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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은 Aug 25. 2021

비교적 짧은 기록들 - 마음

#1


서로가 말랑하고 뭉뚝한 진심으로 다가오는 경우, 다치지 않는다.

둘 중 다른 한 명이 딱딱한 벽을 세운 경우 말랑한 쪽이 뭉개진다.

두쪽 다 딱딱한 벽이라면, 둘은 닿지 않는다.

오른손에는 말랑한 것을 들고, 왼쪽에 벽을 둔 채 상대방이 무엇을 들고 있는지 살핀다.

나는 말랑이를 내밀 작정이었는데 저 멀리 보이는 것이 벽의 모양새라면 손을 바꾸어 버린다.

상대도 내 눈치를 본다.

어쩌면 말랑이인채로 만날 수 있었던 몇 쌍의 마음들이 이렇게 벽이 된 채 끝이 났다.

상처 받지 않으려고 벽을 택했던 닿지 못한 인연들에게는 사실 묻고 싶었던 게 많았는데.

다시 처음 만나던 거리로 돌아가 정확한 타이밍에 말랑이를 환하게 들어 보여주고 싶다.

운도 필요하니까 신의 도움도 살짝 받아본다.

그랬으면, 우리 지금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을지.




#2


또다시 지난번의 효창공원 카페에 왔다.

(중략)

이곳에 두 번째 방문만에 장소 애착이 생겨버린 것 같다.

오랜만에 소진 언니를 만나고, 두 번 다 민소매에 같은 향수를 뿌리고 온 곳. 그것이 스스로 어릴 적 로망이던 커피프린스 한유주 같아서 어른인 척 행동해본 곳. 그즈음 내가 신경 쓰던 애의 집에서도 그리 멀지 않던 곳. 젊은 사람과 노인들이 통유리창 밖으로 지나다니고, 시야에서 느껴지는 시끄러울 것 하나 없는 동네 분위기.

거창하지는 않지만 서른 즈음의 어느 하루로 기억하기에 충분히 따뜻한 공간이다.

뜬금없이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이십 년을 더 살아 오십 살쯤이 되었을 때는 이런 애착 장소가 아주 많아져 전국 방방 곳곳 어디에서든 위로받을 수 있을까. 나는 그때도 위로가 필요한 마음일까. 그땐 이 카페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라는.. 그때가 되었을 때는 기억하지도 못할 물음 거리들.

사실 내가 타임머신에 가장 넣고 싶은 건 이런 것들이다.

옛날의 주은이 소중하게 생각했는데 미래의 주은은 다 까먹어 버렸을 것 같은 기억들, 장소, 습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시덥지 않지만 그토록 중요했던 고민들.

오늘 이곳에 이십 년 후에 대해 적었으니, 이 질문은 그래도 다시 읽히게 될 확률이 높은 편이다.

이십 년 후의 나는 전국구로 활동 반경을 넓혔는지, 여전히 위로가 필요한지, 많은 것들이 바뀌었는지. 미래의 내가 놓치지 않고 대답해 주길 바란다.




#3


손해 좀 보더라도 배려하는 사람들. 쉽게 무엇인가를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

과거 추억에 청승맞게 눈물 맺히는 사람.  저게 저렇게까지 슬플까 가끔은 이해 가지 않아도 안아주고 싶은 연약한 마음들. 모두  지켜주고 싶다. 그런 사람들이  나를 지켜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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