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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차 Feb 15. 2022

자연스러운 끝

(단편소설)

'그게 언제였지. 30년쯤 전이었나.'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승연은 문득 예전에 갔었던 해외여행이 생각났다. 50세 생일 기념으로 그녀가 젊었을 때부터  동경하던 남미의 갈라파고스 군도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한 건 그녀의 남편이었다.

갱년기 때문인지 한층 더 무기력해진 그녀의 기분을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좋아지게 하고 싶었다.  


갈라파고스 군도는 승연이 오래전부터 가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그녀의 남편은 자신의 깜작 제안에 승연이 펄쩍 뛰며 좋아할 줄 알았다. 그런데 여행을 꿈꾸는 열정도 한때인 건지 아니면 무기력증이 우울감까지 불러일으킨 건지 남편이 정작 이야기를 꺼냈을  승연은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그래도 늘 자신을 걱정하는 남편이 실망하는 것을 보는 것이 부담스러워 애써 기뻐하는 표정을 짓고는 일부러 그가 보는 앞에서 아이들에게 전화를 해서 자랑을 하기도 했다.


 그날은 일행들과 산타크루즈 섬 해안가를 둘러보던 중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왔었다.  승연은 무릎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그들을 먼저 보낸 후 나무 그늘 아래 잠시 앉아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나무뿌리가 의외로 딱딱하지 않아서 신기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도 주변의 소리도 다 그대로인데 갑자기 온 우주가 멈춘 듯한 느낌이랄까. 승연은 누군가 옆에서 쳐다보고 있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녀는 왠지 무서웠지만 천천히 옆으로 눈을 돌렸다.


 커다란 거북이였다.

멸종위기 동물이라 이제는 해변에서 흔하게 볼 수 없다는 갈라파고스 땅거북.  자동차만 한 덩치 때문에 너무나 무서웠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왠지 누군가를 해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빨려 들어갈 듯한 그 큰 눈을 바라보다가  승연은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어...... 안녕..."


'아..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아주 예전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유명한 연예인을 만났을 때 자신도 모르게 아는 사람에게 인사하듯  반갑게 '안녕하세요' 하고 말을 한 후 창피했던 생각이 났다. 너무나 갑자기 예상 밖의 인물 (혹은 생물)을 만나면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워지는 모양이다.  

슬쩍 일어나야 할까 아니면 용기를 내어 사진이라도 찍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 찰나, 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 만나서 반가워”


멍한 표정으로 거북이를 마냥 바라보고 있는 승연에게 또 들리는 거북이의 목소리.


“너는 시작된 지 얼마나 됐어?”


승연의 표정은 대화를 하고 있는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 표정이라기보다는 마치 예전에 유행했던 매직아이라는 책 속의 그림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것에 더 가까웠다.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는 멍한 시간, 시간이 멈춘 것인지 아니면 나와 내 주변만 멈춘 것인지 알 수 없는 정적이 흐르고 나서야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거북이의 눈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혹시 나한테 뭐라고 말했나요?"

"응. 너는 시작한 지 얼마나 됐냐고 물었어."


꿈속에서는 내가 하는 말과 행동도 마치지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승연은 이렇게 꿈속에서 말을 하는 자신을 바라보듯 대화를 이어나갔다.


“네...? 시작된 지 얼마나 됐냐니...?"

"어. 태어난 지 얼마나 됐냐고."

"아..... 50년이요. 50세 생일 기념으로 여행 온 거예요. 그쪽은 몇 살이세요?”

“난 시작된 지 145년 됐어. 끝나려면 한 20년쯤 더 있어야 해.”


비싼 돈을 들여 간 여행이었지만 갈라파고스에 도착해서도 그녀는 들떠있기는 커녕  여행기간 내내 오히려 우울한 기분이었다. 숙소를 나서기 전 승연은 여행이 그렇게 재미있지 않고 그냥 집에서 쉬는 것이 나았을 뻔했다고 언니에게 핸드폰 메신저로 투덜거렸더랬다.  


"제부처럼 와이프 생각하고 아껴주는 사람 없다. 너 그러면 벌 받아. 이왕 간 거 일부러라도 마음 다잡고 기운 좀 내."


늘 승연을 위로하고 다독여 주는 언니인데, 언니는 오늘따라 차가웠다. 빨려 들어갈 듯한 거북이의 눈을 응시한 채 승연은 언니가 말한 벌을 지금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145년 살았다는 이 거북이가 사실은 나에게 벌을 주러 온 저승사자쯤 되는 건 아닐까.


"그 나무에 그렇게 걸터앉아 있는데도  파도를 바라보지 않은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너는 이상한 고집이 있구나. "


 승연은 자신도 모르게 거북이의 눈에서 시선을 돌려 정면의 바다를 쳐다보았다. 햇살에 반짝이는 파도가 그녀 쪽으로 왔다가 부서지면서 사라지고, 또 다른 파도가 밀려와  부서지는 것이 반복되었다. 끝도 없이 반복되는 파도를 보면서 승연은 파도의 리듬에 맞추어 숨을 쉬었다. 철썩 쏴~~ 철썩 쏴~ 소리에 맞추어 후... 후... 숨이 쉬어지고 최근 수개월간  지속되었던 약간의 불쾌한 기분과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누그러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느낀 순간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신기하게도 창피하다거나 당황스럽지 않아서 승연은 그렇게 거북이 옆에서 파도를 바라보며 한참을 울었다.  


눈물에도 무게가 있는지 한참을 울고 나니 오히려 몸이 가벼워진 듯했다. 문득 옆을 보니 땅거북은 여전히  정면의 파도를 보고 있었다. 큰 눈이 아주 천천히 꿈벅거리는 것이 마치 졸고 있는 것 같기도 해서 문득 거북이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승연은 피식 웃었고 땅거북은 왜 웃냐고 물어봤다.


"꿈벅 꿈벅.... 마치 졸고 있는 것 같은 그 모습이 웃겨요. 우리 인간들은 눈 깜박거리는 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아요.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귀엽네요."


"우리도 너희들처럼 빨리 깜박일 수 있어. 그렇게 안 할 뿐이지. 눈을 빨리 감았다 뜨는 것은 이래 저래 지치는 일이야. 눈꺼풀이 감은 다음 2초를 센 후에 떠봐. 세상 모든 것이 느려지고 수월해져."


 파도를 바라보면서 승연도 그렇게 천천히 두 눈을 꿈벅거렸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렇게 승연은 땅거북과 파도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상하게도 땅거북은 마치 어제 만나서 이야기하고 헤어졌던 사람을 다시 만난 듯 편안하게 대해주었고 종종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의 말투는 아주 느렸지만 발음은 분명했고 말하기 전에 5-6초 정도 생각을 하는 듯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승연은 수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고 오래 살고 싶어 하는데 거의 150년을 살아본 느낌이 어떠냐고 물었다.


“50년을 살던 150년을 살던 중요한 건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다는 거야. 나는 170년 정도를 살다가 끝나는 걸로 정해진 거고, 그것이 그리 못마땅하지 않아.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고 그게 자연스러운 거니까. 내가 아는 해파리가 하나 있는데 그 친구는 죽지 않는다 하더라고. 그걸 알게 되고 나서 그 친구는 말을 멈추었어. 영원히 죽지 않으니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가끔 별들이 유난히 밝게 빛나는 밤에 끝도 없는 하늘을 보면 안쓰러운 그 친구가 생각나.”


오랜 시간 살아온 만큼 죽음에 대해 무언가 지혜로운 답을 해줄 것이라 생각한 승연은 땅거북의 허탈한 대답에 실망을 했다. “하지만” 하며 질문을 이어나가려는 순간, 같이 관광하던 일행들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뛰어와 연신 탄성을 터뜨리며 사진을 찍어대는 바람에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 났다. 땅거북은 아쉬운 표정으로 일어나는 나를 보면서 분명히 웃었는데 일행들은 사진을 찍느라 바빠서인지 아무도 그의 미소를 눈치챈 것 같지 않았다.


여행기간 동안  같은 해안가를 돌아다니면서 그를 계속 찾았지만 만날 수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일상에 치여 바쁘게 지내느라 그의 생각을 자주 하지 못했지만 가끔 가족여행으로 바닷가에 가서 파도를 볼 때면 어김없이 그날이 생각났다.



승연은 5년 전에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서 지내는 힘든 치료기간 동안 문득문득 땅거북이 했던 말들이 생각났다. 모든 것은 때가 있고 그렇게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고 했던 그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했다. 수술 후 5년간 승연의 몸은 점차 허약해졌고 요즈음은 자는 시간 이외에도 거의 하루 종일 방 안 침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떨 때는 하루가 한 시간 같기도 하고  일주일이 한 달 같기도 하다. 거북이가 말했던 끝이라는 것이 나에게도 가까워 오는 건가 싶을 때면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 그가 말했던 '자연스러운 끝'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는 다시 편안해졌다.


요즘 들어 승연의 손자가 그녀를 자주 찾아온다.  그 녀석이 오면 낮인지 밤인지 헷갈리는 몽롱한 머릿속이 다소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아기였을 때부터 유독 그녀를 잘 따랐던 그다. 결이 비슷했던 이 둘은 종종 함께 말없이 산책을 했다. 내성적이지만 속이 깊은 아이였고,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스트레스가 쌓여도 늘 혼자 버티는 성격이었다.  가끔 그녀가 연락해서 뭐 하고 있냐고 물어보면 "그냥 산책 중이에요, 할머니"라고 말하곤 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그녀는 그럴 때면 그가 좋아하는 식당 쿠폰을 보내 주거나 재미있는 책을 보냈다.  그는 종종 친구들에게 자신의 할머니는 마음을 읽는 독심술가라고 웃으며 말했다.


요즘은 손자로부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거나, 또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가족들과 같이 듣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 문득 왜 가족들이 요즘 들어 더 자주 방문하는지 생각하게 되었고, 간간히 보이는 손자의 붉어진 눈시울이 이젠 편안해졌다 생각한 그녀의 마음도 흔들어 놓는다.




오늘은 손자가 해외토픽에 나왔다면서 175년을 살다 드디어 생을 마감한 갈라파고스 군도의 땅거북 사진을 보여주었다. 승연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그였다. 그가 사진 속에서 예전 그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웃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손자는 웃고 있는 그의 표정보다 자동차만 한 그의 몸집에 대해 연신 이야기하며 신기하다고 했다. 삼십 년 전에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그 미소를 지으면서 그는 그렇게 자연스러운 끝을 맺은 것이다. 때마침 라디오에서 예전에 즐겨 듣던 브루노 메이저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승연은 두 눈을 꿈벅 꿈벅 느리게 떴다 감았다 하면서 곡을 감상했다.


You can’t ask a tree to blossom

If it isn’t a spring

You can take a horse to water

But you can’t teach fish to fly

No use praying for younger days

If you are running out of time

Sometimes it is time to let a good thing die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산들바람이 곡의 리듬을 타듯 간간히 불었고 그에 맞춰 연두색의 커튼도 하늘하늘 펄럭거렸다. 그녀는 그것이 마치 그때 갈라파고스섬에서 땅거북과 같이 지켜봤던 파도 같다고 느꼈다. 끝도 없이 모래를 밀고 당기며 올라왔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하는 파도.  그때 땅거북이 말했던 것처럼 이제는 끝이 있다는 것이 그리 못마땅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곡이라고 하자 손자는 "할머니, 이런 슬픈 곡도 좋아하는구나. 우리 할머니 멋지네."라고 중얼거리듯 혼잣말을 하더니 또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가야. 너무 힘들면 천천히 꿈벅 꿈벅 2초 정도 눈을 감았다 떴다 해봐. 세상 모든 것이 조금 느려지고 한결 수월해진단다."


승연의 얘기를 말없이 듣던 그녀의 손자가 잠시 멈칫하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한 손으로 잡고 있던 그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싼 후 어루만져 주었다. 한참을 울고 난 후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그가 말했다.

 "할머니랑 산책하고 싶다. 할머니 얼른 나아서 저랑 같이 산책해야죠."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끝이 있는 거고 나도 그게 이제는 전혀 못마땅하지 않아. 정말 괜찮단다. ”


To Let A  Good Thing Die- Bruno Maj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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