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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Jul 02. 2024

#90. 책과 여름의 향기


높아지는 온도에 비례해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쳐지는 기분이 들 때. 책장에서 가장 가벼워 보이는 얇은 책 한 권을 꺼내 듭니다. 잔뜩 습기를 먹은 것인지 울퉁불퉁해진 책을 펼치자,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여름의 냄새가 났습니다.


그 냄새는 지난해, 가족들과 함께 떠난. 혹은 연인이나 친구와 머물렀던 바다의 냄새와 아주 비슷했습니다. 아니,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기억을 더듬다 보니 파라솔을 활짝 펼친 채, 선베드에 앉아 그 책을 읽거나 들고 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책에 베어 든 이 냄새는 아마도 그때 담긴 여름의 냄새였겠죠.


로베르트 뮐러 그뤼노브의 책 <마음을 움직이는 향기의 힘>에는 책과 냄새에 관한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자는 종이만큼 훌륭한 향기보관소는 없다고 말하는데요. 실제로 종이는 냄새가 빠르게 스며들기 좋은 소재라고 합니다. 이런 특성을 모르고 책을 잘 못 보관했다가는 못된 냄새가 책을 잠식할 가능성이 높고, 습기에 잘못 노출되면 곰팡내에 시달려야 한다고 하죠.


하지만, 이 특성을 잘 활용한다면 어떨까요? 기억에 남기고 싶은 장소, 매해 다시 떠올리고 싶은 기억. 그런 것이 있다면 한 권의 책을 함께 가져가는 거예요. 그리고 책에 냄새를 기억해 달라 부탁해 보는 것이죠.


예를 들면 제주의 파도 향이나 지리산 숲길의 나무 냄새, 그 여름 나와 당신이 사랑했던 향초 옆에 책을 두는 거예요. 그러면 기억력 좋은 책은 그 향을 꼭 안고 있다가, 다음 해 여름, 당신에게 다시금 여름의 추억을 안겨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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