는 거니까 말이죠. 낯선 언어의 책을 고를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느낌이에요. 어차피 읽을 책이 아니라는 생각은 버리고 언젠간 읽게 될 것이다. 언젠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서점을 둘러보는 거죠. 그러다 보면 발길을 멈추게 하는 책과 눈이 맞을 때가 있는데요. 고민하지 마세요. 그 책이 이미 당신에게 대화를 걸고 있는 것이니까요.


저도 눈에 맞는 한 권의 책을 고르고 카운터로 가볼게요. 이런 서점이 으레 그렇듯 동그란 안경과 약간 굽은 등, 그리고 얼핏 무심해 보이는 주인이 우릴 바라볼 거예요. 아마도 따스한 시선은 아닐 테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이방인에게 향하는 호기심과 경계. 그사이에 놓인 악의 없는 눈빛이니까요. 게다가 여기는 이스탄불이에요. 동양 사람들, 특히 한국 사람에게는 더없이 친절한 동네죠. 그러니 편하게 골라 온 책을 카운터에 놓도록 해요.


제가 고른 것은 오르한 파묵의 책이에요. 터키가 사랑하는 작가…. 라고 하기에는 다소 설명이 부족한 작가죠. 서점 주인도 우릴 보며 이렇게 말하는 거 같네요.


"터키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지. 또 미워하기도 하고."


서점 주인의 이 말처럼 오르한 파묵은 터키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로도 잘 알려진 사람입니다. 어쩌면 세계에서 더 많이 사랑을 받는 터키 작가라고 해도 무방하겠죠. 이렇게 인정받는 작가를 터키 사람들은 왜 사랑하면서 또 미워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그의 작품을 보면 금방 눈치챌 수 있어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누군가 여러분이 감추고 싶은 무언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을 때, 그가 그 모든 것을 글로 써서 세상에 펴낸다면. 여러분은 어떤 기분을 느끼실까요? 아마도 불쾌할 거예요. 그저 숨겨두면 좋을 무언가를 세상에 드러낸다니…. 기분이 좋을 리 없겠죠. 터키 사람들에게 오르한 파묵은 그런 작가입니다. 터키가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어 두는 사람. 그래서 사랑스럽지만 그래서 또 미워해야 하는 사람.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 이스탄불이기에 같이 걸을 때면 조금 목소리를 높여야 할 거예요. 오르한 파묵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에요.조용한 서점을 나섰으니 이제 잠시 분주한 이스탄불의 거리를 조금 걸어볼까요? 이 도시를 그저 분주하다 정도로 표현해도 될는지 모르겠어요. 그만큼 이스탄불은 아주 시끄럽습니다. 트램과 전철, 버스와 바이크, 그리고 수많은 노점상과 말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터키의 거리는 하루 종일 가라앉지 않아요.


오르한 파묵은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기 위해 미움받을 용기를 냈어요. 그리고 목소리를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높였어요. 그의 용기 덕에 사람들은 이스탄불은 조금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었는데요. 지금 제 손에는 중고 서점에서 산 그의 책 한 권이 있어요. 제목은 <순수 박물관>이죠.


이 책을 요약한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요. 부잣집 도련님 케말과 신분의 차이가 있는 퓌순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 라고 말하면 어떨까 싶어요. 물론 이렇게만 말하면 그런 클리셰 소설을 왜 샀냐고 묻는 분들도 계시겠죠.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클리셰라 말할 수도, 단순한 신파라 말할 수도 없는 그런 작품이에요.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고작 1975년에. 지금으로부터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았던 그때. 이스탄불에서 일어난 이야기니까 말이죠.



<순수 박물관>의 주인공 케말이 살던 시대의 이스탄불. 그때 이곳에는 명확히 구분될 수 있는 신분이 있었고, 가지고 태어난 것들로 인해 불평등과 제약이 있었습니다. 터키는 이제 막 현대화되려는 참이었고, 그런 시대의 변화 속에서 이스탄불 사람들은 조금 더 분주히 움직여야 했죠. 소설 <순수 박물관>에는 그런 70년대의 이스탄불이 잘 그려져 있는데요. 그 안에 담긴 이야기에 조금 더 집중해 보도록 하죠.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은 케말입니다. 그는 이스탄불의 꽤 괜찮은 집안에서 나고 자랐고, 마찬가지로 상류층 여성이었던 시벨과의 약혼을 준비하고 있었죠. 물론 서로의 사랑은 천이 너무 얇아 마음을 다 덮어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죠. 케말은 어린 시절 알고 지내던 먼 친척뻘의 여자, 퓌순을 만나게 됩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쓰여있기라도 했다는 듯 사랑에 빠져들죠. 하지만 사랑을 나눈 뒤, 빈 아파트의 문을 열고 나오면 현실은 무너지지도 않은 채,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케말은 번민합니다. 시벨과의 약속된 결혼을 통해 그 시절을 이어 나갈지, 퓌순과 진정한 사랑의 시절을 시작할지, 어려운 선택지 앞에서 고민을 거듭합니다. 그리고 그는 당시의 이스탄불에서는 가능했던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되는데요. 시벨과의 결혼. 그리고 퓌순과의 사랑을 모두 간직하고자 막다른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를 위해 케말은 시벨과 약혼식을 올립니다. 퓌순은 그 모든 결정을 바라보며 커다란 실망을 하게 되죠. 그리고 그에게서 완전히 사라질 결심을 하기에 이릅니다. 퓌순이 사라진 후, 케말은 스스로 걷던 길이 무너졌음을 인지합니다. 이후에 벌어진 그의 삶은 이스탄불의 그 시절만큼이나 급격히 흔들리는데요. 시벨과의 파혼은 물론이고, 그의 삶은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고 맙니다.


그렇게 무너진 잔해 사이에서 케말은 또 한 번 선택해야 했습니다. 인생 전체를 쏟아도 좋을 만큼 찬란했던 사랑과 그것으로 시리듯 아팠던 이 시절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또 한 번의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이번 선택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요. 그는 사라진 퓌순. 그의 흔적을 하나 둘 모으기 시작합니다.


그가 입었던 드레스, 찻잔, 음료수 캔, 한 짝만 남은 귀걸이, 손수건, 재떨이, 자전거, 피다 만 담배꽁초 4,213개… 까지. 케말은 퓌순과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스탄불의 한 마을에 그것을 간직할 건물을 사고 그것을 박물관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도착한 붉은 집. 이곳이 바로 케말과 퓌순의. 그리고 이스탄불의 한 시절이 담긴 <순수 박물관>입니다.



이스탄불 외곽의 한 주택가에 있던 3층 집을 구입해 박물관으로 개조한 이곳은 꽤 복잡한 골목 사이에 있어요. 그래서 쉽게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주택과 달리 어두운 붉은색 외관이 눈에 띄기 때문에 그것만 기억하시면 무사히 이곳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이 박물관은 소설 <순수 박물관>에 따르면 케말이 퓌순과의 사랑의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또 소설 속에서 케말은 이스탄불의 작가 오르한 파묵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부탁합니다. 오르한 파묵은 케말의 사연을 듣고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소설 <순수 박물관>과 실제 <순수 박물관>은 완성되죠.


하지만 여기서 반전! 이 모든 것은 오르한 파묵 작가의 허구 속 이야기입니다. 케말이나 퓌순은 상상 속 인물이었고, 당연히 케말이 모았다는 퓌순의 물건 역시 사연 없는 물건입니다. 하지만 오르한 파묵은 소설이라는 상상의 이야기를 현실에 옮겨오는 대담한 시도를 <순수 박물관>을 통해서 하게 되는데요. 설명해 주지 않는다면 케말과 퓌순의 이야기를 단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작품은 치밀하게 쓰였습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가볼 수 있는 <순수 박물관>과 그 안의 물건들은 아주 섬세하게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죠.



자, 이제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좁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퓌순이 피었던 담배꽁초의 진열장입니다. 소설 속 케말은 담배꽁초에 날짜를 일일이 기록했는데요. 그런 기록에 의해 믿기 어려운 담배꽁초 진열장이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둘러보면 소설 속에서 운전 연습을 하러 나올 때 퓌순이 입었던 드레스나, 비키니 수영복, 그리고 소설 속에서 아주 중요한 오브제로 등장하는 나비 모양의 귀걸이도 있습니다.


이렇게 <순수 박물관>에서는 소설에서 직조한 허구의 물건이 현실로 전시되어 있는데요. 이런 허구의 물건을 더 사실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은 작품의 배경이었던 1970년대 터키에서 사용된 일상의 물건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에서도 등장하는 터키 최초의 소다 음료인 멜템 병과 그것의 광고 전단 같은 것을 비롯해, 그 당시 사용했던 다양한 물건들을 준비해 둔 것이죠.


오르한 파묵이 케말과 퓌순과의 사랑으로 빚어진 물건 외에, 이런 물건도 함께 전시한 이유는 역시나 당시의 이스탄불을 그대로 담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순수 박물관>은 허구를 현실로 만들었다는 가치 외에도 터키의 한 시절을 오롯이 담아낸 것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요.

이런 생각을 하며 층을 오르다 보면 이제 퓌순의 방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방에는 아주 작은 침대와 동그란 의자. 그리고 트렁크 하나와 퓌순이 어릴 때 탔던 세발자전거가 놓여 있습니다. 아마도 케말은 이 지붕 방에 누워 조금 먼저 더 높은 하늘로 떠난 퓌순을 그리워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이 닿을 수 있는 하늘이 고작 이 지붕 방이 끝이라는 사실에 좌절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방을 나서면 다시 현실로 돌아올 시간입니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필사본과 텅텅 빈 만년필 잉크통이 우리의 눈에 들어옵니다. 이것은 우리가 본 모든 것이 펜으로 지은 이야기라는 것을 알려 줍니다. 하지만 이쯤 되면 속았다는 생각에 화가 나거나, 쓸데없는 박물관에서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입니다. 되려 드는 것은 케말과 퓌순. 조금 어긋난 시대에 태어나, 뜨거운 찰나의 시절을 보낸 두 사람에게 건넬 위로의 말이겠죠.



이렇게 오늘은 이스탄불 어딘가에 있는, 소설 속 어딘가에 있는. <순수 박물관>으로 문학 트래블러의 길을 떠나봤습니다. 이제 이 문을 나서면 우리는 다시 2022년의 이스탄불을 마주할 것입니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이 길을 아주 섬세한 눈으로 바라보는 오르한 파묵을 마주할 수도 있겠죠. 만약 그렇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동시대를 사는 작가를 알고 있다는 것. 그것은 여전히 그의 시선이 닿은 이스탄불을 즐길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될 테니까 말이죠.


그럼, 제법 길었던 오늘의 여행길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음 여행 때, 우리는 다시 만나기로 하죠.


그때까지.

잘 지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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