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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은 Jul 18. 2021

이별에 관한 대화





J : 난 진지하게 이런 생각 가끔씩 해. 이별이 너무 무서워서 연애 못하겠다는 생각. 연애하기도 전에 얘랑 헤어지는 거부터 먼저 상상해보고 그런다?


K : 나도 그래. 모든 어려운 감정들 중에서 일등으로 힘들어. 아마 비슷한 감정이 없어서인 것 같아. 이별에서 느끼는 감정은 이별에서만 발생되는 거지.


J : 응. 이별했을 때만 찾아오지 이별 감정.


K : 이별로부터 겪게 되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리움? 공허함? 슬픔? 아무튼 딱 속 시원하게 일치하는 단어는 없는 것 같아.


J : 그러게. 그 감정을 단어로 만든 건 없다.


K : 그럼 우린 이별했을 때 느끼는 감정들을 대충 ‘지구’라는 단어라 부르자. 지구는 살면서 자주 만나는 감정은 아니야. 그래서 늘 낯설고, 나는 이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슬플 땐 눈물 흘리면 어느 정도 사라진다고 참지 말고 울라고 하잖아.  화날 땐 소리 지르거나 못된 말 하면 풀리기도 하고.

근데 지구는..  음, 그래도 최대한 지구랑 비슷한 주된 감정을 찾자면 공허함인 거 같다. 공허함을 보통 어떻게 처리하지?


J : 모르겠네. 나한테 집중하는 것밖에 없는 거 같아.

공허함도 공허함인데, 내가 이별했을 때 제일 힘들다고 느끼는 부분의 포인트는 이거야.

상대방에게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이 있어. 근데 못해. 보고싶은데 못 봐. 다른 것들은 다 내가 하고 싶으면 할 수 있어. 결과야 어떻든, 꼭 해야 되겠다 싶으면 그냥 하면 돼. 근데 이별했을 때는 그게 완전히 차단돼. 그게 엄청 답답하고 슬프고 힘들어.


K : 아, 나는 그것도 공허라고 생각해.

일차적으로는 그 사람의 부재에서 비롯된 공허함이 가장 큰 개념이고 그 안에 그런 답답함이라던지 하는 세부적인 감정이 들어가 있는 거지.


J : 그러네. 상대방이 사라진 것에 대해 어쩔 줄 모르게 된 거니까.

네가 이별의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을 모르겠다고 했잖아. 그거 진짜 공감가. 이별 후 겪게 되는 울적하고 슬픈 그 기운은 내 의지와 노력으로 좀처럼 해소가 안 돼.

진짜 이별은 시간밖에 없네. 다들 시간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하잖아.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아지는 거 우리 모두 너무 잘 알지. 근데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아주 힘든 게 문제지.


K : 응. 아, 나는 그 기분이 이거랑 비슷해. 갑자기 생각났어. 우리 어릴 때 캐나다 갈 때였는데, 입국 심사하기 전에 뭐지? 아무튼 그 세큐리티 체크하는 곳에서 길을 잃었었어, 한순간에.


J : 너 그때 진짜 어렸는데. 그게 기억나? 난 기억 안 나.


K.: 그때 내가 초2였는데 너무 공포였던 기억이라 생생하게 기억나.

그 줄에서 언니랑 엄마랑 같이 서있다가 잠깐 한눈을 팔았는데, 갑자기 언니랑 엄마가 안 보이고 모르는 사람들한테 둘러싸여 있더라?

너무 놀래서 머리가 하얘지고 어쩔 줄 몰랐는데 다행히 어떤 아저씨가 날 발견하고 언니랑 엄마 저기 있다고 알려줘서 찾았어.

그때 느낀 감정이랑 비슷한 거 같아. 너무 당혹스럽고, 내 힘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는 기분.


J : 무능해지는 느낌이랑.. 비슷한 건가?


K : 이미 내 의지랑 상관없이 벌어졌고, 벌어진 일이니까 소화를 시켜야 하는데 방법은 모르는 거지.


J : 아, 방법 절대 모르지.

이별을 여러 번 해본 건 아니지만, 그게 또 다 다른 사람과 다른 이별을 하니까 더 어려운 것 같아.


K : 내 경우를 생각해보면, 나는 D를 만났을 때는 어렵지만 받아들일만했던 것 같아. 물론 그때도 너무 힘들고 슬펐긴 한데, 어느 정도 예상한 게 있어서 그게 에어백 역할을 했던 것 같아. 사실 진짜로 헤어지기 전까지 헤어지자는 말도 여러 번 했었고, 내가 얘랑 헤어져야만 하는 타당한 이유도 있었어. 오래 만나고 많이 좋아했지만 또 막 절절할 만큼은 아니었던 거 같기도 하고.

근데 T랑은 상황이 좀 그랬잖아, 그래서 영영 멀어지는 시뮬레이션을 더 많이 하는데도 너무 힘들고 너무 아파. 에어백이고 뭐고.. 이별이 얼마나 아픈지는 상대방이 나를 얼마큼 좋아하는지는 상관없이 내 마음의 크기와 아쉬움으로만 결정되는 건가 봐.


J : 맞아. 생각해보니 내가 헤어지자고 할 때랑 차일 때 다르고, 만났는지랑 안 만났는지랑 또 달라. 나는 만났던 사람이면 다시는 그 사람이랑 쌓은 추억을 회상하지 못하는 게 제일 슬퍼. 왜 가끔 인스타 보다가 둘이 했던 얘기 떠오르면 태그 해서 수다 떨고 싶다는 생각 들 때 가끔 기분 묘해.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들이 점점 사라지다가 아주 나중엔 내가 걔랑 사귀었던 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 맞나 싶을 때도 있고.

 아 그리고, 진심으로 고맙고 미안한 사람인데 이제 그만 보자고 얘기해야 하는 것도 슬프다.  슬플 일 많네.. 그래도 적어도 만났던 사람은 서로 충분히 겪어보고 노력한 후에 헤어진 거니까 남아있는 아쉬움은 잘 없는 것 같아.


K : 그치. 나도 그런거 같아.


J : 좋아는 했는데 만남까지 이어지지 않은 사람이면 이 사람이랑 같이 어딜 가야지, 같이 뭘 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들이 끝내 상상으로만 그치게 되는 아쉬움이 크고. 나를 걔한테 충분히 알려줄 기회조차 없었다는것도 아쉬워. 이 경우는 아쉬움이 진짜 제일 크다.


K : 그쪽은 언니랑 타이밍이 안 맞았었나 보다.

에휴..  우리 가지는 사랑해본 적 있을까?


J : 쟤는 살면서 본 여자 고양이는 마요가 다일걸?

고양이로 사는 게 아무래도.. 속 편하지..


J : 맞다, 그리고 얼마나 따뜻한 감정? 뭉클함? 을 느꼈는지 따라서도 슬픔의 강도는 좀 다른 거 같아.

아까 나 그런 거 느꼈어. 엄마랑 차 탔을 때. 내가 너무 졸려서 잠깐 눈을 감고 있었거든. 잠에는 안 들고 눈만 감고 있었는데, 엄마가 나 눈부시지 말라고 햇빛가리개도 내려주고, 덥지 말라고 에어컨도 올려주더라. 가만히 눈 감고선 사랑하는 그 마음을 받으니까 너무 안전한 느낌이 들고, 나 애기때 늘 보호받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고 그런 거야.

 근데 비슷한 기억이 떠오르더라. 내가 남자친구랑 어디 가다가 택시에서 깜빡 잠들었었는데, 내내 내 얼굴로 들어오는 햇빛 손으로 가려줬던 적이 있거든. 그때도 푹 잠든 게 아니라 다 느껴졌었는데 다른 것보다 그게 뭉클했었어. 그게 갑자기 생각나더라고.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것 같은 마음으로 나를 사랑한 사람이랑 남 되는 건 좀 더 슬프긴 하지 아무래도.


K : 나는 언니가 말하는 그런 느낌의 사랑을 받아도 보고 주기도 해봤는데, 받을 땐 고맙기야 했지만 어느 정도는 당연하게 받았던 부분도 많았던 거 같아.

근데 내가 그 이후로 줘보는 입장이 되어보니까 그게 너무 당연하지 않은 거야. 정말이지 당연한 게 하나도 없는 거야. 아무튼, 이게 우리가 이야기하던 이별이랑은 상관없지만 언니가 그걸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게 좋네.


J : 만날 때는 나도 당연하게 여긴 거 엄청 많긴 했어. 나중에 고마워한 거지. 딜레이가 자주 일어나 고마움이.


K :  T도 나중에 고마워하려나. 후회하겠지?


내가 줘보는 입장이 되었다는 애가 T거든. 그런데 지금 T랑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로 한 지가 좀 됐잖아?

 걔는 그때 약속한 시간이 지나면 연락을 주겠다고 확실하게 이야기했고 나한테 확신을 주려고 노력했어. 그래서 나는 걔가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초반까지는 있었어.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걔가 혼자서 사는 삶이 익숙해지면 안 돌아올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는 거야.


J : 아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아.


K : 응. 나도 그런 상황이 오면 타격을 덜 받기 위해서는 대비를 해야 한단 말이야. 그래서 계속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긴 한데, 당장 지금도 내 방에 돌아가자마자 핸드폰에 이 친구 연락이 와있다면 속도없이 난 또 좋다고 만날 것 같아.

근데 얘는 언니가 말한 그 따뜻한 감정을 나한테 절대 줄 수 없는 사람이야. 그게 되게 슬프더라? 걔는 그런 걸 약속하지 못하는데 나는 그게 제일 필요한 사람이거든. 특히 자존감이 취약할 때는 더 그런거 같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J : 그래서 연애는 스스로가 안정적일 때 해야하는 것 같아. 나 뿐만 아니라 상대도 마찬가지로 그래야 하고. 나에게 중요한 모든 내부와 외부 요소들이 비슷한 무게를 갖고 있어서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을 때. 그래서 바람 좀 불어도 크게 동요하지 않을 때. 근아 언니는 이 상태가 자존감이 높은 상태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같대. 나는 이 상태가 아니면 내가 타인에게 너무 큰 영향을 받을까봐 누굴 좋아하지 않으려고 해. 근데 뭐, 정신차리면 이미 그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 들어와 있을 때도 많지. 어휴


K : 언니나 나나 그치. 역시 또 타이밍이 중요하다.


J : 그치 뭐.

어쩌다 보니 연애 얘기만 했는데. 연인의 이별이 아니어도, 나한텐 누군가와의 이별이 최고 두려운 감정은 맞는 거 같아. 아니면, 연인이 아닌 사람과 이별하는 게 오히려 더 무서울 수도 있어. 친구든, 가족이든.

연인은 이별을 상상해 보잖아 한 번씩은. 얘가 없이 살던 삶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에 대하여. 난 너무 좋은 상태여도 상상은 해보거든? 근데 친구나 가족은 상상조차 안돼. 사람은 누구나 죽고 누구나 이별할 수 밖에 없는건데, 모두가 그렇게 큰 슬픔을 감당하고 산다고? 내가 나중에 누군가 소중한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고 나면 지금과 똑같이 살 수 있을까? 생각을 시작하기만 해도 우울하고 버거워져.


K : 혼자면 힘들 거야. 근데 만약 그 때 내 가족도 있고 아이도 있고, 혹은 친구라던가. 아무튼 나의 삶을 채워주고 있는 다른 여러 관계가 있다면 그래도 일상을 살 수 있지 않을까.


J : 살기야 살겠지. 우리 엄마 아빠도 그들의 엄마 아빠들을 떠나보내고 다시 삶을 살잖아.

근데 그러다가도 한 번씩 사무치게 그리운 감정이 찾아오면 너무너무 힘들 것 같아..


K : 언니 그거 알아? 우리는 둘 중에 한 명은 서로의 장례식에 가지 못해.


J : 그러네.. 한날 한시에 죽으면 좋겠다.


K : 우리 가지랑 마요도.


J : 얘내도 오래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K : 만지고 싶은데 못 만지는 날이 오면 어떡하지?


J : "..."


K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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