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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차 Aug 18. 2021

엄마! 할머니 또 춤 춰!


먼 길 운전을 하다 보면 밀폐된 공간에서 홀로 있는 시간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운전 중 시간 대부분은 주로 핸드폰에 저장해 놓은 음악을 듣는 편이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언니들 덕분에 나는 어려서부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을 들으면서 자라서, 나도 모르게 음악은 내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 버렸다. 좋아하는 그루브나 스윙 곡이 흐르면 운전을 하다가도 주책맞게끔 어깨가 저절로 들썩여진다. 들썩여지는 어깨와 함께 손가락도 까딱여지고, 헤드뱅잉까지는 아니어도 고개도 끄덕이게 된다. 이러다 보면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은 날도 가라앉은 기분이 살짝 두둥 떠오른다. 물론 주책맞은 나의 운전석 댄스를 혹시라도 누가 볼까 봐 살짝 긴장해야 하는데, 이래서 사람들이 차 유리에 선팅을 하는 거구나 싶다.

어깨춤을 추다 문득 마지막으로 기분 좋게 춤을 춘 것이 언제였나 생각해본다. 친구들과 술 마시고 갔던 노래방이었나? 물론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긴 하지만, 좁고 답답한 노래방 안에서 친구가 노래 부를 때 서서 탬버린 조금 흔든 걸 가지고 춤을 추었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한 번이라도 좋아하는 곡을 맘껏 들으며 자유롭게 춤을 추고 사는 걸까?


여기까지 나의 쓸데없는 생각이 미쳤을 때 과감하게 단순해졌다. 쓸데없는 상상은 실행할 수 있을 때 실행해야 한다. 마침내 키우는 강아지 외에는 아무도 없는 오후가 찾아왔고, 춤을 추기로 했다.

강아지가 보고 있다.

창피하다.

영화나 드라마에나 나오는 오글거리는 클리셰적인 장면을 설마 정말 시작하는 것일까? 나 스스로에게조차 창피하고 어색한 기분을 모른 척하고 요즘 나의 최애 곡인 Tom Misch의 It runs through me을 틀었다. 마치 누가 앞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는 것처럼 어색했지만 도입부의 드럼 소리가 나오자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았다. 100 미터 달리기를 준비할 때 총소리가 나면 주저할 시간 없이 무조건 달려야 하듯이 재즈 풍의 이 드럼 소리가 나면 무조건 내가 가진 아무 근육이나 일단 움직여야 한다. 입가에 미소가 번지면서 그냥 신나기 시작했다. 디스코 킹의 어깨는 여기저기 삐죽이고, 팔들은 나비의 날개라도 된 마냥 파라락 거리더니 드디어 앞 벅지를 움직여 일어났다. Tom 씨와 그의 밴드가 이 곡을 계속 연주하는 한 이제 멈출 수도 없고, 멈추고 싶지도 않다. 제자리에서 조심조심 움직이던 내 몸은 점점 더 과감히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다. 부엌에서 시작된 어설픈 스텝은 순식간에 거실로, 안방으로, 마치 나폴레옹이 유럽 전역을 싹쓸이하듯 뻗어 나간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눈치를 챈 강아지가 불안한 눈으로 빤히 쳐다본다. 곡은 4분 20초인데 유럽 전역을 강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안 되겠다. 1곡 무한반복으로 설정을 변경하고 다시 정복하지 않은 장소를 찾아 파도타기 하듯 팔을 내저으며 몸을 움직인다. 고깃집 앞의 키 큰 풍선 인형처럼 춤을 추면서 생각한다. 젊었을 때 내가 춤추는 것을 좋아했었나? 거실의 소파가 나의 갈 길을 막는다. 아.. 소파 따위가 내 영혼의 비상을 막다니…. 춤을 잘 추는 것 같지는 않은데 기분은 구름 위를 걷는 듯하다. 춤추는 것보다 술 마시는 것을 더 좋아하지 않았나... 까지 생각하다 성의 없고 급하게 분석을 마치고 공표를 했다.


나는 춤을 추는 것을 좋아하는 아줌마다!


나의 이상한 스텝은 급기야 거실을 지나 아이들 방 앞까지 왔고 내 귀에는 끊임없이 속삭이는 Tom 씨의 달콤한 독백이 이어진다.


You can't take this away from me.

The way I hit the melody.

You can't take this away from me.


맞습니다!!! 그렇고말고!! 누구라도 이 순간을 나에게서 뺏어갈 수는 없습니다!!

이날 이후로 내 핸드폰에는 "춤추고 싶을 때"라는 플레이 리스트가 생겼다. 아직은 네 곡 밖에 없지만, 전주가 나오면 어디에 있든 일어나서 춤을 추고 싶은 곡들을 발견할 때마다 여기에 추가하기로 했다. 앞으로도 이 플레이 리스트를 들으며 춤을 추고 싶다.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백발 할머니가 되어서도.


당분간은 사람들 앞에서는 부끄럽기도 하고 오롯이 음악을 느끼면서 마음껏 기분 좋게 출 수도 없으니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을 공략해야 한다. 하지만 나의 목표는 백발 할머니가 되어 아무 데서나 기분 내키는 데로 춤을 추는 것이다. 노인정에서도, 동네 슈퍼에서도, 놀이터에서 손주들을 돌보다가도. 그 나이가 되면 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면서 사는 사람들을 무수히 많이 봐 왔을 텐데, 이까짓 춤 좀 추는 것이 남에게 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법에 저촉되는 일도 아니다. 이것 만큼은 양보 못 하는 괴팍하고 막무가내인 할머니가 되어 춤을 출 것이다. 삶에 찌들고 일상에 지친 나의 딸들은 이상한 행동을 하는 늙은 엄마가 창피하고 싫겠지만, 아직은 세상의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한 나의 손주들은 분명히 좋아할 것이다.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더 반짝이면서 이렇게 외치겠지.


"우와~~~~~! 엄마!! 할머니 또 춤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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