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서른 셋, 첫 솔로캠핑을 가다
오늘도 습관처럼 유튜브를 틀었다.
솔로 여행, 솔로 캠핑, 솔로 백패킹.. 요즘엔 뭐든지 혼자서 하는 것이 대세인가 보다.
자유롭게 여행하는 영상을 보고 있으니 부럽긴 하다.
'나는 이제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으니깐 뭐.. 나도 결혼하기 전엔 자유롭게.. 응?!!'
맙소사!
혼자서 여행을 가본적이 없잖아?
서른 세살 먹을때까지 혼자 여행 한번 안가보고 나 여태 뭐하고 산거지?
오직 나를 위한 캠핑
한번 마음을 먹으면 행동은 빠른 편이다.
남편에게 허락을 받고 치기 쉬운 백패킹 텐트를 구매하고 캠핑장을 예약하는데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드디어 D-day!
전날 잠을 설쳤다. 텐트 치는 방법을 머릿속으로 몇번씩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혹여나 빠트린 물건은 없는지 생각하느냐고 몇시간 잠을 못잔것 같다. 잘할수 있을지 걱정이 한가득이었지만 남편에게는 밝게 웃으며 씩씩하게 인사하고 길을 나섰다.
걱정 반 설렘 반.
이런 긴장감 얼마만인지..! 요즘 새로운 감정을 느낄 일이 없는 내게 이런 두근거림도 기분좋게 느껴졌다.
심사숙고하여 고른 나의 첫 솔캠 장소는 포천에 위치한 나무새 캠핑장.
한여름이라 햇볕을 가려줄 타프는 필요할것 같고 내가 타프까지 칠 자신은 없어서 지붕이 있는 사이트로 예약했다. 탁월한 선택.
처음부터 느낌이 너무 좋았다. 깊은 숲속의 산장같은 느낌.
계단 위로 짐을 옮겨야 하는것 빼고는 다 마음에 들었다. 특히 무거운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옮길때는 처음으로 남편 생각이 났다.
나무 데크 사이트여서 오징어팩을 사용해서 텐트를 고정시켜야 한다. 남편이랑 아이랑 일년정도 캠핑을 다녔지만 오징어팩을 오늘 처음 만져보았다.
이게 이렇게 쉬운거였어??
순조롭게 셋팅을 마치고 얼른 맥주 안주를 준비했다. 소시지와 매쉬드 포테이토 그리고 흑맥주 한잔.
맥주 한모금에 흥분했던 가슴이 진정되는 느낌. 이때부터 주변의 푸릇푸릇한 나무와 숲을 가득 채우는 새소리가 내 눈과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내가 붙인 장작불. 부싯돌로 피운것도 아니고 강력한 가스 토치로 붙인 불인데 이게 이렇게 뿌듯할 일인가. 이제껏 해왔던 불멍중에 가장 특별한 불멍이었다.
장작이 이렇게 빨리 타는지 몰랐다.
잠시만 다른 일을 하다 보면 나무가 다 타있네. 불씨가 죽지 않게 중간중간 장작을 넣는것도 은근히 신경쓰이는 일이었다. 그동안 나는 정말 '불멍'만 해왔었나 보다. 불보며 멍때리기.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것만 먹을것이다.
집에서 메뉴를 한참 고민했다. 그동안 내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많이 잊고 지냈나 보다.
해산물을 선호하지 않는 남편이랑 살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던 내가 좋아했던 음식들.
저녁 메뉴로 연어 포케를 준비했다. 물론 화이트 와인도.
햇살이 내리쬐는 나만의 와인바. 숲속을 가득 채우는 새소리와 타오르는 장작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했던 순간이었다.
숲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고 랜턴불을 밝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기 전 가장 아름다운 순간.
다음 안주를 준비한다. 기름지고 쫀득한 식감의 메로구이. 내가 정말 좋아했던 안주다.
오늘은 온전히 나를 위한 하루.
정말 조용했다. 평일이라 캠핑장에 사람도 없어서 새소리 외에 들리는 소리가 거의 없었다.
내게는 너무 낯선 이 고요함과 적막함.
항상 옆에 있던 남편과 아이가 없으니 약간 심심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지만 이 심심함이 너무 좋았다.
늦게까지 내가 좋아하는 영화 '뷰티 인사이드'를 보며 밤을 즐겼다.
깜깜해지니 무서워서 밖에 랜턴을 켜놓고 텐트 안에 누워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잠을 청했다.
아침 햇살에 눈이 떠지고 안도감과 뿌듯함이 몰려왔다. 내가 무사히 이곳에서 하룻밤을 잘 보냈구나.
지난 여름 나의 첫 솔로캠핑.
솔캠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이 날 이후 내 인생에 큰 변화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