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은 Jul 14. 2021

효창공원 카페 上

느린 사람으로 살기

     비 오는 날 딱 30분 일찍 약속 장소에 나와 밀린 일상을 되짚어본다. 시간의 흐름이 없이 뒤죽박죽 하게 섞여버린 요즘의 이야기들. 기승전결이 없이 그날 그날의 이슈로 흘러가고, 바쁘다가도 한없이 적막해지는 불안정함이 요즘 나의 디폴트 상태이다.


    추위가 가시면, 봄이 오면, 다시 회사에 들어가 새로운 일상을 시작할까. 그래야 한다. 올 겨울은 그런 생각으로 지나갔다. 내 나름대로 혼자 설정해 둔 멈춤의 유예기간은 봄까지였다. 그래서인지 올해 유독 길었던 봄이 반가웠고, 또 길게 불안했다. 막상 여름이 오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 든달까.


    집에서 까마득히 먼 효창공원의 가오픈 중인 카페에 앉아 바깥을 살짝만 적실 정도의 여우비가 내리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아직도 이 여유와 느린 것들이 지겹지 않은 것일까, 나는 왜 이런 느린 삶과 가까운 사람인지 궁금해한다.

    잠시 생각해보다, '생각' 이라는 단어를 입모양으로 작게 발음해 보며 역시나 그것 때문이지. 하고 생각했다. 처음 회사를 다닐 때 느릿느릿하다고 지적을 받았던 나는 고민을 적게 해도 되는 일 앞에서는 빨라졌다. 그때 나는 나에 대해 잘 모르던 23살 꼬마 인턴이었으므로 그저 내가 남들 말처럼 굼뜬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생각이라는 행동은 물리적인 시공간에 전혀 영향받지 않는다. 그래서 마감기한을 정해놓지 않은 채 생각하기를 시작하면 마치 돌돌 말려진 양탄자가 펼쳐지듯 죽죽 뻗어나가는 것이다. 일을 앞에 두고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 보면 실수와 실패의 확률은 줄어들었지만, 결정과 실행이 늦어질 확률이 높아졌다.


     생각을 멈추어야 다음 행동이 시작될 수 있는데, 그것을 멈추지 못해 나는 결국 느리고 게으른 사람이 되었다.

요즈음, 사람들이 퇴사하고 뭐 하고 지내냐고 물어보면 '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펼치고 좁히는 과정에 있어요.' 라고  답하기가 애매해 그냥 놀고 있다거나, 별 거 안 한다고 대답한다.

  나는 삶의 끝순간까지 반짝대며 살거라는 욕심을  가지고 있는 데에 비하면 매우 의욕 없어 보이는 대답이지만 지금 당장에 모든 것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대충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있는 답변을 택한다.


겉으로 보이는 사회적인 나는 완전히 멈춰 있는데 나 혼자 부산스럽고 있는 지가, 어언 6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천 피스 퍼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