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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차 Sep 25. 2021

똑똑히 들으시오!

9월 25일 National One-Hit Wonder Day


청소년이 된 이후로 아이들은 가끔 내 차를 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을 듣기 위해 내 핸드폰에 연결되어 있는 aux 코드를 빼고 그들의 핸드폰에 꽂는 일이다.

덕분에 나는 좋든 싫든 요즘 아이들이 듣는 음악을 듣게 된다. 곡에 대해서 이것저것 평을 하면 촌스러워 보일까 봐 대개는 아무 불평 없이 쿨한 척 얌전히 운전만 하는 편이다. 하지만 어떨 때는 정말이지 한 곡이 끝나는 3-4분을 기다리는 것이 국수 삶으려고 올린 물이 끓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만큼 힘들 때가 있다. 도대체 이런 걸 음악이라고 만들었단 말인가? 일그러져가는 나의 표정을 눈치챈 아이가 웃는다. 이게 왜 싫으냐고. 엄마는 재미없는 음악만 듣는단다.

순간 혈압은 오르나 혈당은 급격히 떨어지는 기이한 느낌이 강하게 왔다.


'재. 재...... 재미없는 음악이라고? 이것들이 내가 누군 줄 알고!'

'라떼는 말이야'로 일장연설을 시작하는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참고 또 참았다. 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들에게 당당히 소리치리라.


'당신들은 똑똑히 들으시오! 나는 80년대 팝을 들으면서 자라 90년대 롹과 함께 청춘을 보낸 사람이란 말이다! 뭐? 내가 재미없는 음악을 듣는다고? 그 시절에 유튜브와 인스타그램만 없었던 것 같니? '재미없는 음악'이란 것 자체가 아예 없었던 시절이라고!! 아시겠습니까?!?!"


아.. 그 누가 나의 외침을 비웃을 수 있을까.


대중음악의 황금기였다고 할 수 있는 80-90년대의 팝 음악들은 일단 장르가 다양하다. Bill Withers의 Just the two of us (1981), Wham의 Wake me up before you Go-Go(1984), Madonna의 Vogue(1990), Nirvana의 Come as you are (1991)을 지나 TLC의 Waterfalls (1994)까지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의 음악이 동일하게 사랑받은 시절이다.


 이러니 우리 세대들은 대중음악에 있어서 만큼은 흡사 최고급 뷔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주말마다 값비싼 테마파크에서 노는 있는 집 자녀들과 같았다 할 수 있다.

 명곡이 많지만 그중 딱히 빛나지 않았던 나의 청춘에 많은 위로가 되었던 곡들을 떠올려 본다.

그중에는 Michael Jackson, Sting, Oasis 등 지금도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아티스트들도 있지만 오랫동안 잊혀졌던 이들도 있다. 이른바 One hit wonder라고 불리는 곡들이 그렇다.

한 곡으로 대중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지만 이후에 별다른 활동이 없었거나 혹은 음반을 발매했더라도 별 관심을 받지 못한 아티스트들의  '인생 히트곡'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one hit 그러니까 '한 개'의 '히트'곡은 있는데, wonder 그 후에 어찌 되었을까  '궁금'하다 해서 one hit wonder라고 불린다 한다. 불현듯 궁금해져서 90년대 one hit wonder 곡들을 검색하고 들어 보았다.

물론 이 외에도 많지만 이중 몇 개만 나열해 보자면..


The verve의 Bitter sweet symphony

Semisonic의 Closing time

Chumbawamba의 Tubthumping

4 non blondes의 What's up

New radicals의 You get what you give

Donna Lewis의 I love you always forever

White town의 Your woman

OMC의 How bizarre

The proclaimers의 I am gonna be

Vanessa Williams의 Save the best for last 등이다.


한곡 한곡 들어보면서 정말 깜짝 놀랐다.

라디오에서 나올 때마다 볼륨을 높이며 좋아했던 곡들인데 아티스트의 이름은커녕 제목도 가물가물한 곡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곡들을 잊고 지냈다니.

Chumbawamba의 Tubthumping이나 White town의 Your woman을 들을 때가 특히 그랬다. 순식간에 90년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렸던 영화의 주인공이 드라마틱하게 기억이 다시 돌아왔을 때와 같은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멍했던 상태가 지나니 곧 희열과 기쁨이 느껴졌다. 20여 년 전 즐거웠던 그때 그 기분이 그대로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다. 아마도 타임머신이 개발될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완벽하진 않겠지만 과거로 가고 싶다면 그때 위로와 기쁨을 주었던 음악을 듣는 것을 추천한다.


'어머! 나 이 노래 정말 좋아해!!!' 외치며 집중해서 곡을 듣는 동안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

과연 그럴까?

제목도 멜로디도 밴드 이름도 모두 기억에서 지운 채로 20년 넘게 살아와 놓고 정말 좋아한다고?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좋아했지만 잊었었고, 다시 들으니 또 좋다가 맞다. 미안하고 또 안타깝다.


대학 입학으로 시작된 나의 청년기는 아쉽게도 다분히 빛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빛나지 않았었다. 늘 혼란스러웠고, 항상 초라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을 감추려고 하면 할수록 겉으로 드러났다. 그러면 또 그것이 창피해서 당황해했고, 그러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곤 했다. 그때 내가 유일하게 기대었던 것이 음악과 영화였다.  그때 받은 위로가 떠오르니 갑자기 이들에게 미안해졌다. 할 수만 있다면 한 명 한 명 찾아가서 말해주고 싶다. 잊고 산 것은 사실이지만 그때 당신의 이 곡으로 내 삶이 훨씬 덜 후져 보였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절대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곡들이 아니었다고.


이들을 실제로 만나 뒤늦은 고백을 할 기회는 없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만난 곡들에게 늦었지만 나의 애정을 표현하고 충성을 맹세하는 의미로 90년대 one hit wonder 곡들 중 다섯 곡을 골라서 개별곡 구매를 했다.

나에게 이들은 '어찌 되었나 궁금(wonder)'한 사람들의 곡이 아닌 별 것 없는 내 청춘을 잠깐이나마 짜릿하게 느끼게 해 준 '기적(wonder)' 과도 같은 곡들이기 때문이다.


오늘, 9월 25일은 National One-Hit Wonder Day이다.


"똑똑히 들으시오!"라고 당당히 소리치지는 못했지만, 오늘만큼은 사실 그냥 지나갈 수가 없다. 오늘이 어떤 날인지 소개를 하고, 오늘만큼은  하루 종일 엄마가 좋아하는 80-90년대 one-hit wonder 곡들만 집에서 들릴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단톡방을 통해 선언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은 둘 다 집에 없지만, 나는 당당하게 Goo goo dolls의 "Iris"로 나의 행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https://youtu.be/NdYWuo9OF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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